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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릉빈가 Apr 07. 2022

안경을 바꿨다

안경을 바꿨다. 


5년 전에는 안경 렌즈가 좀 크면 좋겠다 싶어서 거짓말 조금 보태면 얼굴 반만한 렌즈를 선택했는데, 막상 주문해서 착용했을 때는 너무 무거웠다. 나는 시력이 너무 안 좋기 때문에 렌즈를 최소 4중 압축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안경 렌즈의 두께도 두꺼워질 뿐 아니라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그 생각을 하지 못한 내 불찰이었다. 이미 맞춘 것을 반품할 수도 없었고, 이미 그 때도 시력이 더 떨어져 새 도수 렌즈로 바꾼 상태였기 때문에 나름 적응하면서 잘 지내왔다. 


이따금 안경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무엇보다도 시력이 안 좋아 렌즈값만 20만 원은 족히 드는 입장에서 안경을 바꾸고 싶다고 휙휙 바꾸기는 쉽지 않았는데 어제 그저께 엄마가 안경을 바꿔야겠다고 하셔서 잘 됐다 싶어서 같이 바꿨다. 



오늘 새 안경을 끼니 순간 눈이 부셨다. 안경 매장에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는데 순간 눈이 부셨다. 매장이 훨씬 더 반짝거리며 휘황찬란하게 느껴졌다. 불편한 점이 있냐고 묻는 안경사에게 "너무 밝아요. 너무 휘황찬란하니 적응 안 되네요." 했더니 안경사가 웃으면서 "새 렌즈로 바꿨으니까요." 라고 답했다. 


그렇다. 그저 렌즈 하나를 바꾸었을 뿐인데 보이는 게 너무 달랐다. 이렇게 밝고, 깨끗했었나란 생각이 들었다. 실로 5년 간 안경을 쓰면서 렌즈 한 번 바꾸지 않다 보니 렌즈에 기스가 정말 장난 아니게 많았다. 마치 수백 명이 지친 스케이트장을 한 번도 정빙기 안 돌린 것 같은 렌즈 상태여서 아무리 닦아도 깨끗하지 못하고 뭔가 흐릿했다. 그런 렌즈로 보는 세상은 뭔가 깨끗하지 못하고 흐릿했다. 그런데 또 그걸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살았다. 원래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파란 하늘 밑에 벚꽃이 피어있는 가로수길을 걸으니 눈이 더 부신다. 닿기도 조심스러울 만큼 흠집 하나 없는 새 렌즈를 통한 세상은 분명 같으나 달랐다. '우리 동네가 원래는 이랬구나'하고 다시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새 안경을 끼고 매일 걷던 그 길조차 눈부시게 느껴지는 나를 보며 내가 세상을 보는 '렌즈'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다. 담벼락에 칠해진 페인트색조차도 이전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광택 있어 보이는데 그걸 여지껏 모르고 살았다. 나는 얼마나 오래 동안 제대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던 것일까란 생각을 했다. 나는 올바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항상 갈고 닦아야 하는가 보다. 그 날의 기분에 따라서 칭찬조차도 비아냥으로 들리기 쉬운 우리에게 있어서 애초에 흡집나고 흐릿한 렌즈를 장착한 채로 세상을 바라보고 듣고 있으면 제대로 된 것들이 다가오지 못할 것이다. 항상 깨끗하게, 언제든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그렇게 갈고 닦아야 한다. 이렇게 새 안경 하나만으로도 언제나 같은 세상도 달라 보이니... 나는 지금껏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필터를 낀 채 바라본 것일까. 


봄이 왔다. 이곳저곳에서 꽃이 만발하고 있다. 하늘은 더욱 푸르러질 것이고, 녹음도 짙어질 것이다. 안경도 바꾼 김에 나를 한 번 깨끗하게 닦아보고 털어봐야겠다.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던 내 안의 눈부심을 찾을 것 같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더러움도 발견할 것 같다. 눈부신 것은 찬란하게, 더러운 것은 깨끗하게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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