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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스 Nov 09. 2019

감사합니다.

익숙함 속의 엉뚱한 상상

아버지 간병을 위해 대구에 내려온 이후 줄곧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버스로 40분 내외의 거리다. 


이동하는 동안 책이라도 보려고 E-Book을 챙기지만 멀미가 심한 나는 멀뚱멀뚱 창밖 밀려나는 세상에 시선을 두거나 팟캐스트를 들으며 온갖 근심을 날려버리려고 애쓴다.  


이마저도 어려운 날에는 버스 안으로 시선을 옮긴다. 저마다의 이유로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표정으로 일상을 살아간다. 


어떻게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의 삶은 안녕한지 어떤 일들이 그들 앞에 펼쳐질지 상상하는 것도 하나의 소일거리다.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표정이 있다. 누군가와 끊지 못한 이야기를 이어가느라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빈자리를 스캔하고 재빠르게 관성의 법칙을 거슬러 올라 한자리를 꿰차기에 바쁜 승객도 있다. 


30여분을 관찰하다 보면 동전이나 지폐보다 교통카드나 모바일을 통해 버스요금을 결제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때마다 단말기는 약속한 것처럼 동일한 문장을 뱉는다. 


“감사합니다.”


너무나 간단하고 단호한 문장이지만 요금이 제대로 치러졌는지 확인하는 절차여서 그 누구도 반발하지 않는다. 아직까지 잔액이 충분하구나 안도하는 마음도 느껴지고 조금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면 또 다른 세상으로의 티켓을 거머쥔 비장한 기분까지 읽힌다.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저 문장을 버스 기사님은 하루에 몇 번이나 들을까?  또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감사하다’는 상투적인 말 대신 오늘도 치열하게 각자의 삶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조금 더 다채로운 말들을 해줄 수는 없을까.


이를테면


“힘내세요. 좋은 하루입니다.”
“당신을 위한 날입니다. 건승을 빌어요.”


혹은 각자의 하루를 투과해 가장 개인화된 말을 건네주는 건?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힘내세요.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네요.  모두 당신을 걱정하고 있어요.”


엉뚱한 상상이 더 이상 과대망상이 되지 않도록 안내방송이 내려야 할 정거장을 일깨워준다. 짧은 순간 생각의 단초를 마련해준 작은 공간과 사람들에게 가장 상투적인 말을 마음속으로 남기고 버스를 내린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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