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와 사회운동 4화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은 구체적인 목표의 설정, 전략과 기획에 따른 수행성 강화, 온라인 중심성, 비즈니스와 마케팅 관점의 수용이라는 관점의 변화를 가지고 온다.
먼저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은 구체적인 수치를 통해 기획하고 평가할 수 있다.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은 온라인 영역에 기반하기 때문에, 가시적인 상호작용 데이터는 물론 웹 로그 분석 등을 통해 다양한 사용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구체적인 목표 설정은 모든 사회운동의 핵심이다. 목표의 측정 가능성이 곧 실행 수준과 방법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비용과 인력, 기술의 활용 등 사회운동의 모든 측면에서 가용자원의 정확한 파악은 효과적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기존 사회운동의 목표는 활동가의 모집과 훈련에 맞춰져 있었다. 이에 따라 조직가의 역할이 조직 내에서 가장 크게 대두되었다. 이 역할은 사회운동이 기능하기 위해서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 역시 특정한 역할 중 하나임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활동가 재생산에만 주목한 목표는 측정하기 굉장히 어렵다. 예를 들면 활동가가 정치조직과 유관한 몇 개의 단체 혹은 정당에 가입했는지, 그 인물이 얼마나 자주 집회에 가고 열성적으로 참여했는지, 또 사회운동의 진행 과정에 몇 명의 사람을 새로 동원했는지 등에 대한 판단은 대부분 주관적이고 관계중심적인 측면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즉, 조직담당자 등 소수의 판단 주체가 판단가능한 범위를 결코 넘어서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모든 조직에서 일정한 문제를 야기해왔다.
조직적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이 문제는 측정해야 할 목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사회운동이 당면한 성격에 따라 측정해야 할 효과와 목표는 매번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에 몇 명을 남기느냐만이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이런 목표로는 향후의 조직화 전략을 수정하기 어려우며 잠재적 지지자를 확인하기도 어렵다. 사회운동이 전한 메시지가 얼마나 확산되었는지, 메시지를 통해 구체적인 행동은 얼마나 일어났는지, 또는 어떤 주제, 어투나 디자인이 특히 선호되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전략이 구체적으로 재설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를 통해 구체적인 목표를 측정하고 이를 분석하여 평가할 수 있다면, 목표는 기획이 무엇이냐에 따라 세분화되고, 각 목표를 수행할 인력 역시 다양해진다. 이는 즉시 추가적인 역할과 추가적인 기술 역량을 요청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한편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에선 전략과 기획에 따른 수행성이 강화된다. 콘텐츠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그 제작을 위한 제반 규정을 갖추는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사회운동이 만드는 콘텐츠가 자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작하도록 요청하며, 이에 따른 일정한 톤 앤 매너tone and manner를 유지하도록 만든다.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할 수 있게 되고, 콘텐츠에 대한 일정한 규정을 할 필요가 생기며, 오디언스에 대한 판단이 개입된다면, 이를 곧 전략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에 따른 세부적인 기획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전략과 기획은 모든 사업에서 설정된 목표에 대한 성과를 판단하는 근거 목록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전략을 수정한다는 의미, 기획을 수정한다는 의미가 보다 선명하게 다가올 것이다. 즉 얻고자 하는 오디언스가 변경된다, 전환 목표가 변경된다, 콘텐츠 기획의 제반 사항이 변경된다, 가이드라인이 수정된다 등처럼 어떤 이유에 따라 어떤 부분이 수정되는지가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수행 과정 역시 이에 따라 역시 변경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공통으로 합의된 문서를 활용하기에 영향력 있는 특정 인물이 아닌 열린 상태를 전제로 한 제3의 스테이트먼트들이 판단의 근거가 된다. 즉 모든 판단은 함께 만든 전략과 기획에 의해 집행되지만, 그 외에 세부적인 사항들은 오히려 충분히 자유로워지게 된다.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 전략은 그간 허공에 떠돌던 온라인 영역에서의 사회운동에 대한 논의를 가능하게 한다. 스페인 좌파정당인 포데모스의 2014년 창당 이후 많은 이들이 온라인 공간을 활용한 사회운동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이러한 논의는 대부분 희망과 가능성의 표피에만 집중한 경우가 많아, 사실 포데모스가 레딧(Reddit)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보다 거리의 시민들, 온라인 민주주의, 좌파적 가능성이라는 이미지만 소모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 전략은 온라인 중심성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행될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중심성은 온라인 영역을 어떻게 구축할 것이냐, 온라인 수행의 내용은 무엇인가, 온라인 오디언스는 어떻게 얻으며 이들을 어떻게 오프라인이나 구체적인 실천의 과정으로 유도할 수 있는가, 이에 따라 어떤 퍼널 전략을 세울 것인가 등이 논의될 때에야만 가능하다.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은 그 모든 논의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이름을 달리 할 뿐 오디언스를 참여시켜 특정한 전환을 얻고자 하는 일정한 프로세스의 수행이라는 점에서, 사회운동도 특정한 비즈니스를 수행하고 있으며 특정한 마케팅 방법을 사용한다. 물론 운동사회에 특성상 이렇게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오히려 자본의 방식이라는 거부반응을 강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런데 돈과 사람이 주요한 자원이라는 점은 같고, 그 활용에 대해 일정한 판단을 내려 수행된다는 점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영리에 목적이 있는지, 비영리에 목적이 있는지의 차이만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회운동이 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나름의 대의가 있다고 하여 이 문제가 사라지진 않는다.
한편 운동가 역시 직업일 수 있다. 이를 평생 직업으로서 여기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정치적 목표에 따라 사회운동에 개입된 수준이 각자 다를 순 있겠지만 말이다. 특히 사회운동가는 단순히 공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사회에, 지구적 미래에 더 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 행동하여, 사람들의 삶과 권리를 보호하고, 이를 위한 권력의 획득을 원하며, 또 자신이 가져온 변화와 실패에 대해 져야 할 공적 책임이 큰 사람들이다.
즉 이들 역시 그 분야에서 전문성과 직업윤리를 가진 '프로'가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신이 무엇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일은 몇몇의 역사적 이론서만 본다고 이뤄지진 않는다.
비즈니스나 마케팅 관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프로세스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온 결과다. 이 관점의 저변에 깔린 것들까지 받아들여야 될 필요는 없지만, 이 연구들은 전유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현상의 동학을 이해하여 바로 그 현재의 조건을 깨어가려고 하는 것이 사회운동의 오랜 역사였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그 관점을 단순히 거부하고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저 이상적인 무언가만을 끊임없이 구상하는 과정 그 이상이긴 어려울 것이다. 유용한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거절하고 변형해나가야 한다. 이 관점들은 분명 다른 언어로 조직되어 있지만, 바탕은 생각보다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분명한 시사점을 제시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