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전학을 갔거나 혹은 친구가 전학을 갔을 때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지냈다. 그 덕에 편지를 주고 받은 횟수나 그 증거물은 차고 넘치는데 문명의 발전이 그것을 막았다. 메일이 그랬고, 문자가 그랬고, 카톡이 그러했다. 나는 편지를 주고 받고 싶었으나 친구들이 더 이상 원하지 않아 했고, 나 또한 나이가 들면서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하는 일들이 늘어나다 보니 편지를 쓰는 여력은 항상 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편지가 고팠다. 다소 수고로우며, 느리고, 불편할 수는 있어도 나이 먹을수록 우편함에 꽂히는 건 돈 내라는 고지서, 정보를 알려주는 홍보물만 판치는 일상들을 생각하면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며 글씨 한 자, 한 자 적어주는 그 정성이 나는 항상 그리웠다.
그래서 한 때는 인터넷에서 모르는 사람들의 주소를 모집하기도 하였다. '편지를 보내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게시글을 썼는데 의외로 반향이 컸다. 수십 명이 날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주소를 적었다. 나는 틈틈이 몇 달에 걸쳐서 그 사람들에게 모두 편지를 보냈다. 그 이후로도 몇 번 이벤트 형식으로 그것을 하기도 하였다.
올해 보낸 이 연하장도 사실 그 일환의 하나다. 나는 여전히 편지를 쓰고 싶고, 받고 싶으나 그 대상을 아무에게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같은 지역이 아니어야 하고(편지를 주고 받는 의미가 내 기준에선 퇴색하므로), 편지를 받으면 기뻐하길 바랐으며, 무엇보다도 일면식이 있어야 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본 결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어떠한 내용을 써서 보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기 때문에 그래도 좀 편하게 편지를 쓰려면 반드시 알아야 했다. 그래서 한 명에게 주소를 물었고, 언제가는 편지를 보낸다는 이야기만 했다. 이 또한 조금은 오래된 이야기다.
원래는 편지를 보낼 예정이었으나 달력을 보니 곧 설날이 다가와서 연하장을 보내기로 했다. 왠지 그 애는 연하장을 많이 받아보지 않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예전에는 친구는 안 보내도 각종 업체와 회사에서 보내주었는데 그마저도 메일이나 문자로 대체된 현실에서 연하장 받을 일이 과연 일반적으로 몇 번이나 있을까? 요즘은 명절에 카톡 몇 줄이 전부이거나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gif 파일로 대체하면 끝나는 경우가 많은 터라 연하장은 더욱 귀해진 느낌이다.
새해가 됐다거나 명절이 됐다거나 할 때 사실 그 인사를 보내는 나는 사실 항상 좀 애매하다. 솔직히 어차피 문자나 카톡으로 인사를 할 것이라면 단 30초라도 전화를 하고 싶지만, 상대방이 그리 원하지 않는 것 같아서 통화버튼은 누르기는 항상 고민되는 일이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에 결국 나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모든 인사를 갈음한다. 이렇게 무미건조해도 되는 걸까.
그러한 연유로 연하장을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오랜만에 연하장을 고르려니 그것도 나름 신났는데, 확실히 예전에 비해서 그 종류가 터무니없이 줄었다. 그다지 많이 있지도 않은 연하장에서 그래도 눈에 확 들어오는 더 정확히는 내 눈엔 예쁘고 괜찮아 보이는 연하장이 있어서 덥석 집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정성스럽게 누군가를 위해서 한 글자, 한 글자에 내 마음을 담았다.
편지봉투에는 보내는 나의 이름을 제외하곤 적지 않았다. 편지를 받을 때 다들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답장'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편지를 주고 받고 싶으나 사실 상대방은 나와 같지 않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터라 나는 그 부분을 그냥 내 마음에서 내려 놓았다. 답장이 필요 없다는 명백한 나의 의도는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훨씬 가벼운 맘으로 받을 수 있게 할 것이다. 일방통행 밖에 하지 않는 편지가 되겠지만, 그래도 그 일방통행 밖에 하지 않는 그 편지를 받는 사람에겐 소소한 즐거움이길 바란다 .
오늘 연하장을 붙였다. 설날이 코 앞이라 늦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부디 설날 전인 금요일까지 무사히 당도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