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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Mar 05. 2020

'과학에서 공상으로' 전환과 재전환의 변증법

[거대한 전환 -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칼 폴라니

'과학에서 공상으로’ 전환과 재전환의 변증법
- [거대한 전환 –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1944), 칼 폴라니 著, 홍기빈 譯, <길>, 2009.


“19세기 문명은 무너졌다. 이 책은 이 사건의 정치적, 경제적 여러 기원들, 그리고 그것이 불러들인 ‘거대한 전환’을 다룬다.… 19세기 체제가 나오게 된 원천이자 모태였던 것은 ‘자기조정 시장(Self-regulating Market)’이었다. (19세기 문명을 떠받치던 4가지 제도 중) ‘금본위제’란 이 국내의 시장경제 체제를 국제적 영역으로 확장하기 위한 노력에 불과한 것이다. 또 ‘세력균형 체제’란 이 금본위제에 기초하여 세워진 상부구조였고 그 작동 또한 부분적으로나마 금본위제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자유주의 국가’라는 것도 그 자체가 자기조정 시장의 피조물이었다. 결국 19세기 문명의 제도 체제를 이해하는 열쇠는 시장경제를 통제하는 여러 법칙에 있었던 셈이다.
… 우리가 이 책에서 주장하려는 명제는 다음과 같다. 이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아이디어는 한마디로 완전히 유토피아이다. 그런 제도는 아주 잠시도 존재할 수 없으며, 만에 하나 실현될 경우 사회를 이루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내용물을 아예 씨를 말려버리게 되어 있다. 인간은 그야말로 신체적으로 파괴당할 것이며, 삶의 환경은 황무지가 될 것이다. 따라서 사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거대한 전환], 제1장 <백년 평화>

19세기 유럽의 ‘신성동맹(Holy Alliance)’ 체제는 세습왕조와 카톨릭 교회의 영적이고 물질적인 봉건권력의 담합체로서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출현한 테르미도르 반동과 영국 산업혁명의 과정에서 강대국들의 ‘모종의 공동 이해’를 달성해 왔는데,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사상가인 칼 폴라니(Karl Polanyi)에 의하면 그 ‘공동의 이해’가 바로 ‘백년 평화’ 체제였다고 한다. 그러나 ‘신성동맹’의 뒤를 이어 폭력 사용의 빈도나 폭압성이 그에 비해 비교도 되지 못할 정도로 “허깨비 같은 존재”였던 ‘유럽 협조체제’는 익명의 요인으로서 ‘강력한 사회적 도구’를 등에 업고 있었으니, 초국적 대형 금융자본을 이르는 ‘오트 피낭스(Haute Finance)’가 그것이다. 유럽의 로스차일드(N.Rothschild) 집안이나 그 뒤를 이은 미국의 모건(J.P.Morgan)와 같은 ‘오트 피낭스’는 오늘날 초국적 금융자본의 고전적 형태로서 전면전이 아닌 국지전의 전쟁대부와 전방위적 인수합병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의 모든 전쟁은 이런 금융가들이 조직한 것이 맞기는 하나, 평화 또한 이윤추구를 방해하는 전면전을 두려워한 바로 이 대형금융가들이 조직한 것도 사실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혼란의 와중에 섣부르게 유럽 각국의 통화 안정화에만 골몰한 결과 세계적 채권자인 영국과 미국이 패전국들의 채무불이행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금본위제를 포기하자 “평화의 이해를 대변하는 두 조직, 즉 국제연맹과 그것의 주요 집행도구”였던 로스차일드 집안과 모건 집안이 정치에서 자취를 감추고 “전 세계를 묶어놓은 황금줄이 끊어지는” 1930년대는 “모종의 세계혁명이 시작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게 된다. 이 시기 ‘파시즘’과 ‘사회주의’, ‘뉴딜’은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인데, 칼 폴라니는 그 기원을 쫓는 이야기의 본론을 ‘시장경제’와 ‘자유무역’, ‘금본위제’의 “발명자이자 산업혁명의 고향”인 영국에서부터 시작한다.


“인간들을 통째로 갈아서 무차별의 떼거리로 만들어 버린 (영국이라는) 그 ‘사탄의 맷돌(Satanic Mill)’은 무엇이었는가?... 19세기 문명의 역사는 대부분 그러한 (산업혁명의) 메커니즘이 가져올 황폐화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변화는 바로 시장경제의 확립이며 (이러한) 모든 변화들은 그저 이것에 부수적으로 생겨난 것들에 불과하다.”
- [거대한 전환], 제3장 <삶의 터전이냐, 경제 개발이냐>
 
칼 폴라니는 자유로운 ‘자기조정 시장(Self-regulating Market)’은 환상적 ‘유토피아’에 불과하며, ‘노동’과 ‘토지’, ‘화폐’를 상품화하는 ‘경제적 자유주의’는 ‘인간’과 ‘자연’, ‘생산조직’을 사회-문화적으로 지켜내려는 ‘사회적 보호주의’를 필연적으로 불러온다고 주장한다. 역사적, 인류학적 연구의 발견을 보면 인간은 아담 스미스 이후 고전경제학이 주장하듯 “물질적 재화의 소유라는 개인적 이해를 지켜내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며, 그가 행동하여 지키려는 것은 그의 사회적 지위, 사회적 권리, 사회적 자산”이었다는 것이다. 칼 폴라니는 “인간의 경제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사회관계 속에 깊숙이 잠겨있다”고 말한다. 그의 ‘경제학’은 ‘정치경제학’의 계보에 있다.

“정치경제학은 인간과학이어야만 하며, 인간에게서 자연적인 것을 다루는 것이지 자연에게서 자연적인 것을 다루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전파 정치경제학자들의 ‘자연주의’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오언은) 국가와 사회가 다른 것이라는 것을 깊이 의식하고 있었다.… 공동체에 끼치는 해악을 피하는 데에 도움이 될만한 개입이라면 얼마든지 국가에 기대했지만, 사회를 조직하는 일 자체를 국가에 기대하는 법은 결코 없었다.… (그가 꿰뚫어본) 핵심적인 현상이란 바로 ‘사회’라는 것이었다.”
- [거대한 전환], 제10장 <정치경제학과 사회의 발견>
 
칼 폴라니는 ‘협동조합’적 체제에 기반한 로버트 오언(Robert Owen)의 ‘공상적 사회주의’ 실험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19세기에 ‘과학적 사회주의’로서의 마르크스주의가 ‘공상에서 과학으로’ 전환한 ‘정치경제학’의 시도를 20세기에 ‘사회의 재발견’의 강조를 통해 ‘과학에서 공상으로 다시 전환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칼 폴라니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조정 시장주의’의 ‘신앙적’ 유토피아에 맞서 노동자계급은 ‘노동조합’과 ‘정당’으로, 봉건지주계급은 ‘스피넘랜드법’과 같은 ‘가부장적 온정주의’ 구빈법 체제로, ‘사회보호주의’를 가동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와 ‘사회적 보호주의’의 ‘이중적 운동(Double Movement)’을 통해 인류 역사가 끊임없이 진행 또는 발전된다는 것이다.
‘자연과학’과 같은 독립된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에서 벗어나, ‘사회과학’은 ‘사회’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인식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19세기로부터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을 거친 20세기 이후의 ‘정치경제학’이며, 대공황과 뉴딜, 두 차례 세계대전이나 ‘파시즘’ 및 ‘사회주의 혁명’ 등 온갖 주요한 사회 현상의 ‘기원’을 규명하는 ‘사회과학방법론’이다.

“노동시장이 노동자들의 삶을 지독하게 쪼아댈수록 노동자들은 점점 더 끈질기에 투표권을 달라고 목청을 높여갔다. 이러한 ‘인민정부’의 요구가 훗날 문명의 붕괴를 가져온 긴장의 정치적인 원천이었다.
… 개입주의와 통화라는 시장사회의 근본문제들은 내적인 필연성에 의해 계속 다시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문제들이 1920년대에는 정치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사회주의는 그 본질에서 자기조정 시장을 극복하기 위해 그것을 민주적 사회의 명령 아래에 의식적으로 복종시키고자 하는 것으로서, 이는 산업 문명에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경향이었다. 이는 (다수인) 산업노동자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해결책이었다.
… 1920년대에 실제로 벌어졌던 일… 노동세력은 그 수를 무기로 삼아 의회에 참호를 파고 단단히 자리를 잡았으며, 자본가들은 산업을 자신의 철옹성으로 건설하여 그 위에 올라 앉아 온 나라를 호령했다.… 이러한 (계급전쟁의) 상태가 계속되자 마침내 경제 체제와 정치 체계 양쪽 모두가 완전히 마비될 위협이 현실화되는 순간이 오게 되었다. 공포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고, 사람들은 나중에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따져보지도 못한 채 그저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날 쉬운 길만 제공해준다면 어떤 이들에라도 기꺼이 지도권을 떠안겨주기에 이르렀다. 파시즘이라는 해결책이 나타날 때가 무르익은 것이다.”
- [거대한 전환], 제19장 <인민정부와 시장경제>

‘거대한 전환’이든 ‘공상’과 ‘과학’의 ‘전환’과 ‘재전환’이든, ‘사회’의 역사를 관통하는 철학적 사유방식은 ‘대립물의 투쟁과 통일’로서의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물론, 칼 폴라니는 “22세 이후로는 마르크스주의에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고 선언했다지만 그가 분석한 세계 경제사의 방법적 뿌리는 부정할 수 없이 변증법적이고 역사적인 ‘사회과학’으로서의 정치경제학이고 그러므로 그의 결론 또한 이에 기반한 ‘민주적 사회주의’인 것이다.
‘고립된 인간’의 ‘자유주의 시장체제’가 아니라, ‘사회’의 재발견을 통해 ‘복합 사회(Complex Society)에서 자유의 의미’를 이해하고 확립하는 것이 칼 폴라니가 주장하는 인류 과제의 실현이다.

“시장경제의 사멸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자유시대의 개막일 수 있다.… 규제와 통제를 통하여 단지 ‘소수가 아닌 모두를 위한 자유’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산업사회라면 분명히 자유로울 수 있는 여력 뿐만 아니라 정의로울 수 있는 여력 또한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사회의 발견은 자유의 종말일 수도 있고 그것의 재탄생일 수도 있다… 인류는 더욱 성숙해질 것이며, ‘복합 사회’ 안에서도 여전히 인간의 형상을 갖춘 채 존재할 수 있다.”
- [거대한 전환], 제21장 <복합 사회에서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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