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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심 Sep 03. 2022

불행을 위로하지 않는 친구 vs 성공을 질투하는 친구

좋은 친구의 경계에서

우리 곁에 두어야 할 친구는 누구일까?



어느 쪽도 내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거 때 투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면 고민이 되는 상황이다. 친구로부터 위로를 받으면 불행을 극복하는 힘을 얻을 수 있고, 성공에 축하받으면 내 자존감이 올라간다. 하지만 성공에 축하는 못할 망정 시기와 질투를 하고, 불행을 위로하지 않고 오히려 상처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친구들이 있다.



삶의 한 꼭지에서 불행이나 성공을 경험하고 주변 친구들의 반응을 살펴 보게 된다. 이 순간이 어쩌면 곁에 두어야 할 사람을 알아보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적어도 친구는 양보다 질이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이 기회를 반겨야 한다.




불행은 각자가 견디는 것이 아닐까?


나는 불행을 위로하지 않는 친구를 곁을 내주는 것에 한 표를 던진다. 사실 살면서 누가 위로를 해줘서 위로를 받은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불행을 위로하지 않는' 친구에게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친구가 도울 수 없는 불행을 털어놓아 슬픈 감정이 배가되는 것도 싫다 (슬픔은 나누면 두배가 된다-라고 믿는다). 다만 친구가 위로하지 않아도, 그 친구와 함께 있거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나에게 위로가 된다 (슬픔을 숨기고 함께 있으면 슬픔은 반으로 줄어든다). 어설픈 위로와 값싼 동정은 사절이니 곁만 잠깐 내어주면 땡큐이다.



질투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과도한 질투심만큼 파괴적인 감정이 또 있을까? 이런 사람은 자존감이 낮고, 남을 비방하기 쉬운 캐릭터다. 주변 모든 사람을 괴로움에 빠뜨리는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피하고 싶다. 어쩌면 질투심은 자연스럽다. 특히 자신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친구가 성공하면 질투심을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과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친구가 성공하는 것에 질투심을 느끼는 친구는 최악이니 피해야 한다. 아마 피하지 않더라도 대체로 열등감에 친구가 먼저 연락을 끊을 것이다. 그럴 때는 친구가 떠난 것에 홀가분함을 느껴야 한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니 말이다.



성공을 축하하는 친구도 좋지만,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불행을 공감하고 동정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것은 어렵다고 한다.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욕구를 억누를 수 있는 성숙된 인격을 갖춘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심리학자와 관계 전문가들은 불행을 동정하는 사람보다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사람을 택하라고 말한다 [참조1].


그런데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나? 축하와 위로는 연기할 수 있으니 그것에 의지해 친구를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진심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하지만 질투심은 숨기려 해도 송곳과 같이 삐져나온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질투심 많은 친구를 멀리하는 것이 안전한 선택일 수 있다.


만약 '진심으로' 축하할  있는 성숙한 친구라고 하더라도 곁에 둘지 고민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기본은 나와 비슷한 인격 수준을 갖고 있느냐이다. 나보다 지나치게 훌륭한 인격을 갖고 있는 친구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이 아닐까? 그러니 나처럼 적당히 질투하는 친구가 좋다. 그래서 심하게 질투하지 않는다면, 축하해주지 않고 위로하지 않아도 친구로 괜찮다.




이런저런 이유로 친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들만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참조1]: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43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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