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기장 Jan 17. 2024

나는 나약한 사람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라고 인정하면 편하다.

  편하다? ...... 덜 아프다.

  부동산도, 강사 채용도, 내 두통도, 연애도. 전부 내 마음대로 안된다.



  어제는 스스로 독립심이 무척 강하다는 사람을 만났다. 부탁도 잘 안 하고 피해 끼치는 걸 싫어하고, 상대에게 화도 함로 안 낸다고 했다. 나에겐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하다 했다. 하지만 상대에게도 엄격할 것이라는 건 금방  수 있었다.


"저는 자상한 사람을 원해요."

- "본인은 자상한가요? 저는 상대에게 무언가 원하려면 나부터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그럼요. 자상하죠. 제가 잘 챙기는 사람이라 상대에겐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자상한 사람이 좋아요."

- "그럼 괜찮죠."


  상대에겐 관대하다던 사람이 내가 자상함을 원할 자격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특별히 질문이 없길래 이런저런 얘기를 물었더니 그가 주로 이야기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나 보다 하며 듣고 있었는데 내게 질문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아 궁금한 거 있으면 저한테 물어보세요. 제가 답할게요." 했더니 "저는 딱히 질문을 안 해도 상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궁금한 게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친절한 말투였지만 묘하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태도였다. 말에 힘이 있어야 해서 모든 말에 온점을 찍는다는 그는 자꾸 문어체를 구사했다. 나이스하지만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이미 불편했다. 상대방 성향이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피곤한 나날들 사이에 쪼개서 나간 자리에 썩 괜찮은 사람은 아니었다.


  인생이라는 게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걸 인정하면 덜 아플 것 같다. 나 혼자 사는 건 불가능하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시작이 아니라, 사실은 누군가를 옆에 둘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여태까지는 사람이 나약해서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다. 나약하지 않기에 함께 하는 거다. 스스로 불완전하다는 걸 인정할 수 있기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기에, 결국 내가 나약하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나와 같이 나약하고, 불완전하고,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내 옆에 있도록 허용할 수 있는 거다.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독립적이고 강하다는 핑계로 혼자 고립되고, 상대방이 내 약점을 발견하는 것을 허용하지 못한다.

  

  지인이 게으르고 나약한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말은 '그녀의 단점을 알지만 내겐 상관없는 일이야.'로 들리기도 했다.

  누군가가 나를 치켜세우지 않아도, 대단하다 여기지 않아도, 평범하고, 둔하고, 덤벙대고, 기복 있고, 뒤끝 고, 애 같여겨도, 괜찮다 여겨주길 바란다. 그전에 자신이 인정해야 한다. 없이 나약한 인간이라는 걸... 그래야 나를 보여주는 것에 자연스러워질 있다.


  잠시 스쳐간 그에게 내 모습이 보여서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다움"에 갇히지 않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