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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May 02. 2022

꿈은 강아지 두 마리 고양이 세 마리와 사는 건데요

일단 강아지 한 마리와 살게 되었다.

고양이 룸메이트를 만나면서 내 꿈은 강아지 두 마리와 고양이 세 마리와 사는 거였다. 강아지 두 마리와 고양이 세 마리와 같이 산다는 건 따뜻해 보였다. 추상적인 이미지 안에 구체적인 숫자는 뭐 언젠가는 현실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담은 것 같기도 하고. 일단은 강아지 한 마리와 살고 있다. 덤으로 당분간 강아지 한 마리가 낳은 여섯 마리 강아지들도 같이 산다.


왜 고양이가 아니고 강아지를 먼저 입양했을까? 내가 강아지와 같이 살게 됐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은 다 물었다. 네가 고양이가 아니고 강아지를? 나도 놀랐다. 내가 강아지를? 강아지와 살면서 두 달 동안 생각했다. 왜 내가 너와 같이 살기로 결정했을까? 너는 어떻게 내 마음에 들어온 걸까?  


우연하게 친구의 강아지를 며칠 맡아주면서 나는 같이 산책하는 게 좋았다. 나가서 걷는 걸 좋아하는 나는 집에서 뒹굴 대는 고양이도 좋지만 강아지를 핑계로 산책을 한다. 겨우 퇴근해서 방바닥에 등을 붙이고 핸드폰 보며 뒹굴대는 남편을 밤 아홉 시에도 강아지가 산책을 하고 싶어 한다고 굳이 끄집어낸다. 같이 나가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게 좋다. 저 횡단보도 건너에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과 그 옆에서 아이스크림을 뚫어져라 보는 강아지를 보며 생각한다. 우린 같이 어쩌면 등산을 갈 수도 있고 여행을 가도 너는 고양이보다 쉽게 적응하지 않을까? 집에서 같이 나른하게 고양이와 굴러다니고 싶던 나는 잠깐 숨어있다. 앞에서도 말했듯 내 꿈은 고양이 세 마리와 강아지 두 마리와 사는 것. 지금의 나는 걷고 싶고 나가고 싶고 움직이고 싶다.



일을 하다 발 밑을 보면 가까운 언저리에서 날 지켜보는 강아지가 좋았다. 내가 움직이면 쪼르르 내가 자러 올라가면 총총총 따라 올라오는 강아지가 좋다. 자기만의 시간은 나 혼자 가져도 좋으니 고양이와 거리두기 보다 강아지와 꼭 붙어 있고 싶었다. 강아지가 주는 사랑스러움과 귀여움은 여전히 내 외로움을 꽉 채워주진 못한다. 우습지. 강아지가 외로움을 채워줄 거라고 기대한다는 게. 외롭지 않으려고 강아지를 입양하면 안 된다는데 외로움을 채워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물론 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이곳에 좋아하는 것 하나쯤 더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왜 내 모습이 되면 안 되는 걸까 라는 생각도 했다. 당연히 유기견을 입양해야 된다는 생각은 칠십 프로였으나 삼십 프로는 내가 원하는 종, 내가 원하는 색의 털을 가진 아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상담을 하는 동안 나는 상실을 굉장히 두려워한다는 걸 복기했다. 겪어본 적 없는, 그러나 살면서 겪어야 하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큰 나는 내 손으로 또 상실할 거리를 만든다는 걸 도무지 용납하지 못했다. 23살 때부터 키우고 싶었던 고양이를 선뜻 키우지 못한 것은 나 하나 먹여 키울 형편과 시간도 없었을 뿐 아니라 별일 없다면 나 보다 먼저 고양이가 세상을 떠날 것이고, 떠난 뒤의 시간을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떻게 용기가 났을까.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일어나지 않은 많은 걸 걱정하고 두려워하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삶을 살게 되는 걸 아닐까 잠깐 고민한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이 부분은 괜한 오기 혹은 객기인가 싶다가도 아직 스스로를 이해하는 과정에 있다.


강아지를 키우게 되면서 강아지를 키우는 작가들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고양이를 키우는 작가들의 책을 읽었는데) 사랑하는 작가 캐롤라인 냅의 개와 나를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 공감하고 그녀가 이 에세이를 먼저 냈다는 사실에 의미 없는 질투도 했다. (아니 왜 이 사람은 뭐든 다 공감가게 글을 쓰는 걸까)  강아지가 하는 행동과 모든 것의 의미는 내가 하는 추측이라는 것, 강아지와 인간의 관계가 그 사람이 다른 관계를 맺는 방식과 비슷하다는 것, 강아지를 핑계로 집에 머문 다는 것, 강아지에게 애정을 독차지받고 싶으나 내 맘대로 안된다는 것 그렇지만 주고 싶은 만큼의 애정을 맘껏 퍼붓는 날도 있다는 것 등 많은 것들이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보호소에 가서 강아지에 관한 지식이 1도 없이 댕그러니 집 거실에 둘이 있게 된 것도 똑 닮아서 웃었다. 


강아지는 귀엽다. 그거면 됐다고 하기에 가끔 한 사람이 먹고사는데 드는 돈 보다 많이 들고 스스로 할 줄 아는 건 많이 없다. 아침에 제일 먼저 맡는 똥냄새와 그 똥을 치우다가도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동그란 눈으로 날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긴 한다. 겨우 우리 두 달 같이 살았을 뿐인데 헤어지는 건 무섭지만 강아지가 매일 주는 행복이 어마어마하다는 말도 조금 알 것 같을 때도 있다. 나에게 주는 웃음과 행복만큼 우리도 너에게 비슷한 걸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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