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용원 May 07. 2022

[중국정치사상사](2017) - 김영민

정치사상사의 '일이관지(一以貫之)'

정치사상사의 '일이관지(一以貫之)'

- [중국정치사상사], 김영민, 2021.





"사회계통적 설명의 관점에서 보면,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는 순간에는 그러한 측정이 나름대로 유용할 수 있어도, '중국적'이라는 말은 결국 내용상 정확성을 결여한 말이다. '중국적'이라는 것의 본질은 없기 때문이다... '연속성'이란 서사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고, 서사란 선재하고 있는 어떤 것들을 베껴쓰는 것이 아니다. 적실성 있는 텍스트 상의 증거가 존재하면, 사상가들은 단순히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과정에 대해 형식적 '일관성'을 '부여'할 수 있다... 여기서 '일관성'이란 구분 가능한 일련의 주장들을 꿰어준다는 의미에서의 '일관성'이다."

- [중국정치사상사], <1. 서론>, 김영민, 2021.



현재 중국은 마르크스주의가 쇠퇴한 자리를 다시금 그들 나름 역사와 전통의 '중화(中華)'로 채우고 있다. 지금 중국은 실크로드와 해양무역로를 아우르는 '일대일로(一带一路)'라는 슬로건으로 유라시아 일대를 지배하고자 하며 더 나아가 세계를 감히 '덕치(德治)'하겠다고 한다. '인(仁)'을 중시한 공자의 후예들이라 온세계에 새삼 공표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었던 자들이 '제국'으로 다시금 회귀하고 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2018) 등의 에세이와 [공부란 무엇인가](2020) 비롯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의 글을 읽다가, 과연 '사상사 연구자' 학자로서  분의 글은 어떨까 궁금해져서 [중국정치사상사](2021) 읽었다. '장학금' 때문이라고는 해도 '동아시아 사상사' 전공자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공서적' 2017 영문으로 저술된 책을 2021년에 내용을 증보하여 우리글로 '번역' 것이라고 한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68


김영민 교수는 [중국정치사상사]를 통해 '중국역사'라든지 '중국사상사'를 통사로 다루지는 않는다. 중국역사를 따라가되 그 '정치사상사'를 '계몽된 관습공동체(2장)', '정치사회(3장)', '국가(4장)', '귀족사회(5장)', '형이상학 공화국(6장)', '혼일천하통일(7장)', '독재(8장)', '시민사회(9장)', '제국(10장)' 등의 테마 별로 묶어 '정치사상'들이 드러내는 '연속성'을 추적하고 '중국적' 또는 '중화'라는 이데올로기를 '일관성(一貫性)'의 서사로 꿰뚫어내고자 한다. 중국인들의 스승인 공자의 말씀인 [논어]에 나오는 '일이관지(一以貫之)'의 방법론이다. 방대한 '중국사'나 '중국사상사'를 일일이 다룰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중국'을 넘어 인류의 '정치사상'을 분석하는 '일관성'이 무기다. 그래서, 다시 '철학' 이야기다.



"공자가 정치질서의 새로운 기초를 찾아나선 것은 바로 이러한 ('천명' 해체의) 역사적 맥락에서였다. 비록 하늘이 여전히 최상위의 권위로 남아있었지만, 그 하늘이 인간사에 직접 반응하리라고 공자는 더는 믿지 않았다. 그는 인간세계 내에서 정치질서의 대안적인 기초를 찾았다... 사실 공자 뿐 아니라 상당수 춘추시대 지식인들이 초인간적 존재가 갖는 정치적 적실성에 관해 회의를 품기 시작하였다."

- [중국정치사상사], <2. 계몽된 관습공동체>, 김영민, 2021.



'중국통사'가 아니기에 저자는 '삼황오제'나 이 중국족보체계를 세운 사마천 [사기] 등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수천년 중국사가 아닌 약 3천년 정도의 역사로부터 사상사를 시작한다. 상(은)나라는 '귀신들로부터 선택받은' 부족이 세습하여 지배권력이 되었지만 상나라라는 '부족연합국가'를 멸망시키고 '봉건제'를 시작한 주나라는 유목민족이 섬기던 '텡그리' 또는 '하늘'을 대신하는 '천명(天命)' 사상을 앞세웠다. 이들이 지배하는 세상은 '천하(天下)'가 되었다. 주나라의 쇠퇴는 '천명'의 몰락이었고, 춘추시대는 "인간들이 신적 존재에 의존하지 않고 어떻게 공동체를 통제할 것인가?"(같은책, <2>)에 대한 의문의 시작이었다.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들의 이와같은 집단적 질문이 '공자'가 나타난 배경이었다. 즉, 고대로부터 '유학(儒學)'이라는 사상은 종교와 같은 '유교'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철학이었다. 중국의 '종교사'가 아닌 '정치사상사'가 '공자'의 유가로부터 시작하는 이유다. 한세기 이후 전국시대의 묵가는 평등주의 '겸애'를, 노자는 '무위'를 통해 선학인 춘추시대 공자를 비판했다지만, 춘추전국시대 그들 제자백가는 주나라 군주체제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공자가 내세운 '예(禮)'는 일상생활의 '미시적' 영역까지 포괄하는 '관습'으로서 서로 말하지 않아도, 억압하거나 폭력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잘 돌아가는 일종의 '관습공동체'를 이상적으로 만들자는 사상이었고 그 주체들은 공부를 통해 '계몽'된 성인군자들이었다. 이러한 이상적인 '계몽된 관습공동체'에서 성인군주는 '무위(無爲)'로써 천하를 다스릴 수 있었는데, 공자가 이상화시킨 '주나라'는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이상향'의 구체화된 모델이었다. 또한 춘추-전국시대에는 실현불가능했기에 더욱 이상적이었다.



"전국시대 사상가들은 기존질서의 자연적 기초를 의심하였다. 정치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함께 어울려 살 새로운 기초를 찾아내겠다는 강렬한 욕망에 불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구상한 '정치사회'는 통치가 부재한 '자연상태'와 대비될 뿐 아니라... '관습공동체'와도 다르다."

- [중국정치사상사], <3. 정치사회>, 김영민, 2021.



역시 '중국통사'가 아니니 각 시대에 관한 고전적 정의 같은 건 생략한다. 춘추시대 공자를 비판한 전국시대 제자백가들은 '정치사회'에 관한 사상들을 생산했다. 거대한 '전쟁기계'로서의 강력한 군주국의 군국주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국가'라는 괴물 앞에서 '정치사상'은 '정치사회'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제각각의 답을 세상에 제출했다. 묵자는 '유용성'을, 순자는 '욕망의 조율된 충족'을, 노자는 '자유방임'을, 한비자는 '이기심'의 통제를, 장자는 극단적 관조를 통한 '상대성'을, 그리고 맹자는 공자를 계승하면서 '개인도덕의 완성'을 그 대책으로 내놓는다. 이들은 고대에 이미 '정치사회'를 이론화시키면서 견고해지기 시작한 '국가론'과 상호보완하는 동아시아적 '시민사회'의 기반을 닦는다.



"... 국가의 하향식 집행과 사회공학적 접근은 종종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 논리적으로 계획되고, 통합되고, 중앙집권화된 행정체계는 현실에서 거의 실현되지 않는다."

- [중국정치사상사], <4. 국가>, 김영민, 2021.



'정치학'에서 '국가론(國家論/Theory of the state)'은 피해갈 수 없다.

저자는 관념적인 '국가론' 대신, [중국정치사상사]에 등장했던 실제 국가들의 역사를 통해 '국가론'을 살핀다. '확장된 정주지 도시국가 연맹구조'였던 상나라와 '봉건제도'의 주나라, 춘추전국시대의 '전쟁기계'로서의 군주국들과 이를 통일한 진나라는 그 연장선으로 '폭력의 합법적 수단에 대한 독점' 체제였고, 초한전쟁의 승리자 유방의 한나라는 중앙집권과 '준봉건제도'가 혼합된 정치체제로 시작하여 한무제의 '중앙집권'으로 전환하였지만 북방의 강자 '흉노'로 인해 상대적으로 규정되는 불안정한 국가체제에 불과했다. 즉, '흉노'를 포함한 북방 이민족이 있었기에 '한족' 또는 '중화'라는 이념의 국가가 존재할 수 있었다. 한무제 사후 흉노와 대결구도에서 촉발된 '염철론(鹽鐵論)'은 소금과 철에 대한 국가전매에 관한 논쟁으로서 강력한 '국가주의'와 분권적 '지방주의' 간 정치대결의 시작이었다. 이는 서한과 동한을 나눈 신나라 왕망과 송대의 왕안석 신법 논쟁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었다."(같은책, <4>)



"엘리트를 지칭하는 용어로 가장 많이 사용된 중국어는 '사(士/선비/젠트리)'이다... 왕조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중국사회가 전과 유사한 형태로 재통합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엘리트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형이상학 공화국' 비전은 당나라 귀족사회 비전과는 뚜렷이 다르다... '도학(道學)'은 '모든 사람이 본래 평등하다'는 급진적인 생각('性卽理')을 통해 위대한 조상을 자랑해대는 골수 세습귀족제를 거부하고 훨씬 더 평등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도학'에 따르면, 진정한 의미의 고귀함이란 오직 탁월한 사람됨이라는 면에서만 운위할 수 있다."

- [중국정치사상사], <6. 형이상학 공화국>, 김영민, 2021.



주자의 성리학이 조선 후기에는 신분질서를 '예학'으로 더욱 고착시켰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위진남북조와 당나라를 거쳐 견고해진 귀족사회에 대항하여 등장한 '도학(道學)'으로서 '성리학'은 '성즉리(性卽理)', 즉 인간의 본성은 평등하며 이를 잘 연마하면 누구나 우주만물을 관장하는 천리에 통달한다는 당대의 '평등주의' 사상이었다. 이 '도학자'들의 '형이상학 공화국'은 엄밀히 서양식 '공화주의'는 아니었으나 '군주제'를 견제하고 함께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사회' 또는 '시민사회'를 형성했고 이들 주체를 이르는 '신사(Gentry)' 또는 '선비(士)' 계층은 이후 '정치사상사'에서 '국가주의'와 대립하기도 하고 상호보완하기도 하는 분권적 지방주의 형성의 기반이 되었다. 한족의 송나라와 명나라는 한족 통일국가를 표방했지만 주변국들에 둘러싸여 상대적으로 좁은 영토를 차지했고 문화적으로도 다양한 민족의 요-금-원-청나라에 비해 배타적 문화를 영위했다. 남송과 명의 '도학' 또는 '성리학'이 편협한 이유가 달리 있었던 게 아니다. 그러나 저자가 쓰고 있듯, 역사의 '연속성'에서 사상사를 꿰뚫는 '일관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공자에서 제자백가 및 국가관료를 거쳐 '도학'으로 집중된 '평등주의'적 '엘리트'들은 '형이상학 공화국'이라는 '시민사회'적 성격으로 '국가주의'와 공존하며 '정치사회' 국가를 형성하고 발전시켰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중국의 정치체 및 그 사상적 기초를 지탱해 온 '통일성'이란 분절되고 갈등하는 다양한 요소간의 깨지기 쉬운 복합적인 균형상태이다. 명시적으로 역사적인 관점을 천명하는 이 책은, '통일성'이란 그처럼 아슬아슬한 균형상태에 불과하다는 점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중국정치사상을 기술하고자 하였다... '중화'는 확정되어 있는 (물리적) 실제 혹은 구현태와 동일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픽션'에 가깝다. 따라서 그것은 '허구적'인 것이지만, 그렇다고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 [중국정치사상사], <11. 보다 넓은 맥락에서의 중국>, 김영민, 2021.



중국왕조를 정의할 때, '독재' 또는 '전제주의'를 많이 빗댄다.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독재' 또는 '전제주의'라는 정의는 명태조 주원장의 '독재의 전형'으로서의 황제권 확립과정에는 맞는 말이었을지 몰라도(같은책, <8. 독재>), '혼일천하' 원나라 칸의 제국이나 청나라는 그러한 방식만으로 국가권력을 유지하지 않았다. 배타적인 한족주의 명나라는 '황제권'에 갖혀 안으로 문을 걸어잠갔고 다민족 지배체제인 청나라는 외부로 분권확장한 결과, 현재 중국의 영토를 확정한 청나라의 영토는 이전 왕조인 명나라의 2배가 되었다(같은책, <10. 제국>). 역사적으로 중국 역사에서 2/3 이상을 차지했던 다양한 이민족 정권들은 소수의 힘으로 방대한 '중국'의 영토와 문화를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굳이 직접 지배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들 이민족의 국가들과 제국들은 공식적으로 중앙집권적 '국가주의'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지방의 엘리트들을 통해 '천하'를 통치했고 스스로 '중국화'되었다. 몽골의 제국은 '중국'만이 목표가 아니었기에 오로지 '중국화'되지는 않은채 100년만에 북방으로 돌아갔고, 청나라 제국을 통해 비로소 '만주족'으로 정체성을 갖추었던 중국의 마지막 왕조는 근대 이후 세계사의 흐름에 따라 '공화정'으로 대체되었다. 태평천국과 같은 대규모 민란을 거치며 청나라 제국의 분권화는 가속되었고 19세기말 무술변법의 실패를 통해 '개혁'의 한계에 봉착한 '시민사회'는 20세기에 접어들어 아예 왕조를 뒤집어엎는 '혁명'의 길로 가게 된다(같은책, <10>).


여기서도 정치사상을 꿰뚫는 '일관성'으로서의 주테마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투쟁이자 변증법이었다. 세계사는 물론 중국사에서도 '국가론'의 주요 주제는 '국가'와 '시민사회'인 것이다.


결국, 동서양을 막론하는 이 '국가론'의 '일관성'에서 '아슬아슬'하고 '분절되고 갈등하는' 균형체제로서의 '중국정치사상'의 '통일성'은 설명될 수 있으며,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균일하지도 안정적이지도 않았던 '중국적'이라거나 '중화주의' 같은 사상은 그 자체로 '허구적'이지만 그래도 '비현실적'이지만은 않은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저자는 광범한 '정치사상사' 연구를 통해 입증하고자 한다.


분명, 중국인들에게 '중화'를 지탱했던 '천명'이나 '천하' 개념은 저자의 말대로 그들의 주요한 역사적 정신자산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불안정한 '제국'의 전통이야말로 설령 그것이 현실적으로 나타난다 한들 허구적인 '이데올로기'이며 '픽션'이라는 사실을 주변의 인접국가인 우리로부터 다시금 인식시켜줄 시간일지 모른다.

흉노가 없었으면 한나라 '중화'가 없었을 것이고, 고구려와 선비, 돌궐이 없었으면 당나라의 '중화'도 없었을지 모른다. 지금까지 잘 지켜온 한반도의 독립성 또한 '중화'의 '허구적 현실성'을 일깨워주는 계기 중 하나일지 누가 알겠는가.

이것이 동아시아 역사를 꿰뚫는 '일관성'일지 또한 누가 알겠는가.


'사상사 연구자' 김영민 교수는 [중국정치사상사]를 통해 보편적 '정치사상사' 일반을 꿰어낸 '일관성'의 철학으로, 언젠가는 [한국정치사상사] 연구서를 내겠다고 한다.

에세이나 사회평론보다는 그의 다음 '전공서적'을 기대한다.


***


- [중국정치사상사](2017), 김영민, <사회평론아카데미>, 2021.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beatrice1007&logNo=222723355997&navType=b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