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벤더, 일랑일랑, 탠저린 캔들
아침 일찍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오랜만에 캔들을 만들었다. 라벤더와 일랑일랑, 탠저린 향기로 오늘의 꿉꿉한 공기를 날려버릴 작정이었다.
처음 사용해본 탠저린은 만다린과 매우 비슷한데 약간의 쌉쌀함이 한 스푼 더해져 살짝 거친 느낌이 난다. 그래서 만다린이 더 선호되는 것이겠지.
일랑일랑은 '꽃 중의 꽃'(말레이어)과 '가난한 자의 자스민'이라는 극단적인 별칭을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꽃이다. 자스민과 유사한 성분들이 있고 자스민이 워낙 고가라 이런 별칭이 붙었겠지만 실제로는 자스민과는 좀 다른 좀 더 편안하고 유니크한 향을 낸다. 지난주 고체향수를 만들고 간 분들이 일랑일랑이 이런 향인 줄 몰랐다 신기해한 게 생각난다. 유명 향수에 많이 쓰이면서 이름은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름만큼 실제 향은 대중적으로 친숙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함유된 인돌 성분 때문에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적당히 브랜딩하면 향기로운 꽃향을 내면서도 무게감이 있어 향 지속 시간을 늘려주는 베이스 노트의 기능도 한다. 항우울과 혈압 강하, 최음제의 효능도 가지고 있는 멀티플레이어다.
아로마테라피의 시작을 연 라벤더의 효능에 대해서는 얼마 전에 직접 몸으로 체험했다. 조물락 비누를 만들다가 화상을 입었는데 바로 라벤더를 발랐더니 금방 나아버린 것이다. 벌겋게 부어오른 손가락에서 화기가 휘리릭 빠져나가고 허옇게 자국이 남는 게 꽤나 신기했다.
왁스가 다 굳어 심지에 불을 붙였다. 면 심지가 아니라 나무 심지로 만든 캔들에서는 신기하게도 장작 타는 소리가 난다. 불꽃의 흔들림을 주시하며 그 작은 소리에 귀를 귀울이고 있을 때 만들어지는 공감각적 쾌감은 내가 붙박혀 있는 시공간의 흐름을 바꿔 놓는 것만 같다.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오늘의 내가 좀 괜찮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