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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동이 Jun 23. 2020

힘 있게 글을 쓰고 싶습니다

피터 엘보의 힘 있는 글쓰기 서평



글을 잘 쓰고 싶(었)다. 처음부터 에세이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발단은 회사 보고서였다.

직장인에게는 보고서도 나름 글쓰기의 한 파트다. 보고서를 잘 쓰면, 못 쓰고 안 쓰는 것보다 조금 더 많은 선택권이 주어진다. 무엇보다 내 의견을 명확하게 관철시킬 수 있는 무기이자 수단이 되기 때문에 일단 잘 쓰고 싶었다. 보고 결과를 떠나 읽고 이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스토리가 있는 문장을 완성하길 희망했다.



처음에는 잘 썼다고 평가받는 선배들의 보고서를 읽고 베껴가며 체화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백지였던 신입에게 정형화된 회사 보고서는 나름 의미는 있었지만 내 원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했다. 결국 보고서라는 형식보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읽 수 있는 '글'에 욕심이 생겼고, 성장판에서 하는 글쓰기 모임을 통해 그 글의 '주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고군분투라고 표현한 이유는, 생각 이상으로 주제를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 1,000자 이내의 글을 무에서 시작해 써내려 가는 것도 (정말) 어려웠지만, 가장 힘들었던 점은 꾸준히 쓸 수 있는 '나만의' '영역'을 찾는 일이었다.



회사 업무와 연관된 내용을 쓰자니 독자가 없을 것 같고, 꾸준히 해오던 운동이나 취미를 쓰고 싶었는데 특별히 자랑할 만한 활동이 없었다. 스포츠를 좋아해서 칼럼 식으로 써볼까도 했지만, 하이라이트만 봤을 뿐이지 누구에게 소개하고 '글'로써 풀어낼 지식이 부족했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막상 문장으로 표현하자니 이보다 더 어설플 순 없었다. 나 자신이 작아 보였고 내 삶이 그만큼 조예가 깊지 않았나 자괴감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완벽한 무엇을 꿈꿨던 것 같다. 이제 글쓰기를 시작하는 신생아 주제에, 마라톤 선수들이 이룬 넘사벽 기록비교하고 탐했다. 아무도 나에게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았고 시킨 것도 아닌데, 혼자 앞질러 가 있었다. 물론, 그런 고민이 있었기에 간절히 찾고 싶었던 주제를 발견하는 갑진 결과를 얻었다.



처음에는 그날그날 떠오르는 생각이나 가끔은 책 리뷰, 그리고 순간 번뜩이는 인사이트를 엮어 욱여넣다시피 글을 뽑아냈다. 매번 새로운 주제를 찾았던 시간은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장점은 있다.(어쩔 수 없어서 새로운 주제를 찾은 것이지만)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그럴 수는 없었다. 결국은 나만이 쓸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찾아야 했고 바로 그 찰나에 아내가 임신을 했다.



임신은 아이 계획이 있다면 누구나 겪는 일상이다. 하지만, 남편의 시각에서 10개월의 여정을 담은 글은 확실히 귀해 보였다.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니까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었고, 이거다 싶었다. 유레카! 난생처음 만나는 뱃속 아이에 대한 인식과 평생 사랑할 거라고 다짐했던 아내에 대한 감정 변화가 얽히고설켜 있었고, 여러 이벤트들이 쏟아지며 글감을 풍부하게 해 주었다.





글쓰기의 방식에는 직선형, 개방형, 순환형 이 있다.


직선형은 마감이 정해져 있고 빠른 글쓰기를 해야 할 때, 글을 발산시키지 않고 옆길로 빠지지 않게 목표를 두고 글을 쓰는 방식이다.

개방형은 직선형과 정 반대로, 직관을 최대한 활용하여 글감을 발산시키는 자유스러운 글쓰기 방식이다.

순환형은 직선형과 개방형을 적절히 믹스한 방식으로 초반에는 창의성을 증폭시켜 자유롭게 쓰고, 후반에는 퇴고를 빡세게 하여 매듭을 짓는 방식이다.



갑자기 웬 글쓰기??!!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은 직선형으로 작성하고 있다. 내일이라는 마감 기한이 있고(지금 새벽 1시), 책 내용은 너무 어렵고(500 페이지 가량의 번역체가 가득하여 잘 읽히지 않는다), 책이 난해해서 리뷰를 '읽기에 별로다'라고 쓰기에는 공들인 시간이 아깝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동안 헤매고 있었던 영역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피터 엘보의 '힘 있는 글쓰기'


실용적인 글쓰기 책 치고는 너무하다 싶은 무게감을 주는 비주얼인데, 한 줄로 요약하자면 '닥치고 일단 써라' 다.

앞서 제시한 여러 가지 유형으로 글을 써내려 가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핵심 내용은 고민하지 말고, 발설할 수 있을 때까지 내 안의 감정 생각, 사고를 써야 의미 있는 퇴고와 비판적 피드백으로 최선의 결과물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글이라는 게 워낙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연설문, 에세이, 보고서, 논문 등) 그것들을 다 포괄하느라 작가가 힘겨워 보이기는 하지만, 내가 쓰고 있는(쓰고 싶은) 글이 명확하다면 적절한 예시를 찾아서 대입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찾은 실마리는 무엇일까?





운 좋게 브런치에 쓴 글이 다음 메인과 카카오톡 채널에 큐레이션 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영광을 누렸다. 말도 안 되게 올라가는 조회수를 보며 회의 도중에 음소거로 소리를 지르기도, 바닥을 쳤던 자존감도 회복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 글이 다른 사람에게 읽힐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자랑은 여기까지)

 


문제는 얼마 되지 않아 슬럼프가 찾아왔다는 점이다.


 임신에서 육아로 삶의 중심축이 이동하면서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된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글이 써지지 않았다. 내가 겪은 일들을 조금은 재미있고, 나름 유익한 정보까지 넣는 것을 목적으로 썼는데, 어느 순간 내 에피소드가 자신이 없어졌다. 처음부터 어떤 독자를 상상하며 쓴 것이 아니었고, 그렇다 보니 누군가가 이 이야기를 재밌어할까? 그냥 내 개인적인 일을 궁금해서 읽을까? 반문하게 되었다. 결국 글을 쓰는 빈도가 줄더니 어느새 마지막 글을 발행한 지 반년이 지났다. 



p136.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내고 싶은지 상상하라. 독자들이 뭔가를 이해하게 하고 싶은가? 독자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은가? 뭔가 행동하게 하고 싶은가? 마음을 바꾸게 하고 싶은가? 이렇게 독자와 목적을 명확히 파악하면 생각에 초점이 맺히면서 할 말이 무엇이고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즉각 깨달을 수도 있다.


정확히 누구에게 읽히고 호응을 이끌어 낼 것인가?

'많은 사람이 두루 읽었으면 좋겠다'는 타겟 마케팅 없이 일단 만들고 보는 상품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가 내 글을 읽고 조금 더 감명을 받고 그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포인트가 무엇인지, 어느 파트에 더 힘을 싵고 생동감을 살려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또 다른 발견은 발산하는 글쓰기다. 나한테 가장 시급한 처방전일 수 있는데, 완성형 글쓰기를 지양하는 것이다. 무 처음부터 글을 다듬으면서(퇴고하면서) 글을 쓸 경우 새로운 거리, 창의성이 파고들 틈이 없다. 글을 쓸 소재는 있지만 그것이 매력적이라고 느끼지 못할 때(딱 지금 상황이다) 수렴하는 글쓰기가 아닌, 발산형 글쓰기를 시도함으로써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밑줄을 그을 만한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모임, 그리고 책에 대한 서평을 통해 쓰고 싶은 글을 더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그런 측면에서 첫 단추는 나름 잘 끼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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