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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Apr 03. 2022

[극단의 시대](1994) - 에릭 홉스봄

불확실한 시대의 '묵시록'

[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1994) - 에릭 홉스봄

- 불확실한 시대의 '묵시록'





"오직 이러한 도전세력(파시즘)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일시적이고 기묘한 동맹'만이 민주주의를 구했다. 히틀러 독일에 대한 승리는 기본적으로 적군(赤軍)에 의해서 쟁취된 것이었고, 오직 적군에 의해서만 쟁취될 수 있었던 것이다. 파시즘에 맞선 자본주의-공산주의 동맹의 이 시기-기본적으로 1930~1940년대-는 여러 점에서 20세기사의 중심이자 결정적인 시기이다. 여러 점에서 그 시기는 세기 대부분 동안-짧았던 반파시즘 시기를 제외하고는-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상태였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관계로 볼 때 역사적인 '역설'의 시기이다... 전세계 자본주의의 전복을 목표로 하는 10월 혁명의 가장 지속적인 결과가, 전쟁에서나 평화에서나-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자신의 적대자들에게 자극과 공포를 줌으로써 그들 자신을 개혁시키고, 경제계획의 인기를 확립하여 그들에게 개혁절차들 중 일부를 제공해 줌으로써- 자신의 적대자들을 구한 것이었다는 점은 이 '기묘한' 세기의 아이러니들 중 하나이다."

- [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 <20세기 : 개관>, 에릭 홉스봄, 1994.



19세기 자본주의 근대사 '3부작'인 [혁명의 시대](1962), [자본의 시대](1975), [제국의 시대](1987)를 쓴 영국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 1917~2012)이 바라본 20세기는 '극단의 시대(Age of Extremes)'였다.

'극단(extreme)'의 시대는 또한 '역설(paradox)'의 시대였다. 1914년 촉발된 제1차 세계대전과 1939년 개시된 제2차 세계대전의 '세계전쟁' 시대는 러시아 소비에트 '10월 혁명'과 제3세계 '혁명'의 시대였고, 미-소 초강대국 간 '냉전(Cold War)'의 시대였다. 1991년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정권들이 무너진 후 더이상 자기통제가 불가능한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새로운 천년기'인 21세기를 앞둔 시기였다.



'장기 19세기(1789~1914)'를 돌아본 [혁명/자본/제국의 시대]의 '응집된 전체로서의 과거' 역사를 통해 에릭 홉스봄이 내린 결론은 그래도 '희망'이었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61


그러나 20세기 중 70년 이상을 살아본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기록하는 이 [극단의 시대]는 한마디로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묵시록(默示錄/Apocalypse)'이다.

그리고, 21세기의 사반세기를 지나는 지금도 이 노회한 역사가의 전망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듯 하다.





"(전쟁과 대공황)... 경제붕괴가 없었다면 확실히 히틀러도 없었을 것이고, 거의 확실히 루스벨트도 없었을 것이다... 요컨대 경제붕괴의 충격을 이해하지 않고는 20세기 후반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대공황은 서방정부들로 하여금 자신의 국가정책애서 경제적 고려(자유시장)보다 사회적 고려(보호무역)를 우선시하도록 했다... 양대 군사강국-일본(1931)과 독일(1933)-에서 민족주의적이고 호전적이며 매우 공격적인 체제가 거의 동시에 승리한 것이, 가장 영향력 크고 가장 불길한, 대공황의 정치적 결과였다는 점만큼은 말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문이 1931년에 열린 것이다."

- [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 <1-3. 경제적 심연 속으로>, 에릭 홉스봄, 1994.



러시아 소비에트 '10월 혁명'은 "전쟁에 대한 혐오"(같은책, <1-2. 세계혁명>)로 발생한 혁명이었다. 1905년 '피의 일요일'이 일어난 배경은 제국주의 '러-일전쟁'이었고 1914년에 제1차 대전 참전한 러시아 차르체제는 1917년 '2월 혁명'으로 끝장났다. 러시아 농촌공동체(미르)를 모태로 한 노동자/농민/병사 소비에트의 광범위한 '이중권력'의 반전투쟁을 기민하게 지도하며 케렌스키의 '2월 임시정부'를 타도한 볼셰비키 '10월 혁명'은 19세기 내내 세계를 지배했던 자본주의와 그 '최고 단계'로서의 제국주의에 대한 당대의 거대한 대안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파시즘에 반대하는 "일시적이고 기묘한 동맹"(같은책, <20세기 : 개관>) 관계를 자본주의와 맺었던 공산주의는 20세기 내내 서방 자유주의 초강대국 미국과 '냉전'을 벌였지만, 실질적으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인 이들 '제1세계'를 위협한 것은 소련이 지도하던 '제2세계'도, "경제와 과학기술의 발전"(같은책, <1-7. 제국들의 종식>)과 "전세계에 분포한 혁명지대"(같은책, <3-15. 제3세계와 혁명>)인 '제3세계'도 아니었다.

"위협은 (좌파가 아닌) 우파로부터만 나왔다."(같은책, <1-4. 자유주의의 몰락>) 즉, 제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이 만든 자유주의 세계의 괴물 '파시즘'은 본질적으로는 폭력으로 지배했지만 자유주의 대의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자유주의의 적으로 간주된 '파시즘'은 자본주의 세계 대공황이 낳은 괴물이었다. 홉스봄에 의하면, "1930년대에 '파시즘'은 '미래의 물결'로 보였던 것"이고 대중동원 포퓰리즘으로서 "파시스트들은 반(反)혁명의 혁명가"(이상 같은책, <1-4>)였다.

에릭 홉스봄에 의하면, 결국 20세기 역사는 '경제대공황'과 '세계전쟁', 그리고 '혁명'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데, 이 모든 '위협'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자체로부터 나온 것이지 결코 제2세계 '공산주의'의 위협이 아니었다. 자본주의 초강대국 미국과의 '핵전쟁'으로서 제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을 품은 '냉전' 시기 소련은 실질적으로 결코 그런 위협이 되지 못했는데, 소련의 '제2세계'는 단지 미국(레이건주의)과 영국(대처주의)의 보수주의자들이 반대파를 꺾고 집권하기 위한 과장된 '위협'이었다. 소련(스탈린주의)은 이미 1930년대에 '일국사회주의'를 선언하며 '세계혁명'의 의도를 포기한 채 세계의 절반을 지배하는 것에 그쳤다. 소련은 중국과 베트남, 쿠바 등지의 '제3세계' 혁명을 원칙적으로 반대했고 그들의 자력 혁명 이후에 마지못해 그들의 혁명국가를 지지했다.



그렇게 본질적으로 20세기 '자유주의'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그 자체에 내재된 '대공황' 및 '파시즘'과 '전체주의'였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제2세계'는 미국과 서유럽의 '제1세계'와 경쟁했지만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았으므로, '제2세계'가 파산한 이유는 '냉전'이 아니라 '데탕트(해빙)'였다. 공산주의의 '위협'은 자본주의를 약화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자유시장'보다는 '보호무역'과, 작은 '야경국가'보다는 강한 '복지국가'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홉스봄은 "냉전의 '역설'은 소련을 패배시키고 결국 파산시킨 것이 결국 '대결'이 아니라 '데탕트'였다는 데에 있었다"(같은책, <2-8. 냉전>)라고 쓰고 있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 모순인 경제적 대공황과 그 상황이 낳은 파시즘으로 인해 위기에 빠졌고, 그 대안 체제로 등장했던 공산주의는 '역설'적으로 '케인스주의' 또는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와 같은 자본주의 '혼합경제'의 모티브가 되면서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했다. 그러므로 "냉전의 종식은 국제분쟁의 종식이 아니라, 한 시대의 종식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낡은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새로운 시대의 성격과 전망은 전혀 불확실했다."(같은책, <2-8. 냉전>)

즉,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이자 일종의 '사회민주주의자'로 추정되는 홉스봄이 보기에 인류의 '미래'인 '혼합경제'가 폐기되는 '냉전의 종식'은 또 하나의 '20세기 불확실성'의 시작이었다. 공산주의 몰락 후 힘을 얻은 하이에크나 프리드먼의 '주류경제학'과 대처리즘이나 레이거니즘의 '신자유주의 정부'는 '자유시장'의 신화를 앞세웠지만 실상은 자국 보호주의로 연명했다. 자본주의 세계체제 천년왕국의 사제들 조차 그 체제를 통제할 수 없었다.

홉스봄이 말한 20세기의 '불확실성'의 실체가 바로 그것이다.





"위기의 몇십년에 관한 중심적인 사실은 자본주의가 더이상 '황금시대'만큼 잘 기능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작동이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위기의 몇십년(1973~)은 국민국가가 경제적 힘을 잃은 시대였던 것이다... (경제적) '자유시장'과 정치적 '민주주의' 사이에 선천적인 관계가 전혀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위기의 몇십년의 역사적 비극은 이제는 생산에서 인간들이 기계에 밀려나는 속도가, 시장경제가 그들을 위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낳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빨라졌다는 데에 있었다... (포퓰리즘/개인숭배/배외주의 정치세력 등의 부상으로 인한) '배타적 정체성 정치의 비극은... 어떠한 경우에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 [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 <3-14. 위기의 몇십년>, 에릭 홉스봄, 1994.



1945년 종전 후 1970년대 초반 오일쇼크 전까지 '냉전'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황금시대(Golden Age/같은책, <2부>)'를 열었다.  1914년부터 두 차례 세계전쟁으로 '파국의 시대(The Age of Catastrophe/같은책, <1부>)'를 통과한 20세기는 '냉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혼합경제'를 통해 강력한 "공적 권위체"(같은책)로서의 국가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공황주기(콘드라티예프의 대략 10년주기)에 따라 1973년 '오일쇼크'는 이후 이 책이 씌어진 1994년까지 '위기의 몇십년(The Crisis Decades)' 또는 '산사태(The Landslide/같은책, <3부>)'라는 모호한 용어로 명명된다.

역사가로서 지금 살고 있는 시대를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이겠지만, 기존 '장기 19세기(The long nine-teenth century)'의 '응집된 전체로서의 역사'를 통해 힘들지만 '희망의 시대'를 전망하던 이 노회한 역사가의 눈에 당장 본인이 살고 있는 '극단'과 '역설'의 '단기 20세기(The short twentieth century)'는 그 자체로 자기통제가 불가능한 일종의 '불확실성'의 시대로 보인다고 쓰고 있다.


21세기의 10년 이상을 더 살았지만, 20세기 말에 가까워지면서 "새로운 천년기(21세기)를 향하여"(같은책, <3-19>) 흘러가던 1994년의 에릭 홉스봄은 당시의 '극단'적이고 '역설'적인 20세기를 돌아보며 이렇게 결론짓는다.


"단기 20세기에는 아무도 그 해결책을 가지지 않았거나 심지어 해결책을 가졌다는 주장조차 하지 않는 문제들을 남기는 것으로 끝났다. 세기말의 시민들이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전지구적인 안개를 뚫고 세번째 천년기(21세기)를 향하여 나아갔을 때 그들이 확실히 아는 것은 오직 역사의 한 시대가 끝났다는 것 뿐이었다... 20세기는 그 성격이 불분명한 전지구적 무질서(신자유주의) 속에서 그리고 그러한 무질서를 끝내거나 통제할 수 있는 분명한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막을 내렸다... 인간사회의 구조 자체...가 인류의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의 잠식을 통해서 이제 막 파괴되려 하고 있다. 우리의 세계는 외적 폭발과 내적 폭발 둘 다의 위험에 처해 있다. 세계는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실패의 대가는, 즉 사회를 변화시키지 않을 경우의 결과는 암흑 뿐이다."

- [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 <3-19. 새로운 천년기를 향하여>, 에릭 홉스봄, 1994.




과학기술을 진보시키고 대량생산체제를 발전시킨 대량전으로서 '총력전'(같은책, <1-1. 총력전의 시대>)의 20세기 '세계전쟁'을 거치며 발전한 과학기술은 문예 분야에서 '전위예술' 및 혁신적 '모더니즘'의 패퇴와 현실괴리적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같은책, <3-17. 전위예술의 사멸-1950년 이후의 예술>)과는 달리 '민주주의'적 '대중소비사회'의 '마법사'가 되었는데, 이 '과학기술'이라는 이름의 '마법사'의 '도제'로서 다수 소비대중은 "더 이상 자신의 (과학기술적) 지식 부족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것"(같은책, <3-18. 마법사와 도제-자연과학>)이란다. 과학자가 아닌 소비자 대중 그 누구라도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다면 자동차의 과학원리를 몰라도 운전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었던 것이다.



20세기의 경제기적은 '자유주의'적 주류경제학의 '자유방임'이 아니라 케인스주의적 '보호무역'과 완전고용 및 수요창출에 기인했다(같은책, <3-19>).

'국민국가'는 약화된 반면, 사회 재분배의 주체로서 '공적 권위체'인 '국가' 자체는 강화된 '단기 20세기'의 세계정치는 '인구 문제'와 '생태학적 (환경)문제'에 직면해 있지만, 에릭 홉스봄은 자기통제력을 상실한 20세기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미래는 더이상 '희망'이 아닌 '암흑' 뿐이라는 '묵시록(默示錄)'으로 이 책을 끝맺고 있다.



19세기를 전공하고 20세기를 관통했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의 세기간 엇갈리는 '희망'과 '암흑'의 전망은 과연 21세기 후세 역사가들에게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그래도 인류는 살아야 하니 세계의 미래는 '희망'일 수 밖에 없지만, 문제는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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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 1914-1991(

Age of Extremes : The Short Twentieth Century, 1914-1991)](1994), Eric Hobsbawm, 이용우 옮김, <까치글방>, 1997

2. [혁명의 시대](1962), 에릭 홉스봄, 정도영/차명수 옮김, <한길사>, 1998.

3. [자본의 시대](1975), 에릭 홉스봄, 정도영 옮김, <한길사>, 1998.

4. [제국의 시대](1987), 에릭 홉스봄, 김동택 옮김, <한길사>, 1998.

5. [20세기 이데올로기(Ideologies in the Age of Extremes)](2011), Willie Thomson, 전경훈 옮김, <산처럼>,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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