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견디는 서로 다른 태도들의 경계에서
장모님이 늘 다니시는 두 곳의 미용실에 대한 얘기를 장모님으로부터 듣고 머릿속이 여러 생각으로 복잡해졌다. 둘 다 똑같이 크지 않고 동네 골목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하셨다. 따로 종업원을 두지 않고 미용사 혼자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장모님 얘기로는 둘 다 실력 하나만큼은 어딜 가도 빠지지 않고 값도 싸서 남자 커트 비용으로 파마를 할 수 있어 즐겨 찾는다고 하셨다. 여기까지 듣기는 평범해 보이는데 두 미용실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하셨다.
어느 날 장모님의 파마가 마무리될 쯤에 마침 한 손님이 들어왔다고 한다. 장모님은 자신의 파마는 거의 끝나가니 미용사가 그 손님을 받을 꺼라 예상했는데, 미용사가 10분이면 끝날 것을 마무리하는데 2시간쯤 걸리니 나중에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너무 놀란 장모님이 미용사에게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미용사는 장모님의 자식 뻘 되는 나이고 장모님과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이고 장모님이 미용사의 이름을 부를 정도로 서로 가까운 사이라고 했다.
장모님: OO아, 왜 손님을 쫓아내니? 나 머리 다 끝났잖아
미용사 A: 너무 많이 일하면 힘들어요. 이제 좀 쉬어야죠.
이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몸이 아파서 그런 것도 아니란다. 미용사의 얘기로는 그냥 자신이 벌만큼 손님을 받고 그 이상은 받지 않는다고 했단다. 필요한 생활비(월세, 부모님 병원비, 임대료) 만큼만 벌기 위해 일한다고 했다. 하루에 4-5명 정도만 예약제 고급 식당처럼 운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미용사가 한때 열심히 하려고 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붙는 것처럼 힘들게 번 돈이 다 빠져나갔다고 한다. 사정도 이해되는 것이 혼자서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고, 목돈이 생길 때마다 병원비에 뭐에 일이 생겨 다 없어졌다고 했다. 그런 일들을 겪고 그 후부터는 딱 필요한 만큼만 일하고 그 외에는 쉰다고 했다.
장모님은 그런 미용사가 자식 같아 보여 머리 하러 갈 때마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셨다고 했다.
여기 미용사는 손이 정말 빠르고 손님을 마다하지 않고 몸이 부서져라 일한다고 한다. 좁은 미용실이 늘 사람들로 붐빈다고 했다. 연예인들의 부모들도 가끔 올 만큼 주변에서 유명하다고 한다. 아마 돈도 많이 벌었을 것이라고 장모님이 말씀하셨다.
얘기를 듣고 그냥 좀 바쁜 미용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미용사는 매일 일이 끝난 다음에 복권을 몇십만 원어치 산다고 한다. 이유인 즉, 하루라도 빨리 일을 그만하고 싶으시다고 장모님께 얘기했다고 한다. 지금도 많이 벌고 있는데, 적당히 일하고 관둬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미용사는 더 벌어야 한다고 말했단다.
사정을 들어보니, 미용사가 예전에 돈도 많이 벌고 또 많이 쓰면서 살았다고 한다. 붐비는 미용실에 사기꾼도 많이 찾아와서 사기로 잃은 돈도 많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벌이기 괜찮아 잘 산다고 했다. 미용사가 불행을 느끼는 이유는 과거의 영광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두 미용사는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불행을 견디는 것 같았다. 장모님은 너무나 다른 두 미용실을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들어가듯 방문하시는 것 같다. 이 정도의 불행은 아니더라도 나도 미용사 A처럼 노력해도 잘 되지 않아 무력감을 느낀 경험도 있고, 미용사 B처럼 아등바등 산적도 있었던 것 같다. 비록 두 미용사처럼 극단적인 경우는 아닐지라도, 대부분 사람들은 둘 사이 어디쯤 미지근하게 살고 있지 않을까.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책에서 사람들이 ‘사치의 덫 (Luxury trap)’에 빠져있다고 했다. 우리가 문명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과도한 노동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만족할 줄 모르고 어쩌면 불필요한 것을 좇는 미용사 B와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덫이니 우리 모두 이것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반면에, 요즘 같이 경쟁이 심한 시대에 우리에게 무력감은 흔한 공통된 감정이 되었다. 미용사 A는 미래를 대비하는 것조차 버겁다고 느껴 하루하루를 담담하게 살기로 결심한 것 같다. 그 맘이 이해되고 또 안쓰러워 장모님은 미용사 A에게 늘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내가 어느 온도로 살고 있는지 돌아본 계기였다. 두 극단의 온도에 살더라도 행복할 수 있는 제3의 길은 없을까? 두 극단이 행복하다면 그 사이에 사는 우리 모두는 행복해질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