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시장에 대항하라!
- 경제학자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자유무역이라는 신화와 자본주의의 은폐된 역사(The Myth of Free Trade and the Secret History of Capitalism)”
"'시장에 대항하라’는 말이 과격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장에 대항하는 것은 기업가들이 항상 하는 일이다. 물론 기업가들은 결국에는 시장에 의해 심판 받는다. 하지만 기업가들, 특히 성공한 기업가들은 시장의 힘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회사에 대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기간 동안 시장의 흐름을 거스를 필요가 있는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이 진출하고자 하는 새로운 부문에 세운 자회사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돌본다. 기존 회사에서 나온 이익으로 그 손실을 메우는 등의 방법을 통해 말이다. 노키아는 벌목, 고무장화,그리고 전선 사업에서 번 돈으로 17년에 걸쳐 전자 사업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삼성은 직물과 제당 사업에서 번 돈으로 10년이 넘도록 전자 사업에 투자했다. 이들이 만일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개발도상국에게 권하는 것처럼 시장의 신호에 충실했더라면, 노키아는 아직도 나무나 베고 있고, 삼성은 여전히 수입된 사탕수수나 정제하고 있을 것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라들도 마찬가지로 시장에 대항하여 보다 어렵고 좀 더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부문에 진입해야 한다…
요컨대 신자유주의는 경제 발전을 어렵게 만들고, 생산성이 높은 새로운 능력의 획득을 까다롭게 하는 것이다."
-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에필로그 중.
일반적으로 사마리아인들은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무정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오래된 인식이었다고 하는데요, 성경은 노상강도에게 약탈당한 한 남자가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받는 사건을 인용하면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마리아인’이라는 단어 자체에 이미 나쁘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만,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 교수 장하준은 자신의 저서에 성경의 이야기를 패러디하여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습니다.
초국적 자본의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전세계적으로 경계를 허무는 자유무역을 통해 자본의 무한한 이윤증식 운동을 기획하고 보장한다는 점에서 현재 자본주의 경제학의 주류인데요, 체급이 다른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무한 타이틀매치를 조장하고 이를 냉정하게 지켜보면서 선진국과 그 배후에 있는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충실히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마리아인’과 닮았습니다. 이번 17대 대선에서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부르짖는 ‘착한 신자유주의자’가 하나 불쑥 나타나서 130만표 이상을 얻기도 했습니다만, 이는 비정규직으로 대변되는 노동유연성을 지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신자유주의 사상과 화해할 수 없는 주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자’라는 단어 자체에 이미 나쁘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도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신자유주의’의 위선을 비판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는 책은 신자유주의의 해악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듯, 신자유주의자들을 사마리아인들로, 그것도 ‘나쁜 사마리아인들’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선진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진정으로 자유무역을 시행한 적도 없으면서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자유무역만이 선진국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설교하고 다니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를 주도하는 ‘사악한 삼총사’로 IMF, 세계은행, WTO를 들고 있습니다. 익히 알고 있다시피 1997년말 이후 우리 사회는 대대적인 신자유주의적인 재편이 진행되었는데요, IMF는 남한의 신자유주의적 제도개편과 구조조정을 강력한 조건으로 한 구제금융정책을 성공적으로 시행하였고, 급기야 지금의 남한은 한미FTA라는 미국과의 급진적인 양자협정 체결에 직면해 있습니다. 한미FTA 체결의 불가피성을 이야기하는 노동자들은 이미 지난 10년간의 고된 삶 속에서 신자유주의를 강고한 현실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한미FTA 체결에 동의하는 것일 테고, 이는 결국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신자유주의의 전세계적 공세의 결과일 것입니다.
우리 남한 사회 구석구석으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운동은 이미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명한 경제학자가 펼치는 논쟁의 중심에는 ‘자본’이 아니라 ‘시장’이 있습니다.
몇 해전 ‘지식의 소매상’을 자처하던 유시민은 [경제학 카페]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시장경제도 계획경제다”라고 말하면서 ‘중앙통제식 계획경제’였던 구 사회주의경제의 파산 이후 고도 분업사회에 어울리는 경제적 기본질서는 ‘분권적 계획경제’인 시장경제 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는데, 좌파적 케인즈주의의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시장’이라는 것은 원래부터 없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에 공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의 결론은 차치하더라도 ‘시장’은 역시 통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유시민의 견해에 동의할 만 합니다.
장하준 또한 영국이나 미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 심지어 핀란드까지도 ‘자유무역’과 ‘시장’을 믿은 것이 아니라 철저한 보호무역제도 및 조치 등을 통해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으며, 남한의 포철(현재 포스코)이나 삼성도 동일한 방식으로 자본의 이익을 증대하여 현재의 위치에 올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론짓습니다. 선진국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철저한 보호무역으로 우리 제조업에 투자해야 그들처럼 될 수 있다고.
영국에서 공부한 저명한 경제학자인 그의 눈에도 역시 ‘시장’은, 철저히 통제되어야 하는 대상입니다.
‘자유로운 시장’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영기업 또는 공기업의 민영화 문제, 즉, 자연 독점이나 필수적인 공공서비스의 경우 정부의 적절한 관리 능력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민영화가 이루어지면,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정치적 통제가 가능하던 공적 독점이 비효율적이면서도 통제도 되지 않는 민간 독점으로 대체되어 그 이익이 몇몇 소수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나, 선진국이 되기 이전의 독일이나 일본인들은 당시 선진국 사람들 눈에 게으르고 나태한 ‘민족성’을 지닌 사람들로 보였으나 이는 당시 경제발전상황에 따른 현상일 뿐,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듯 ‘민족성’ 따위가 본질적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유무역’ 도입 이전 개발도상국들의 부정부패를 문제삼고 있지만, ‘자유시장’ 내에 있는 민간자본의 부정부패와 회계조작 또한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 등. 저자는 정치, 사회, 문화의 다방면에서 ‘자유무역’과 ‘시장’의 확대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유)시장의 확대가 탈’이라고 하면서 ‘시장에 대항’하고자 하는 저명한 경제학자의 견해에는 분배나 대다수 노동계급의 이익이 끼여들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자유무역’과 ‘시장’에 대항하여 제조업 중심의 보호무역조치를 통해 선진국에 도달할 수는 있겠지만, 사회 내 분배나 노동계급의 이익 쟁취의 문제는 ‘시장에 대한 대항’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신자유주의 체제 내에서 계급간 불균형의 폭을 넓히고 사회적 부가 극단적으로 편중되는 현상의 본질은 여전히, ‘자본’과 ‘생산수단’의 소유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대다수가 부를 창출하는 ‘사회적 생산’과 ‘자본’ 및 ‘생산수단’은 소수가 지배하는 ‘사적 소유’와의 모순 해결이 결국 무엇보다 본질적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문제는, ‘시장’에 대한 대항을 넘어선 ‘자본’의 통제입니다.
***
1.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지음, <부.키>, 2007.
: 저자는 영국 케임브릿지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명한 경제학자로서, ‘자유무역’과 ‘자유시장’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음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하는 시도는 훌륭해 마지 않습니다. 이는 ‘시장’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유시민이나, 체급이 다른 남한과 미국을 같은 경기장에서 싸우도록 하는 신자유주의는 기만이므로 당장 한미FTA를 멈추라고 이야기하는 국제경제학자 우석훈과 비슷한 이론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신자유주의가 나쁜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무역’과 ‘시장’의 은폐된 역사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알기에는 좋은 책인 듯 하여 추천합니다.
2.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 유시민 지음, <돌베개>, 2002.
: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대중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지식소매상’ 유시민이 쓴 책입니다. “시장경제는 계획경제”이며, 문제가 많기는 해도 현실적으로 ‘분권적 계획경제’인 ‘시장경제’ 외 다른 유망한 모델이 없으니 잘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은 원래 실험할 수 없는 사회과학으로서 머릿속에나마 완전한 이상을 전제로 하여 이론을 전개하는데, 우리가 잘 아는 수요와 공급의 미시경제학이나 성장과 물가, 실업률 등 국가경제 현상들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거시경제학 모두 ‘ceteris paribus(세테리스 파리부스)’, 즉,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이라는 전제를 깔고 전개되므로 이런 학문을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자들을 비난할 지언정 ‘경제학’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 [경제대공황과 IMF 신탁통치] ,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지음, <한울>, 1997.
: IMF 구제금융의 도래를 앞둔 정세분석을 위한 저서로서, IMF 구제금융을 ‘신탁통치’로 규정하면서 당시 상황을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듯 일시적 ‘경제침체’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본질인 ‘공황’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도 그 흐름을 주도하는 주구로서 ‘사악한 삼총사’인 IMF, 세계은행, WTO가 등장하는데요,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공황에 대한 대응으로서 초국적 자본에 대한 예속성을 떨치고 동아시아 국가들간의 연합을 통한 공동대응과 정권 퇴진 후 거국적 민중정부 구성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공세와 남한의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었습니다.
(2007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