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한 강아지가 데리고 온 여섯 마리
글을 쓴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그동안 강아지는 아기들을 낳고 나는 열흘 정도는 야근을 하고 남는 시간에 강아지와 아기들 옆에 있었다. 강아지는 생각보다 일주일 빨리 여섯 마리를 낳았다.
강아지가 아기를 낳기 전날 친구들과 오랜만에 음식도 술도 적당히 마신 저녁을 보내고 집에 왔다.
" 나 당분간 바깥에 못 나올지도 몰라~ 우리 오늘 맛있는 거 먹자~" 하고 친구들을 불렀다. 적당히 마시고 먹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서 기분이 좋았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며 노랑노랑 한 위액이 나올 때까지 토를 했다. 눕든 일어나 있든 세상도 내 속도 울렁거렸고 겨우 진정되어 잠이 들었지만 울렁거리며 눈을 떴다. 강아지의 출산 소식을 들은 친구는
"어머, 네가 그때 입덧을 대신했나 봐" 라며 말했고, 나는 그게 입덧이라면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강아지는 우리가 만들어놓은 우리 안에서 이불을 박박 긁으며 땅을 파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출산이 가까웠다는 온도가 나왔던 온도계는 고장 난 게 아니었고 강아지는 정말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저녁쯤 끙끙대는 주기가 짧아지자 양수 주머니가 불룩 튀어나왔다. 양수 주머니가 터져야 아기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한 시간 반이 지나도 양수 주머니가 그대로였다. 걱정이 많았지만 곧 양수 주머니는 터졌고, 첫째가 나왔다. 유튜브로 강아지 출산 시 해야 할 일들을 열 번 백번 본 것 같은데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실 강아지는 아기를 낳는 것부터 키우는 것까지 대부분 알아서 하고 있다. 사람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는데 강아지는 많은 걸 스스로 한다.
아무튼, 남편과 치즈 시리즈로 이름을 짓기로 했는데, 첫째는 색이 새까맸다. 고민을 하던 남편은
"음.. 까망... 베르? "
진지한 순간에 웃음이 나오는 이름이었다. 다음에는 강아지를 닮은 하얀 친구가 나올 줄 알고 그럼 다음엔 브리, 체다 할까?라고 상상하는데 까만 강아지 네 마리와 누렁이 두 마리가 탄생했다. 눈을 뜨고 있지 않아서 크기와 색만으로는 분간이 어려웠다. 나온 순서대로 치즈 이름들 대신 첫째 둘째부터 여섯째가 되었다. 하얗고 꼬불거리는 아가들을 기대했는데 단 한 마리도 우리 집 강아지를 닮은 아기가 없었다. 강아지는 아기들이 나오자마자 젖을 먹였다. 그러면서 강아지가 피가 계속 나왔는데 아기들을 낳아서 그런가 그러려니 하며 총총 거리며 닦고 다녔다. 두 시간쯤 흘렀을 때 피가 멈추지 않자 응급실에 전화를 걸었고 새벽 한 시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난 지 짧으면 두 시간 길면 여섯 시간쯤 된 아기들과 강아지를 데리고 응급실 앞에 있었다. 응급실은 또 강아지 말고는 들어갈 수 없어서 우리는 차 안에서 삐이삐이 거리는 아기들을 데리고 기다렸다. 강아지가 위중한 상태일 수 있다며 우리는 굉장히 큰돈을 디파짓으로 걸고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심호흡을 했다. 상담을 하며 선생님이 현재에 집중하라던 말을 자꾸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계속 강아지는 아직 살아있다며, 아기들도 여기 삐이 거리며 살아있다고 괜찮다고 혼자 생각했다. 다행히 강아지는 피를 많이 흘렸지만 생각보다 양호한 상태여서 수액을 맞고 아가들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강아지는 때가 되면 아기들이 있는 우리 안으로 들어가 밥을 먹이고 쉬와 응가를 핥아먹었다. 여섯 마리 아기들을 책임지는 강아지의 모습은 아, 과연 내가 아기를 낳아서 저렇게 잘 책임질 수 있을까? 하고 질문하게 만든다. 강아지가 짠해서 사실 아기들은 기대보다 내 눈에 귀여워 보이지 않는다. 가끔 강아지에게 매달려 젖을 빠는 아기들은 좀비 같아 보인다. 아기들은 눈을 2주가 지나야 뜨지만 손톱은 계속 자란다. 손톱이 날카로울 줄 모르고 잘라주자 잘라주자 하다가 정말 잘라줄 때쯤 이미 강아지의 가슴팍에 상처가 나서 피가 났다.
여섯 마리가 세상에 나오기 전날 읽은 글이 내내 맴돌았다. 강아지의 임신이 계획이 아니라면 낙태를 추천하고 낙태수술을 하면서 강아지의 중성화도 같이 진행할 수 있다는 글이었다. 강아지가 세상에 보태는 여섯 마리 말고도 집 없는 강아지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알맞은 선택이라고 했다. 그러게, 생명이니까 단순히 세상에 태어나야지 라고 생각했지, 이 생명들은 태어나서 행복하게 세상을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안했다. 강아지가 아기를 낳고 나면 몸이 많이 노화한다는 글도 아기가 나올 날짜가 임박해서 읽게 됐다. 너랑 오래오래 살고 싶은데. 만약 내가 한 달 전으로 돌아간다면 강아지의 임신 중절을 결정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나는 아직도 강아지와 가족이 된 것과 강아지의 여섯 마리 아기들과 살게 된 이 모든 일련의 일들을 소화시키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강아지와 우리가 함께 울고 웃고 시간을 쌓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다가도 여섯 마리 아기들과 산지도 3주가 넘었다는 건 실감이 나질 않는다. 내가 이 아기들이 세상에 나오는 걸 직접 봤던가? 아기들이 눈 뜨는 걸 보고 신기해했던가? 이 일곱 마리 생명들이 같이 살기 전에 우리는 어떻게 지냈더라, 나는 어떤 사람이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