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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아름다운 파리가 되기까지

19세기 파리 개조 프로젝트 위를 걸어보며

by 베어


hollywood-vine-street-sign-famous-260nw-2302672663.jpg 캘리포니아의 Hollywood Blouevard 사인. (출처: Mikeledray)


미국을 여행할 때 Blvd 라는 표지판을 본 적 이 있나요?


Blvd는 Boulevard의 약자인데, '대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Boulevard(블루바르)가 어디서 유래 되었을지는 오늘 이야기의 주제와 연관이 있답니다.


시기는 19세기(1850년대), 나폴레옹3세의 주도 하에 '파리 개조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을 때였어요. 오스만 남작이 파리시의 시장으로 임명되며 본격적으로 프로젝트가 시작 됐답니다.


그 당시 파리의 도시환경은 17-18세기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미 엉망이 되어있는 상태였어요.

지금의 아름다운 센강에는 혁명 기간 내내 시체가 떠내려갔고, 오물이 가득한 주택가 골목 사이사이엔 쥐가 들끓었습니다. 도시공간의 취약한 위생은 점차 시민들의 공중보건(Public Health)에도 영향을 끼쳐 각종 전염병이 파리를 뒤덮었답니다.


eWm2Kw6L4LCNPwB5XBsICVUQF74.jpg 바스티유의 폭풍 (장피에르 루이 로랑 위엘, 1789) - 바스티유 감옥 안에 저장된 무기와 탄약을 훔치기 위해 파리시민들이 습격하며 본격적으로 프랑스 혁명이 시작 됐습니다.



19세기 황제였던 나폴레옹3세는 혼란스러운 도시를 바로 잡고, 공공보건을 개선시키기 위해 오스만 남작을 파리 시장으로 임명하며 '파리 개조 프로젝트'를 부탁했어요.

오스만 남작은 중세도시 파리를 변화하는 세계의 움직임에 맞추어 근대도시 파리로 탈바꿈 시키는 계획을 진행했어요.


그의 파리 개조 프로젝트 중 가장 대표적 특징은 이전까지 작고 구불구불 했던 골목길을 개선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직선대로로 만들었다는 점이에요.

오스만 남작은 구불구불한 골목길보다는 직선대로가 효율적이라고 판단했어요. 같은 시기 파리에 열렸던 세계산업박람회와 발맞추어 기차역과, 이 기차역을 오고가는 마차들의 통행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에요.

이때 바로 직선대로들이 Blouevard라는 명칭으로 생겨나게 된 것이랍니다. 지금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가는 샹제리제 거리, 오페라 거리도 이때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20230407082808480_KBcEh.jpg 개선문 중심의 블루바르 (Blvd) 계획


블루바르 계획 이외에도 오스만 남작은 모든 건축물을 동일한 스타일의 6-7층 높이로 규제했어요. 아름다운 도시 경관을 위해서였죠.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지금의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샤넬, 디올, 까르띠에 등의 심플한 로고디자인 역시 이렇게 균일화된 도시디자인 정책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상상해보게 돼요. (심지어 우리 도시 안에서 항상 확실한 존재감을 띄고 있는 노란색의 맥도날드 로고 마저 '파리화' 시키는 거리 분위기가 흥미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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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려는 오스만 남작의 '파리개조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다고 생각돼요. 이 프로젝트는 공공위생 문제를 해결한 것 뿐 아니라 지금의 우리가 사랑하는 파리만의 모습을 만든 주된 움직이었다고 느껴집니다.


그는 아름다운 거리에서, 어느 곳으로 고개를 돌려도 유명한 문화유산이 시야에 걸치게 설계하려 의도했어요. 그리고 거리에서 중간중간 우리가 이 전에 이야기한 '커뮤니티 파크'역할의 작은 광장 혹은 공원을 배치 해 시민들이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지요. 지금의 파리를 세계1위 관광도시 (2023년 기준) 으로 만드는 데에도 과거의 이 도시 사업이 핵심적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느껴지지 않나요?


그러나 이 계획 속에는 어두운 면이 존재해요.

바로 블루바르를 만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혁명이 혹시라도 다시 일어났을 때 시민을 쉽게 제압하기 위함"도 있었다고 합니다.


24054834_4.jpg 영화 레미제라블 (2012)


프랑스 대혁명의 모습을 녹여낸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이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민중을 무력으로 제압해오는 왕당파 군대에 맞서기 위해, 혁명군들이 창밖으로 온갖 가구들을 모아 '바리케이트'를 설치했습니다. 당시 작은 골목길이 많은 파리의 특성을 가장 잘 알고있었던 파리의 시민혁명군들의 성공적인 전략이었죠. 가구들로 만든 바리케이트는 정부에 맞서는데 아주 효과적인 역할을 해냈답니다.


19세기 나폴레옹3세의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전처럼 혁명이 다시 일어났을 때 시민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었죠. 파리에 블루바르라는 넓은 거리들이 만들어진 배경을 알고 난뒤, 이제 파리의 아름다운 거리를 떠올리면 이전과는 조금 다른 무거운 마음을 가지게 돼요.


지금의 민주주의의 기반을 가지게 해준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이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과거 속에서 투쟁하고 있다는 마음이 듭니다.


이야기한 배경들을 바탕으로 파리 개조 프로젝트를 바라보면, 이 프로젝트 안에는 두가지 시작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첫번째, 미적으로 아름답고 정돈된 도시환경과 공중보건이 보장되기 시작한 도시계획 컨셉. 두번째, 자유가 보장된 현대 도시의 시초를 만든 민주주의 투쟁의 장소.


이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지금의 파리를 떠올려보면 다른 의미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이런 의미 위에서 자유롭게 이 거리들를 누빌 수 있다는 데에 고마운 마음까지 드는 것 같아요.


만약 파리에 이 글을 읽은 후 가게 된다면, 여러분도 거리 위해서 이 이두가지 의미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파리 개조 프로젝트를 통해 아름다운 도시 거리를 누빌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그리고 자유, 평등, 박애를 위해 싸울 수 있는 현재를 만들어준 파리 시민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떠올려보면 더욱 특별한 여정이 될 것 같아요.


파리 개조 프로젝트의 도시계획 컨셉은, 그 이후로도 현대 파리의 도시계획 안에서 사람보다는 탈 것(19C: 마차, 현대: 자동차)을 중심으로 한 계획으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환경 이슈가 점점 심해지고있는 가운데, 코로나19까지 도시를 덮치자 파리의 거리의 형태는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펜데믹을 마주하며 변화된 파리 도시계획의 이야기를 해보기로 해요.


관심있는 거리 위에서 숨겨진 과거의 배경을 떠올려 보는 특별한 경험을 해보세요. 그 안에서 여러분만의 의미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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