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양일 간 제 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가 가능한 날입니다. 원래는 사전투표를 썩 좋아하지 않아서 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엄마가 하도 사전투표를 하자고 독촉을 해서 결국 주섬주섬 움직여서 바로 코 앞에 있는 사전투표장을 가는데 이미 멀찍이 봐도 줄이 긴 것이 보입니다. 투표 당일날에도 시간대를 잘 잡아서 그런지 지금껏 수 번의 투표를 하면서도 이렇다하게 기다리면서 투표한 적이 없는데 5-6미터는 길게 늘어서 있는 줄에 서 있자니 약간 생뚱맞았습니다. 사전투표가 원래 이렇게 줄이 길에 늘어서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왠지 투표율이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분 가까이 기다려서 투표를 하고서 순간 나도 인증샷 좀 찍어볼까란 생각이 들어서 손등에다가 도장을 찍었는데 이것도 기술이 필요한지 도장이 번졌습니다. 예전에 다른 사람들이 올려놓은 투표 인증샷을 보면 선명하게 잘만 찍혀 있었는데 말입니다. 뭐가 문제였나란 생각을 1초 한 후에 깔끔하게 넘겼습니다.
같이 사전투표를 한 엄마는 가려고 하셨던 병원을 가고, 저는 스타벅스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투표장을 나오고 하늘을 보니 뭔가 회색빛의 살짝 을씨년스러운 것이 순간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그마한 하얀 눈송이가 나폴나폴 내려주면 참 좋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따금 이럴 때가 있습니다. 눈이 내려주면 좋겠다고요. 그렇게 천천히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어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데 오늘이 딱 그런 마음이 쏙 들어왔습니다. 마치 지금이라도 눈이 내려준다면 더할나위 없이 위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령 진눈깨비라고 할지라도.
다른 때보다도 발걸음을 느리게 해서 도착한 스타벅스에서 주문을 하고 잠시 기다리니 바로 이름을 불렀습니다. 홀더를 끼려고 하니 그새 홀더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에메랄드빛 배경에 분홍색 꽃이 그려져 있는 누가 봐도 '봄입니다'라고 알리고 있는 홀더를 보니 봄이 이제 문턱까지 온 것을 알면서도 다시 한 번 봄이 왔음을 느꼈습니다. 벌써 겨울의 색채는 사라지고, 봄의 옴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테이크아웃 한 커피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처음 집에 나설 때에도 불었던 바람이 제법 더 세게 불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봄이 성큼 다가와서 그런지 겨울처럼 차갑거나 아리지 않고, 뭔가 부드럽게 감싸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더군다나 부는 바람이 등 뒤에서 불어오는 터라 느낌이 참 묘했습니다. 마치 바람이 등을 밀어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가 걷는 게 아니라 바람이 어서 가라고 밀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로 바람 때문에 내 걸음의 보폭보다도 더 많이 앞으로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느낌을 받으니 순간 '괜찮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바람에게 격려를 받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독여주는 것 같은 느낌에 마음이 한결 누그러지면서 새파란 하늘에 하얀 벚꽃잎이 일렁거리는 풍경이 눈 앞에 선명하게 그려졌습니다.
제 마음이 짧은 시간에도 이렇게나 바뀝니다. 사전투표 나오는 길에는 뭐가 마음이 그랬는지 눈이 내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스타벅스 컵홀더를 보고서는 봄이 옴을 느끼고, 등 뒤에서 부는 바람에 격려를 받으며 어느새 한 달 후에나 필 벚꽃을 벌써부터 기다립니다. 봄이 옵니다. 겨울의 묵었던 것들은 이제 털어내고, 서둘러 오는 봄을 맞이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