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운전 면허증을 갱신할 때가 되면 고민하는 것이 있다. 새로 증명사진을 찍는 수고로움을 거칠 것인지 아니면 예전에 찍어놓은 증명사진 중 적당한 것을 쓸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나의 귀찮음 때문에 후자를 선택할 때가 많다.
얼마 전 가까운 운전면허 시험장에 운전면허증을 갱신하러 갔다. 담당자 앞에 서니, 증명사진은 '신청일부터 6개월 내에 촬영된 컬러사진'이어야 한다는 문구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눈을 딱 감고 담당자에게 신분증과 철 지난 증명사진을 내밀었다.
이거 6개월 내에 촬영한 거 맞아요?
"많이 다른가?"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뭐라고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며 망설이고 있으니, 담당자가 사진과 너무 달라 쓸 수 없다고 했다. 그 사이에 내가 너무 많이 늙어 버린 것인가? 내가 보기에는 달라진 것이 없는데... 현실을 부정하는 단계에 이른다. 암튼 나의 귀찮음이 더 귀찮은 일을 만들었다. 발길을 돌려 동네 사진관에 들려야 했다.
이상(이미지)과 현실의 차이
내 머릿속에 갖고 있는 나에 대한 이미지는 아마 10년 정도 젊은 나의 모습인 것 같다. 이것이 이상(이미지)이고, 현실은 현재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다. 매일 거울을 보며 현실을 상기시키는대도 '이상'은 꿈적도 않는다. 좀처럼 업데이트가 될 생각이 없나 보다. 틈틈이 여행 다니며 사진을 찍었을 때도 사진에 찍힌 내 모습을 현실로 받아들이기는커녕 사진이 잘못 나온 것이라며 지우기 바빴다. 거울을 볼 때도 내가 제일 괜찮아 보이는 욕실 거울로 어두침침하게 봐왔다. 이렇게 세월에 변해가는 나의 모습을 왜곡하여 머릿속 젊은 나의 모습과 맞추기를 서슴지 않는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 얼굴에 대한 것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평소에 내가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릴 때도 그랬다. 눈을 감고 생각해보면, 40 대 중반에서 50 대 초반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창 왕성하고 열정적일 때의 모습이다. 간간히 고향집에 들러 현실과 마주하지만, 나의 이상은 끄떡없다. 너무나 강하게 내 기억 속에 각인된 부모님의 젊은 시절 모습은 현재의 늙은 모습으로 변경될 기미가 없다. 순간순간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확인하고 부모님이 세월을 온몸에 새기는 것을 다만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여전히 집으로 돌아와 눈을 감으면 젊은 부모님 모습이 떠올랐었다.
얼마 전 아버지의 얼굴을 캔버스에 그리며 다시 한번 그 차이를 느꼈다. 여든 살이 된 아버지를 그리기 위해, 어머니가 찍어서 보내 준 아버지 사진을 2시간 동안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주름 하나, 눈매, 볼살 그리고 머리 한 올까지 꼼꼼히 살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마치 내가 손으로 아버지 얼굴 구석구석을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극한 관찰의 시간이 지나 그림이 마무리될 때쯤, 늙은 아버지의 모습이 내 머릿속 젊은 아버지를 서서히 대체하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 쓸쓸한 마음도 들었고, 괜히 그림을 그렸나 후회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현실은 진실이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는 수고로움을 거치지 않더라도, 부모님을 자주 보고 자세히 관찰했더라면 애초에 이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가 어려워 이런 수고를 겪은 것이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것을 글로 쓰는 것처럼, 눈으로 보이는 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뇌에 입체적으로 기억되는 것 같다. 조만간, 나의 자화상을 그려서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좁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