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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순 Mar 12. 2020

집순이 생활백서

















































































 이곳에 오기 전에도 친구가 별로 없었다. 결혼할때는 정말 억지로 있는 힘을 다해서 고등학교때 친구들을 긁어모았지만, 애석하게도 그마저도 지금은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 회사를 다닐 적에는 그저 집, 회사, 집, 회사의 반복이었다. 처음 다녔던 회사도 전 직원이 열명도 채 안되는 곳이었다. 그것도 앞자리가 2였던 사람은 나 혼자 밖에 없어서 딱히 동기 혹은 친구라고 할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환경 탓이 아니다. 내게 연락할 친구가 별로 없는건 그냥 내 못난 성격 탓이다. 나는 한번 아니라고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인연을 쉽게 차단하고 돌아서는 능력이 강하다. 게다가 정말 웬만해선 사람에게 마음을 터 놓는 일이 없다. 이 나이를 먹도록 남편을 제외하곤 마음을 터 놓을 친구가 별로 없다는게 사실은, 조금 부끄럽다.

 몹쓸 전염병이 터지기 전에는 어학원에 나다니면서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아이들 이외에도 나와 상황이 비슷한 유학생 와이프들도 꽤 많았다. 잠깐의 스쳐지나가는 인연들이라는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꽤 외롭지 않은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외출 자체를 차단 당하면서 세상에는 오직 나와 내 남편이 남았다. 한국이었으면, 무작정 혼자서 카페에 나가 앉아있으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라도 엿들을 수 있었을 텐데, 이곳은 카페든 어디든 일단 나가려면 시동을 걸어야 한다. 게다가 세상에서 병원비가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이 만리 타국땅에서는 그냥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했다. 

 그러다보니 그렇게 집순이가 되었다. 이따금 남편과 산책을 나가거나 외식을 하는 것 이외에는 딱히 외출을 해서 사람을 만날 일이 없다. 처음에는 감옥 살이를 하는 것처럼 숨이 막히고 답답했지만, 이내 집에서도 조금씩 삶의 사이클이 갖춰져갔다. 특별한 외출이 없어도 늘 샤워를 하고 깨끗한 옷을 입었고, 영원히 빨래걸이로 쓸 것만 같았던 실내 자전거로 운동량도 채워갔다. 먹고 자고 하는 일 이외에는 혼자 그림을 그리거나 다른 형태로 창작물을 만드는 일이 많아졌고, 그렇게 또 예술병이 도졌다. 뭔가를 그리고 만들면서 집중하는 시간은 한없이 즐겁다. 이 세상 안에선 나를 시들게 하는 학력자랑도, 경쟁도 없었다. 앞날에 대한 가벼운 고민들도 멈출 수 있었다. 커피 값 정도 뿐이 안되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림으로 돈도 벌었다. 다들 그런 희열 때문에 예술을 사랑하는 걸까. 그러다가 가끔씩 유튜브에서 만난 인생설교 전문가들이 가장 실패한 인생의 전형으로 특별한 소득없이 예술병에 걸린 30대를 꼽아줄땐 한없이 무너져내렸다(대체 어떻게 알고 추천하는건지, 알고리즘은 정말 귀신이다). 그렇게 팩트폭행으로 바닥에 흥건히 녹아있으면, 멘탈관리본부장인 남편이 나타나서 다시 또 일으켜 세워준다. 그럼 또 행복하고 힘찬 하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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