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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스 Nov 07. 2019

아버지

더 이상 부를 수 없는 그 이름

딸아이가 아프다. 열이 40도 가까이 올랐다. 수건으로 몸을 식히고 팔다리를 주무른다. 서너 시간마다 먹일 수 있는 해열제를 준비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그 옛날 아버지, 어머니도 이런 마음이셨을까. 


아버지가 편찮으시다. 간이 온전치 못해서 새벽 응급실로 실려 가셨는데 정작 문제는 폐였다. 암 진단을 받고 전이 여부를 확인하고 항암치료가 가능한지 체크하는 동안 온 가족의 마음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늘 돌봄을 받다가 보살필 대상이 생겼다는 걸 적응하기도 전에 아버지와 나 사이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아버렸다. 당신도 확신할 수 없지만, 몸이 예전만 못하고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누군가를 책임지고 살피는 주체에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가 돼버린 상실감이 더 큰 고통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기억 중에 가장 즐거운 순간이 무엇일까? 아득하고 멀었다. 아버지와 함께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 나갔다. 몇 개 적다가 종이를 구겨버렸다. 아버지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회사에 휴직 희망 의사를 전달했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고 옳은 결정이라는 위로가 있었다. 10년 넘게 기획자로 살았고, 실행이 뜻한 바와 맞닿아 작동하도록 하는 걸 업으로 삼은 사람인데 정작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서의 계획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다시 못 올 몇 개월의 시간, 그중 온전히 아버지와 나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할 시간만큼은 후회 없이 내 의지로 살아야 할 날이다. 


마음이 아프다. 이게 최선인가 싶어 아프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아프다. 아프지만 내색할 수 없는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6개월 뒤 아버지는 내 곁을 떠났다. 숨을 가쁘게 내쉬는 아버지의 손을 잡아주는 게 아들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일이었다. 


6개월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지만 이번에는 참지 않고 목 놓아 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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