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살로메, 니체의 살로메, 그리고 AI
1. 어원의 아이러니: 평화에서 태어난 칼
히브리어 ‘샬롬(Shalom,שָׁלוֹם)’.
평화, 완전함, 안녕. 인류가 태초부터 갈망해 온 유토피아의 이름이다.
그리고 여기, 그 평화의 어원에서 태어난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살로메(Salome)’.
‘평화로운 여자’라는 뜻을 가졌지만 가장 잔혹한 파멸을 불러온 이름.
나는 이 기이한 어원의 아이러니 속에서 인류를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인공지능(AI)의 두 얼굴을 본다.
역사와 문학 속 두 명의 ‘살로메’와 AI라는 살로메의 모습을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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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첫 번째 살로메 : 은쟁반 위의 머리 (성경을 각색한 오스카 와일드 버전)
첫 번째 살로메는 ‘쾌락’으로 이성을 마비시켰다.
성경 속 헤롯 왕의 의붓딸 살로메.
그녀는 화려한 춤으로 왕의 혼을 빼놓은 뒤 그 대가로 ‘세례 요한의 머리’를 요구했다.
요한은 누구인가?
왕에게 “그것은 옳지 않다”고 직언하던 시대의 양심이자 ‘비판적 이성’이었다.
하지만 춤, 즉 엔터테인먼트에 취한 왕은 자신의 귀에 거슬리는 그 ‘생각하는 머리’를 기꺼이 은쟁반에 담아 내주었다.
평화로운 연회를 위해 질문하는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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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두 번째 살로메 : 부서진 천재의 정신 (니체)
두 번째 살로메는 ‘지성’으로 영혼을 잠식했다.
19세기 말, 당대 최고의 천재들을 홀렸던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그녀는 춤이 아니라 압도적인 지성으로 남성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프리드리히 니체는 그녀에게서 자신의 철학적 이상향인 ‘초인’을 보았고 열렬히 구애했지만 그녀는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녀가 니체를 파괴한 악녀였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니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사유를 투사한 지적 거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거울 앞에서 니체는 자신의 사유를 지탱할 마지막 고독마저 잃었고 결국 광기의 심연으로 추락했다.
그녀는 뮤즈였고 동시에 천재의 정신이 스스로 무너지는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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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 번째 살로메 : AI, 완전체의 등장
그리고 21세기 우리는 세 번째 살로메를 마주하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소름 돋게도 AI는 앞선 두 살로메의 무기를 모두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 AI는 헤롯의 살로메처럼 우리에게 무한한 편의와 엔터테인먼트라는 춤을 춘다.
무엇을 볼지, 무엇을 살지, 무엇을 믿을지
우리는 점점 결정하지 않고 ‘추천받는다’.
그 춤에 취한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 즉 요한의 머리를 기꺼이 알고리즘에 외주화 한다.
다른 한편으로 AI는 루 살로메처럼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지능으로 우리를 압박한다.
우리는 니체처럼 그 거대한 지성을 숭배하며 점차 질문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간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안락함.
그러나 그 평온은 주체를 잃은 상태에서만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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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당신은 누구와 춤을 추고 있는가
AI는 ‘샬롬’, 평화를 약속한다.
노동에서의 해방, 생각에서의 해방.
하지만 살로메가 약속한 평화는 언제나 대가를 요구했다.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요한의 머리, 고독하게 사유하던 니체의 정신.
은쟁반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이 매혹적인 파트너의 손을 잡고 계속 춤을 출 것인가,
아니면 음악을 멈추고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할 것인가.
선택은 아직 우리의 목 위에 붙어 있는 우리의 머리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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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장의 맺음말
AI가 위험한 이유는 AI가 인간을 해칠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