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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희 Feb 13. 2022

행복이가 갑작스럽게 떠났습니다

토요일 아침, 엄마가 설거지 할 때엔 집에 있는 고양이가 다 몰려와서 간식을 달라고 조릅니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행복이도 냉장고 위에서 엥~엥~하는 특유의 작고 귀여운 소리를 내며 간식을 달라고 졸랐습니다. 마침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캔이 떨어져서 엄마는 "오늘은 없어"라고 했고, 남은 설거지를 마저 했습니다. 설거지를 다 마치고 잠시 쉬려고 의자에 앉기 얼마 지나지 않아 물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소리나는 곳을 돌아봤을 때에는 행복이가 냉장고에 떨어져 김치냉장고 위에 있었고, 그게 행복이의 마지막입니다.


너무 당황하고 황당한 나머지 엄마는 제대로 신발이나 양말도 못 챙길 뻔한 채 동물병원으로 달려갈 뻔했고, 수의사는 심장마비라 했습니다. 심정지라 했습니다. 냉장고에서 떨어졌을 땐 이미 심장이 멈춘 상태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상황을 납득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수의사는 흔한 일이라며, 고양이들 잘 있다가도 갑자기 심장이 멈춰서 죽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설명하지만 이런 것을 상상할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되겠습니까. 불과 몇 분 전에 간식 달라고 조른 애가 몇 분 후에 심장이 멈춰서 죽었다는 걸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이게 정녕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요.


더욱 황망한 건 행복이가 건강검진을 받은 지 채 3개월도 안 됐다는 것입니다. 장기, 혈액 모두 다 건강했습니다. 수치 다 좋았고, 문제 하나도 없었습니다. 치주염이 있다고 해서 그 날 스케일링까지 싹 해 줬습니다. 그것 외엔 정말 아무 문제 없는 클린 그 자체였습니다. 검사결과를 보면서 아무 문제 없음에 행복이에게 고마워한 게 불과 3개월도 안 된 나름 최근의 일입니다. 식욕도 좋고, 배변활동도 활발하며, 잘 지내는 아이였습니다. 어제도 밥 잘 먹고, 화장실 가는 것도 눈으로 직접 확인했고, 또 빗질도 해주고, 만져주니 골골대던 정말 건강한 행복이었어요. 그렇게 건강한 애가 왜 일순간에 타이머를 설정해놓은 것마냥 심장이 멈추냔 말입니다. 아직 행복이 건강검진 기록이 제 메일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요.


엄마가 화장해주는 장례식장으로 바로 향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건 행복에게 사후경직이 나타나지 않아서입니다. 정말 갑자기 찾아온 죽음에 모두들 황망해했고, 마침 주말교육을 듣고 있던 저는 병원까지는 따라가지는 못햇던 터라 마지막 인사도 해야할 것 같아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집을 떠날 때까지 2시간이 넘게 있었는데도 행복이는 따뜻했고, 여전히 몸이 부들부들했습니다. 만지고 안고 뭘 해도 그저 살아있을 때와 같은 감촉. 다른 건 나와 눈을 맞추지 않는 것뿐입니다. 골골소리를 내지 않을 뿐이고, 배를 뒤집지 않을 뿐이죠. 수의사도 그랬다더군요. "몸이 따뜻한데 죽었네요."


장례식장에 따라갈 수가 없었던 저는 이미 재가 된 행복이를 집에서 맞이했습니다. 엄마에게 물었죠. 사후경직이 화장터에서는 있었냐고. 거기까지 가는데 최소 1시간이 걸리는터라 그 사이에 좀 굳었으면 맘이 편했을 텐데, 거기에 도착했을 때조차도 몸이 부들거려서 살아있는 것과 비슷했다고 하더군요. 그 곳엔 잠시 묵념하고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동물을 기릴 수 있도록 하는 장소가 있는데 꽃 사이에 있는 행복이가 그렇게 예쁘고 아름다워 보였다고 합니다. 지금껏 동물 키우며 행복이 전에 이미 4마리를 앞서 보냈는데, 엄마 눈에 그렇게 편안하고 예쁘고 살아있을 때와 같은 모습은 행복이에게서 처음 느꼈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그러더군요. 머루도, 하늘이도 사후경직이 늦게 나타났지만, 행복이는 더 안 나타났다고. 그래서 이 애가 참 세상을 선하고 착하게 잘 살다가나 보구나... 사람도 정말 죽어서도 깨끗한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 보고 세상을 잘 살다 간다고들 하는데 행복이가 딱 그런 것 같다고.  


실로 행복이는 무엇도 없는 아이였어요. 같이 지내는 동물들에게 뭐 하나 나쁜 짓 하는 것도 없을 뿐더러 사람에게도 그런 아이였어요. 그저 옆에 다소곳이 앉았고, 그 모습이 예뻐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좋다고 골골소리를 내는 아이였어요. 행복이가 자주 앉는 장소가 있는데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머리 한 번씩 쓰다듬어 주면 그게 또 좋다고 배를 보이는 애였고요. 고양이 주제에 뭐가 그렇게 뻣뻣한지 삐그덕거리는 웨이브가 유일한 애교인 애였어요. 그래서 가족들이 그 애한테 "얜 완전 물이야." 이런 말도 많이 했죠. 얼굴도 순딩순딩 합니다. 태생은 길냥이었지만 우리를 집사로 허한다며 스스로 엄마 품에 안긴 아이였어요. 정말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순딩순딩, 시간이 흐를수록 예쁜 짓만 하는 아이였어요.


특히 저를 유달리 따라서... 유일하게 제가 누워있으면 제 몸 위에 올라오는 애였습니다. 제가 눕기만 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조용하게 올라와서는 안정적인 식빵자세로 앉아 있고, 이따금은 그대로 자는 바람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버텼던 시간도 많았죠. 다른 가족들한테는 안 가도 저한테는 와서 부비는 애였어요. 안마도 얼마나 잘하는데요.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애가 없네요. 


행복이는 또 항상 깔끔쟁이라고 불렀어요. 사람도 안 씼었는데도 깔끔해보이는 사람 있는데 행복이가 딱 그랬고, 화장실 뒤처리도 깔끔하고, 행동 하나하나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아이였는데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는 그 애의 모습은 너무 깔끔했어요. 그건 집에서까지도 너무 깔끔했어요. 행복이가 없는데 바뀐 게 하나도 없습니다. 마치 행복이가 이 집에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이전까지 무지개 다리를 건널 때 항상 길든 짧든 간병하는 시간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그 애를 위한 무언가가 있거나 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 그걸 정리하고 치우고 버리는 과정이 있었는데, 행복이는 그조차 없습니다. 그냥 갑자기 심정지가 왔고 그게 끝입니다. 행복이는 다른 고양이들에 비해서 병치레도 별로 안 해서 이렇다하게 돈이 들지도 않은 아이였는데, 아무리 깔끔해도 이렇게 매정할 정도로 깔끔한지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너무 깨끗하고 깔끔하게 나타나서 사라져주시니 정말 이 집에 행복이가 존재했나 싶습니다. 행복이 하나만 쏙 빼낸 느낌입니다. 엄마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효도해주고 갔다고. 다른 애들은 아파서 병원비 몇 백 깨져가면서 보냈는데 행복이에게 들어간 병원비는 0원입니다. 그조차도 자신에게 쓰지 않아도 된다면서 간 것 같다며.


정확히 2일 전에 엄마가 나이대 비슷한 3마리를 쳐다보면서 "5-6년 정도 지나면 이제 저 애들 나이가 비슷해서 비슷하게 다 갈 텐데 그도 걱정이다" 라고 했었는데, 그 중에 행복이가 있었어요. 근데 그 애는 5-6년은 커녕 오늘 아침 날벼락 같이 그냥 사라졌습니다.  


항상 아이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마다 오는 데 순서 있어도 가는 데 순서 없다는 걸 느끼곤 했지만, 이번만큼 확실하게 느낀 적도 없습니다. 건강검진에서도 깨끗했던 애가 심장마비라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지금 집에 16살 된 별이가 건장하게 있는데 이제 8살 갓 된 행복이가 이렇게 허망하게 앞설 수 있다는 것에 5-6년은 더 같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고 교만이란 걸 깨닫습니다. 무려 5개월 만에 3마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습니다. 머루가 그랬고, 5일 후에 하늘이가 떠나더니 5개월 후 행복이가 떠났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10년은 넘게 부벼대며 살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던 걸까요.


행복이는 착하고 선하게 세상을 살았던 만큼 좋은 곳으로 갔을 거고, 또 압니까. 당장 다음주에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죠. 아주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야 해서 서둘러 바삐 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행복이는 너무 급작스럽게 심장이 멈춘 터라 자기가 죽은지도 모른 채 헤매고 있을까 봐 그것도 걱정이 되더라고요. 이런 멍청한 생각도 하는 게 접니다.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최소한 1-2일이라도 앓고 가면 좋았을 텐데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가 떠나버리니 실감이 안 납니다. 다른 애들은 "떠났구나"란 생각이 들었는데 행복이는 "어디 갔어?"란 느낌이에요. 분명 무지개다리를 건넌 건 맞은데 딱히 감각도 없습니다. 그래도 이제 행복이의 뻣뻣웨이브를 직접 보는 일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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