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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아, 고마워.

by 가릉빈가

별아, 너를 처음 만난 날이 눈 앞에 여전히 생생하다.


너를 커다란 종이상자에 담고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가면서 1시간 동안 혼자서 집으로 오는 동안 나는 내내 좌불안석이었어. 그렇게 불안한 것엔 펫샵 직원의 말도 한 몫 했어. '고양이는 예민한 동물이라서 집으로 데려가도 일주일 내내 구석에 박혀서 안 나올 수도 있어요.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알아서 나올 테니까요.'


나는 그때 사실 정말 겁이 났었어. 고양이를 키워본 적도 없어서 자신도 없었어. 사람과 동물도 서로 맞아야 한다고 하는데 '네가 우리를 안 좋아면 어떡하지?'란 불안감에, '네가 우리 집에 와서 불편해하면 어떡하지?' 란 걱정이 산더미였어. 네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할까 봐 그게 최고 걱정이었어. 널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지 미심쩍었어.


집으로 오는 그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 동안 네가 그 종이상자 안에서 어떻게 있는지 무척 궁금했지만, 종이상자를 지하철 안에서 열어봤다가 네가 튀어나올까 봐 겁이 나서 그저 속으로 ' 잘 있겠지... 숨 막혀 고통 받고 있는 거 아냐? 종이상자니까... 공기는 부족하지 않겠지... 몸도 작고, 상자는 무척 크니까 괜찮을 거야..'하면서 나는 정말 바들바들거리면서 널 데려왔어. 생각해 보면 캐리어 하나 준비할 줄 모르고 무턱대고 데리고 온 너야.


집에 도착해서 천천히 상자를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열었을 때 나는 그 때 너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단다. 우리 집에 도착했을 때 너의 첫 모습은 배를 훤히 보인 채로 그 상자 안에서 쿨쿨 잘만 자고 있더라. 그걸 보고서 이 아이가 우릴 싫어하진 않는구나... 잘 왔다고 생각해주는 것 같아서 너무 고마웠었어. 그러면서 속으로 '고양이가 예민하긴 무슨... 잘만 잔다'하면서 안도의 숨을 내쉰 게 얼마 안 된 듯한데 벌써 너와 내가 15년이란 세월을 같이 보내고, 너를 내 곁에서 떠나 보내게 됐구나.


너는 이름이 마치 별이였던 듯 단 두 번만에 네 이름을 바로 알아듣는 아이였지. 제 집처럼 집을 돌아다니다가도 너는 그 펫샵 직원의 말처럼 소파 밑에 쏙 들어가 숨더라. 그래도 "별아~"라고 부르면 너는 소파 밑에서 얼굴만 쏙 내밀었어. 그리고서 다시 소파 밑으로 들어갔지. 그러고 있다 몇 분 후에 또 "별아~"하고 네 이름을 부르면 또 얼굴 보여주고 쏙 들어갔어.


너는 항상 네 이름에 반응해줬지. 그렇게 네 이름만 들리면 숨어있다가도 꼬박꼬박 얼굴 보여주더니 한 3개월 지나니까 이름 부르면 얼굴 대신 꼬리만 파닥거려주고, 귀만 쫑끗거리는 것으로 바뀌었지. 그래도 너는 우리가 네 이름을 몇 번을 귀찮도록 계속 불러도 너는 언제나 반응해주는 아이였어. 그런 너는 아파서 힘든 와중에도 우리가 "별아~"하고 이름을 부르면 자기 부르는 거 알고 있다고 또 꼬리 흔들어주고, 귀 움직여주는 착한 아이지.


너는 단 것을 무척 좋아하잖니. 더불어 밀가루 음식과 흰자도. 난 너 같이 단 음식과 밀가루와 계란 흰 자에 목 매는 고양이는 생전 처음 봤어. 기억하니? 너 우리 집에 온 지 6개월도 안 되어서 말야... 대접에다가 팥빙수 만들어놨더니 아무리 말려도 기어코 그 팥빙수에 네 앞 발 폭 담갔지. 덕분에 그거 먹지도 못하고 버렸어. 빵 먹을 때면 마치 강아지마냥 앞에 와서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달라 하고, 국수 끓이고 있으면 물 올려놓은 순간부터 다리 사이를 베베 감고, 계란 삶아서 계란 까고 있으면 '에엥~'하는 정말 작은 목소리로 식탁 위에 와서 대기하고 있었지.


그런 모습은 아파도 똑같더라. 그렇게 아파서 움직이는 것 하나 제대로 못하고 그저 가만히 누워있는 것 말곤 할 수 없는 네가 엄마가 사과 깎을 때 단내가 났는지 그 와중에도 너 고개 번쩍 들어서 엄마를 쳐다봤다며? 엄마가 그 이야기를 하는데 순간 풋! 하고 웃음이 나오면서 그 아프고, 유동식 하나 목으로 넘기기 힘든 와중에도 우리 별이는 하나 바뀐 게 없구나 싶어서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너는 여전히 그렇게 단 것도 종아해서 네 몸이 아파 못 움직일 뿐이지 너의 맘은, 너의 모든 것은 이전과 똑같다는 게 눈물 났다.


별이 네가 다른 곳에는 스크래치 작업을 안 했는데, 유달리 소파 천은 그렇게 좋아했지. 내 주먹보다 좀 큰 네가 그 크고 비싼 소파를 걸레짝으로 만들어놓는데는 채 3개월도 안 걸리더라. 그 뒤부터 우리집 소파 없어졌잖아. 우리 집 소파 없이 생활한 기간은 네가 우리 집에 온 시간과 거의 동일해. 우리 그 뒤부터 천 붙어 있는 의자도 안 쓰잖니. 우리 집 싹 다 온리 목재로 바뀌었잖아. 너는 또 나무로 된 가구는 안 긁는 애라서 다 딱딱하게 생활하고 있잖니.


그리고 네가 꽃을 얼마나 좋아하니. 뜯어놓고, 꺾어놓고. 그렇게 작은 주제에 화분에 키워놓은 모든 식물들을 망가트리는데 정말 1일이 안 걸리더라. 항상 식물 키우는 집이었는데 너 온 이후로 식물 키울 생각을 아예 안 하잖니. 그리고 넌 안개꼿도 유달리 좋아하잖아. 꽃과 함께 같이 포장하는 안개꽃을 너는 뭐가 그리 좋아하는지, 지인 졸업식 때 주려고 미리 산 꽃다발을 네가 망가트릴까 봐 냉장고 맨 위에 올려놨는데, 넌 그 조그마한 몸뚱이로 2미터는 되는 냉장고를 한 방에 뛰어올라 안개꽃을 쟁취하는 모습에 기암을 토했지. 너는 정말 높은 곳도 잘 올라가는 애였어. 모든 고양이가 너 같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별이 네가 특출난 거더라.


무엇보다도 <스타킹 부재 불안증>에 걸린 고양이는 세상에서 별이 너 하나일 거야. 스타킹을 물고 그 들리지도 않을 만큼 작은 울음소리로 '에엥~'. '에엥~'하고 울어대서는 항상 방문 앞에다가 놓았잖니. 딴에는 스타킹을 쥐로 착각해서 그런 건가 싶어서 처음엔 귀여워서 그냥 내버려뒀는데 몇 년 뒤에 안 되겠다 싶어서 스타킹을 다 치우니까 별이 너 동공지진 났더라. 스타킹 찾아서 그렇게 집안을 뒤질 줄은 몰랐어. 그래서 우리 집은 네가 온 이후부터 항상 발목 스타킹이고, 판타롱 스타킹이고 몇 개가 뒹굴러 다니잖니. 그러면 너는 항상 그걸 물고 '에엥~', '에엥~'. 그건 네가 아파서 움직이기 직전까지 한 행동이잖니. 나는 그 행동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단다.


별아. 우리 집은 말야. 그리고 나는 말야. 너를 만나기 전과 너를 만난 후로 인생이 달라졌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만난 너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깨닫고, 느끼고, 알게 됐는지 모르겠어.


너를 통해 존재의 사랑스러움을 깨달았다. 사람도 동물도 세상 어느 무엇도 별이 너처럼 존재 자체로 사랑스러운 생물은 없을 거야. 사람도 너만큼 사랑스럽고 예쁠 수 있을까. 너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어. 그저 앉아만 있어도, 귀만 쫑긋거려도, 그저 거실을 거닐고 있어도, 자고 있어도 그냥 너는 존재 자체로 별이야. 너를 보며 나를 반추해 본 적도 있단다. 나는 너만큼 사랑스러울까. 사람은 별이 너처럼 그래야 한다고.


너의 그 사랑스러움이 결국 길냥이를 생각하게 했다. 네가 푹신한 것을 좋아하는 걸 보면서, 따뜻한 곳을 찾아다는 것을 보면서, 물을 많이 먹는 걸 보면서, 때론 아파서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다른 동물들을 생각하게 됐어. 다른 동물들도 너와 비슷할 것 같단 생각이 드니까, 조금만 보호해주고 손길이 전해진다면 좋겠다란 생각이 드니까 캣맘을 하게 된 거야. 너로 인해서야. 네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다른 고양이에게도, 강아지에게도 그 밖의 다른 동물들에게도 손길이 닿게 되더라. 나는 별이 너 만나기 전에는 동물 쪽으론 별로 기부 안 했어. 근데 지금은 최우선적으로 기부하는 곳이 동물에 관련된 거야. 네 덕이야.


별이 너는 심지어 그렇게 극심하게 아픈 와중에도 예쁘고 사랑스럽더라. 움직이지 못해서 화장실도 못 가니 너는 '엥!'하고 울어서 화장실 가고 싶다고 표현하고, 배고프면 또 '엥!'하고 울어서 밥 달라 했지. 그 모습도 예뻤어. 그 와중에도 너 맘에 안 들면 성질냈잖니. 엄마가 너한테 한 대 맞았다고 웃으시더라.


그리고 동물학대에도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게 됐는지. 이전에 동물 학대했다는 기사 보면 '그 사람 미쳤나?' 정도였는데 지금은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분노가 일다 못해 눈물까지 쏟아져. 너 같은 애들을 어디 학대할 곳이 있다고 그렇게 할까 싶어서 억울하고 원망스러운 거 있지?


별아, 네가 시작이야.

네가 많은 것들을 하게 해 줬어. 네가 나에게 해 준 것은 다 말할 수 없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세어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네가 나에게 준 것들은 너무 많고, 크고, 소중해. 그런 것에 비해서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아 너무 많이 미안하고, 미안하고, 또 미안해. 너에게 받은 것들의 일부라도 너에게 전달됐는지 잘 모르겠어. 더 많은 것을 주었어야 했는데, 네가 더 행복하길 바라는데 너는 어땠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랑 함께 했던 거 15년이란 시간이 너에게 너무 싫지 않은 시간이었으면 좋겠어.


나는 너와 함께 한 시간이 아득해. 솔직히 15년이란 시간 자체가 믿어지지 않아. 너와 함께 한 지 고작 2-3년 밖에 된 것 같지 않은데 벌써 15년이 흘렀다고 하네. 너도 나이를 먹고, 나도 이렇게 나이를 먹었다라는 게 유달리 믿겨지지 않는 날이야. 너와 내가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니.. 너무 짧다, 그치? 혼자 보내기 안쓰러운데, 그 길 너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별아, 고마워.

누구는 고양이별에서 기다려줬으면 한다고 하는데 나는 있잖니. 항상 바라는 건데, 네가 좋은 부모 밑에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너도 나도 모르겠지만, 먼 훗날에 그저 옷깃이라도 스쳤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기도해. 그렇게라도 좋으니까 제발 한 번이라도 더 닿고 싶구나.


사랑한다. 별아. 편히 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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