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안한 꿈을 꾸었다
불안한 꿈을 꾸었다
- [꿈의 해석], 지그문트 프로이트, 1900.
"... 꿈은 과거에 대한 지식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왜냐하면 꿈은 어떤 뜻으로나 과거에서 유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꿈은 우리에게 미래를 예시해 준다고 예로부터 믿어왔는데, 여기에도 확실히 일면의 진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꿈은 소망을 충족된 것으로서 우리에게 그려줌으로써 어느 의미에서는 우리를 미래 속으로 인도해 준다. 그러나 꿈을 꾸는 본인이 현재로 알고 있는 이 미래는 부서지지 않는 ('무의식'의) 소망에 의해서 사실은 그 과거와 닮은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 [꿈의 해석], <7장. 꿈 과정의 심리학>, 지그문트 프로이트, 1900.
1.
며칠째 같은 꿈의 반복이다.
어젯밤에도 꿈 속의 나는 헐벗고 있었다.
그것도 완전히 홀라당.
수많은 여성들도 포함한, 아니면 죄다 여자들만이었을 수도 있는,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있었는데 나만 완전 홀라당 상하의 실종 상태였고 엄청나게 쪽팔리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자리를 뜰 생각도 못하고, 아니면 안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떼씹'을 하는 꿈도 아니었다. 나만 창피하다 생각했지 내 옆의 수많은 여자들은 나체로 있는 나를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깨어나서도 과연 내가 그 상태로 그들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뭐하러 거기에 그 모냥 그 꼴로 있었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사춘기 시절 꾸었던 몽정도 아니고 중년에 이 무슨 일이고 싶어 찜찜한 마음으로 잠에서 깨니, 나는 또 요 위에 누워 이불은 펴지도 않고 베개와 함께 머리에 벤 채로 자고 있던 나를 발견한다.
옆에는 역시 읽던 책 또는 접던 종이가 있다.
2.
"꿈은 완전한 심리적(또는 정신적) 현상이며, 바로 어떤 '소망의 충족(표현)'을 뜻한다. 꿈은 우리에게 이해될 수 있는, 깨어있을 때의 심리적 행위와의 관련 속에 넣을 수 있는 것이므로 아주 복잡한 정신활동으로 만들어진다."
- [꿈의 해석], <3장. 꿈은 소망의 충족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1900.
잠에서 깬 내 옆에 펼쳐져 있던 책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1900)이다. 지루하게 이어지던 <6장. 꿈의 작업>의 노이로제 환자들 사례가 펼쳐져 있다.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그간 인문학 분야에서 다루지 않던 '꿈'과 '무의식'을 다룬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 1857~1939)의 대표저서 [꿈의 해석]은 의사인 그가 진료한 정신병적 노이로제 또는 히스테리 환자들의 꿈을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인간 의식 속 꿈의 의미와 그 근원으로서 '무의식'의 영역을 소개한다. 의학자이자 과학자인 그는 철학자처럼 연역적 가설을 우선 내놓지 않고 많은 사례들을 토대로 귀납적으로 꿈을 정의한다. 사례가 부족하기에 프로이트 자신의 개인적 꿈 사례도 다수 활용하고 있다. 물론 개인적 민감 정보 등은 생략하고 있지만 과학적 결론에 목마른 과학자가 본인을 피검체로 다루는 지킬 박사처럼 말이다.
[꿈의 해석]을 통해 그가 조심스레 제시하는 '무의식'의 가설(적어도 1900년 당시에는) 작업이었기에 프로이트는 '꿈이란 무엇인가' 단언하기 어렵다는 식의 말을 많이 하고 있지만, [꿈의 해석]에서 결론적으로 프로이트가 내린 꿈의 정의는 "소망충족표현"(같은책, <3장>)이다.
즉, 꿈은 낮 시간에 생각하고 있던 오만가지 잡생각들('꿈의 사고')이 어떤 '언어'나 '기호' 또는 갖가지 연상작용을 통해 밤 시간에 어떤 "논리적 관계를 표현하는 아무런 수단도 갖지 못한"(같은책, <6장>) 채 재현('꿈의 내용')되는데, 이는 아마도 바로 전날인 가장 "최근의 인상들"(같은책, <5장>)을 표면으로 하되 그 심원에는 "아동기(유아기)의 인상들"(같은책, <5장>)에서 기원한다.
결국 잠에서 깨고 나면 전날밤의 꿈이 논리적으로 완성된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사소한 개꿈"(같은책, <5장>)으로 재구성된다. 프로이트는 이 불완전한 꿈의 재구성을 "2차 가공"(같은책, <6장>)으로 명명하고 있다.
"꿈은 어떤 억압되고 억제된 '소망'의 '위장(왜곡)'된 충족이다."
- [꿈의 해석], <4장. 꿈의 왜곡>, 지그문트 프로이트, 1900.
그러나 이 꿈은 전날 낮 시간의 이야기가 그대로 재현된 것이 아니고 의식의 "검열"(같은책, <4장>)로 인해 무언가 '억압'되고 '억제'되어 있던 '소망'의 관념들이 두서없이 펼쳐지는 상황이다. 내가 평소 깨어있을 때 그런 생각을 하기나 했나 싶을 정도의 사례들이 나오거나 아예 평소 생각과는 정반대의 내용들이 펼쳐지기도 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는 나의 의식이 잊고 있던 오래전 유아기의 경험일 것이고 평소 나의 맨정신으로서 '의식'이 '억압'하고 있던 나의 '소망'들이다.
"우리가 '꿈의 해석'을 발전시킨 것은 바로 이 '잠재 내용'에 의해서이며, 겉으로 드러난 내용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 '꿈의 사고'와 '꿈의 내용'은 같은 내용을 두 가지 다른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과 같다... '꿈의 내용'은 '꿈의 사고'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것으로, 우리가 그 뜻을 알려면 '꿈의 내용'에 나타난 '기호'나 '연결법칙' 등을 찾아내야 하는데... 우리가 이들을 알게 되면 '꿈의 사고'는 곧 쉽게 이해될 수 있다."
- [꿈의 해석], <6장. 꿈의 작업>, 지그문트 프로이트, 1900.
보통 말도 안되게 이어지는 이 "사소한 개꿈들"은 유치하기도 한데, 꿈의 근원적 배경이 유아기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평생 산 유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언어'와 '기호'의 '연결법칙' 또는 연상작용에 주목한다. 독일어로 연상작용하는 사례들이 많이 나오고 영어로 'violet'(제비꽃)은 'violate'(강간하다)과 비슷하므로 꿈에 나온 제비꽃은 성적인 표현이라는 식이다. 이와 같은 언어연상은 각자의 머릿속에 다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보편적일 수도, 개별적일 수도 있겠다. 아재개그를 생활화하고 있는 나 같은 경우도 말도 안되는 언어유희가 꿈 속에서 숱하게 재생되었을 게다. 물론 기억은 나지 않지만.
꿈으로 표현되는 나의 '소망'은 그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프로이트는 말한다. 의식의 '검열'로 인해 대부분 "왜곡"(같은책, <4장>)되어 나타난다. 이는 '잠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기제다. 현실과 똑같다면 우리는 잠을 잘 수가 없다. 우리는 '잠에서 깨지 않기 위해' 꿈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단언하지는 못하지만 그가 치료하는 노이로제 환자들과 그 자신의 꿈을 해석한 사례들을 통해 조심스럽게 정의하고 있다. 실험을 통해 가설을 세우고 또 다시 증명하는 과학자의 자세다.
그렇다면 이 '왜곡'되지만 변함없는 '소망충족표현'으로서의 꿈의 근원으로서 '무의식'은 대체 언제 등장하는가.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무의식'적 사고로서, 이 사고 과정은 의식의 지배 아래에서 고의로 행하는 반성과 사색의 때에 우리가 인지하는 사고 과정과는 매우 다르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 [꿈의 해석], <6장. 꿈의 작업>, 지그문트 프로이트, 1900.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전매특허 '무의식'은 총 7장으로 구성된 이 책 [꿈의 해석]의 <6장. 꿈의 작업>에 가서야 처음 등장한다. 마치 철학자 헤겔의 주저 [정신현상학](1806)에서 궁극의 결론인 '절대정신'이 마지막 장에 등장하듯이 말이다.
결론은 익히 알다시피 '무의식'에 잠재된 '소망'들이 의식의 '억압'을 거쳐 꿈에 재현되고 '왜곡'되고 '위장'될지라도 그 본질로서 '무의식'의 '소망충족표현'으로서의 꿈의 정의는 변하지 않는다.
"꿈 자체는 겉으로 나타난 이 여러 억제된 것 중의 하나이다. 이론적으로 말한다면, 꿈은 모든 경우에 그렇고, 명확한 경험에 비추어 보면... 대다수의 꿈이 그렇다. 심리적으로 억제되어 있는 것은 깨어있는 생활에서는, '여러 모순의 상쇄'에 의해 그 표현이 방해되어 내적 지각에서 절단된 것이지만, 밤 생활 속에서는, 더욱이 타협 형성물의 지배 아래서는 의식에 자리를 잡을 방법과 길을 발견하는 것이다."
- [꿈의 해석], <7장. 꿈 과정의 심리학>, 지그문트 프로이트, 1900.
사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새로운 것은 아니란다. 그는 이 책의 <2장. 꿈 해석의 방법>에서 자신의 꿈 해석 방법은 고대로부터 흔히 써 온 '상징법'이 아니라 '해석법'이라고 구분하고 있다. 즉, 꿈의 사고로서 꿈꾼 사람의 유아기와 꿈꾸기 바로 전날의 일상을 그 스스로 말하도록 하여 조사하고, 그의 꿈을 또 스스로 재구성('2차 가공')하게 하여 분석하며 '해석'하는 과학적 방법이다. 고대로부터 '신의 계시' 등으로 보던 꿈의 '상징'을 먼저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낮과 밤의 구체적 사례를 낱낱이 조사한 후 꿈꾼 자 스스로 '해석'하고 프로이트는 이 '꿈의 해석'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무의식'의 '소망'이 '의식'적 '왜곡'과 '위장'을 통해서 '표현'되는 "소망충족표현'으로서 꿈은 이렇게 해석되는데, 이 방법은 프로이트로부터 1,700년 전 그리스 '달디스의 아르테미도로스'라는 사람의 꿈 '해석법'이라고 한다. 방법은 고대로부터 차용하였으되 프로이트의 위대한 발견은 바로 '무의식'이며 이 주인공은 헤겔의 '절대정신'처럼 [꿈의 해석]이라는 20세기 대작의 말미에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프로이트가 말하듯 그의 '무의식'은 철학자들이 말하는 '의식의 대립물'은 아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에는 두 가지가 있는 셈"인데, "한쪽 것은 '의식화될 수 없는 것(의식의 대립물)이지만, 나머지 한쪽을... '전(前)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마도 어떤 새로운 '검열(왜곡)'을 통과하고서야 비로소 '무의식' 조직을 생각하지 않고 '의식' 속에 들어올"(이상 같은책, <7장>) 어떤 것이다.
요약하면, 꿈이란 전적으로 '무의식'의 영역은 아니고 '의식'이 지배하고 통제하며 억제하는 관념이 '무의식' 및 그 이전의 '전(前)의식'과 상호작용하며 이뤄지는 일련의 '소망충족표현'이라는 것이다. 밤에 이뤄진 '꿈의 내용'을 통해 해석되는 맨정신의 '꿈의 사고'의 관계는 '무의식'('전의식' 포함)과 '의식'의 합작품이다.
"꿈의 해석'은 정신생활 속에 있는 '무의식'적인 것을 알기 위한 왕도이다"
- [꿈의 해석], <7장. 꿈 과정의 심리학>, 지그문트 프로이트, 1900.
( 구스타프 클림트, [다나에], 1907~1908. )
3.
이제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몇 차례 꾸었던 '나체망신개꿈'을 해석할 때가 되었다.
단순하다.
1) 일단 프로이트의 많은 사례들에 의하면, 이불을 덮지 않고 자다가 잠결에 추위를 느끼면 '나체꿈'을 꾼다.
2) 전날 맨정신에 음란한 생각을 대놓고 하지 않은 것 같지만, 나의 '무의식'에 잠재된 음란성에 따라 홀라당 상하의실종된 나는 수많은 여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정숙하든 방탕하든 프로이트 본인을 포함하여 모든 성인들의 꿈은 '반드시' '성적'인 것을 기반하고 있다.
3) 나의 '무의식'을 뒤져도 음란성을 못찾겠다면, 그건 맨정신의 '의식'이 나의 성적인 생각을 '검열'하고 '억압'하기 때문이다. 정숙하고 금욕적인 내가 '나체꿈'이나 '똥꿈'을 자주 꾸었다면 평소 나의 '의식'이 '무의식'에 잠재된 음란함과 더러움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흔히 말하듯 "꿈은 현실과 반대"가 될 수도 있다.
4) 그러므로 '나체꿈'은 앞으로 '창피'를 당할 나의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 아니라, 꿈꾼 바로 전날과 유아기 및 사춘기 일대를 포함한 나의 "과거와 닮은 모습"(같은책, <7장>)으로 구성된다. 이런 류의 '불안한 꿈'은 이를테면 이미 통과한 시험을 다시 본다거나 아주 끔찍하게 군대를 다시 간다거나 하는 형태로 이미 걱정없이 지나온 것들을 재확인시켜주는 사실의 증명이다. 보라. 나는 이미 군에서 제대한지 26년이나 지났지 않은가.
5) 결국, '미래 예견'처럼 보이는 이 '불안한 꿈'들은 과거에 이미 극복된 현실의 확인일 수도 있으며 "꿈은 현실의 반대"라는 명제와 함께 미래의 경계가 될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죽음'을 본 꿈을 통해 오히려 현실의 '삶'을 지킬 수도 있다.
그리하여 내린 나의 '나체망신개꿈'의 해석은,
1) 예전의 사춘기와 청년기의 나는 비록 매우 음란했을 지언정,
2) 지금의 중장년에 이불을 덮지 않고 잠자는 나는 음란하고 싶어도 몸이 따르지 않는 현실에서 '소망충족'을 꿈으로 표현하고 말았지만,
3) "꿈은 반대"니까 맨정신의 나는 결코 음란마귀가 아니며 앞으로 현실에서 창피당할 짓은 추호도 없도록 경계한다.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상징적' 꿈 해몽이 아니라 '과학적' [꿈의 해석]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지그문트 프로이트 형님께 깊은 존경과 경의를.
***
- [꿈의 해석(Die Traumdeutung)](1900), Sigmund Freud, 김양순 옮김, <동서문화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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