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기억을 찾아서

by 권경덕


시간이 흐를수록 대부분의 기억은 흐려지거나 삭제되지만, 아주 오래 된 일이어도 어제 일처럼 생생한 기억이 있다.


방금 떠오른 장면에는 어린 나와 엄마가 등장한다. 병실에서 항문에 좌약을 넣고 배변을 한동안 참고 있는, 곤경에 처한 표정의 어린 내가 있다. 더이상 못 참겠다고 화장실로 뛰쳐 나가려고 하는 어린 나와, 좀 더 참아야 한다고 나를 달래며 제지하는 엄마가 있다. 어리지만 배변 교육을 확실히 받은 꼬마는 공공장소에서 실례하면 세상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엉덩이에 있는 힘껏 힘을 주고 있다.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른 그 장면은 불과 몇 초에 불과하지만 지금도 괄약근이 움찔할 정도로 생생하다. 어린 나의 찡그린 표정, 곤경에 빠진 그 때의 심정이 지금까지 고스란히 전해지고,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젊은 엄마의 모습에 괜히 뭉클하기도 하다. 그 때 내가 몇 살이었는지, 어느 병원이었는지, 그 날 왜 병원에 갔고 병원을 나와서 뭘 했는지도 전혀 기억할 수 없다. 그저 어느 병실 안에서 엄마와 나 사이의 대치 상황, 그 때의 긴장감과 아련함이 하나의 장면 속에 묶여 떠오를 뿐이다.


기억은 시간이 지날 수록 바래지기 마련이다. 뇌에도 용량이 있고 유통기한이 있을 테니, 그 나름의 메커니즘에 따라 기억을 분류하고 저장하고 폐기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도 있다. 뇌가 불필요하다 판단해서 진작에 삭제했으나 어느날 그 장면을 다시 마주하는 경우, 그 날 찍은 사진을 발견하는 경우다. 기억에 없는 사진을 보면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계속 보고 있다 보면 기억이 나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가, 이따금씩 기억 나는 척 스스로를 기만하기도 하는 건 뇌의 교묘한 능력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흐릿하고 모호한 기억 속의 어릴 적 사진은 왠지 모르게 매혹적이다. 추억에 젖는 것과는 사뭇 다른 기분. 기억에 없지만 사진 속엔 분명히 내가 있고, 내가 아는 사람들이 있고, 너무도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이 있다. 기억나지 않는 장면 속의 나를 마주할 때, 그 순간의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나를 매혹한다. 스마트폰으로 하루에도 수십장씩 찍고 지우며 잡히지 않는 찰나의 장면들과 마주하고, 온갖 디지털 이미지들이 범람하는 환경 속에 코 밖고 살다가, 수십년 된 필름 사진을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고, 화면을 확대하는 대신 얼굴을 가까이 대고 들여다 보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엄마는 온통 흰색이다. 발목 위에서 뚝 끊기는 흰색 바지와 흰색 상의, 그리고 마치 요즘 나온 에코백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흰색 가방을 메고 있다. 아빠는 기장 수선을 일부러 안 한 건지, 전날에 급하게 사느라 수선할 시간이 없었던 건지 땅바닥까지 끌리는 청바지 입고 있다. 어린 나는 노란색 신발과 흰색 스타킹, 빨간색 멜빵으로 스타일을 내고서 아빠에게 안긴 채 멀뚱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한 귀퉁이에 연도와 날짜가 적혀있다. '89. 6. 4'. 사진 속의 꼬마는 세 살, 꼬마를 안고 있는 남자는 서른 한 살.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스물 일곱 살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지금의 나보다 어린 엄마 아빠가 나를 안고 있는 장면은 비현실적이다 못해 초월적이고 판타지스럽다. 거기다 아빠가 청바지 입은 모습이라니. 내 기억 속에 익숙한 아빠의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 패션. 또 엄마의 앳된 얼굴. 아들이 커서 얼마나 당신의 뜻에 반하는 삶을 살아갈지 아직 모르는 새댁의 순진한 얼굴이리라. 네모난 프레임 안에 고정된 장면. 엄마 아빠도 어리고, 나도 어리다. 그 장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떤 이야기가 묻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조용히 발굴을 기다리고 있는, 수십년 된 유물같은 이야기.






남겨진 사진 한 장이 나를 매혹하는 요인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본다. 지극히 사적인 경험과 기록이지만, 그것이 주는 매혹이 나에게만 의미 있는 건 아닐 거라는 생각,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내가 받은 느낌이 무르익어 밖으로 향을 피울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살아온 이야기, 두 남녀가 만드는 고유한 가정 환경 속에서 길러진 아이의 이야기, 그런 잊혀진 이야기들을 다시 복원하고 싶은 마음이 모락 모락 피어나는 건, 바래진 사진이 주는 묘한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카네이션 대신 갈비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