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정도 타지역에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러 간 적이 있었다. 전라북도 전주였다. 내게 전주는 ‘비빔밥’, ‘콩나물국밥’ 단어로만 기억돼 있었다.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고, 생소하고 낯선 도시였다. 20대 난 겁이 없었다. 돈이 필요했고 아이들을 만나고 싶었다.
‘한 달간 수업해줄 교사 구함’
그 문장을 보고 주섬주섬 가방을 싸 전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경남 마산에서 온 김용만이라고 합니다.”
“아이고, 이 먼 곳까지 오시느라 수고했습니다.”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나를 환영했다. 웃는 얼굴이 많은 포근한 학교였다.
“어디 지낼 곳은 마련했습니까?”
교장 선생님이 물었다.
“모텔에서 한 달 간 숙박하려 합니다.”
교장 선생님 얼굴에 놀람이 묻어났다.
“김 쌤, 마음도 알겠지만 혹시 출퇴근하는 데 학생들이 보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선생님이 매일 모텔을 드나든다고 하면….”
‘아차!’
“그렇네요. 교장 선생님, 그럼 다른 곳을 알아보겠습니다. 죄송한데 혹시 학교에 숙직실은 없을까요?”
마침 학교에 빈 곳이 있었다. 교장 선생님은 그곳에서 지내라고 허락해줬다. 학교의 밤은 무섭다. 잠 잘 곳을 마련했다는 안심과 동시에 밤의 서늘함이 느껴졌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숙직실에 가방을 풀고 다음 날 아이들을 만날 준비를 했다.
‘잠자리는 해결됐는데, 밥은 어쩌지?’
평일 점심, 저녁은 급식소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아침과 주말 식사가 문제였다.
아침밥 걱정은 기우였다. 학생들이 내 사정을 알고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서 줬다. 흰쌀밥 위에 하트 모양 완두콩이 올라간 아침을 매일 먹을 수 있었다. 학교 근무한 지 일주일이 지나고 첫 주말이 되자 끼니 해결이 급했다. 조용한 동네에 위치한 학교는 조금만 걸어가면 아담한 하천 옆길이 있었고 골목 구석구석 맛집이 숨어있었다. 학교 근처 편의점, 식당을 어슬렁거리며 주린 배를 채웠다. 매일 가게 하나를 돌아가며 먹는 밥맛은 절로 엄지가 척하고 올라갔다. 백반집은 밥, 찌개, 국과 함께 제철 재료로 만든 각종 반찬이 식탁 위에 올랐다. 엄마 밥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야~ 이래서 음식 하면 전라도, 전라도 하는구나!’
전주 음식은 갱상도 청년 입맛에 딱! 이었다. 첫째 주 여섯 끼는 이렇게 해결했다.
둘째 주가 되자 아이들은 나를 걱정해줬다.
“선생님, 주말에는 뭐해요?”
“학교에 있다.”
“안 심심해요?”
“괜찮다.”
“밥은요?”
“학교 근처 식당에서 사 먹는다.”
“헐! 그러면 맛있는 거 많이 못 드셨겠네요?”
“식당들 다 맛있더라.”
“선생님, 콩나물국밥 드셔보셨어요?”
“응, 마산에도 콩나물국밥 있다.”
“하하하, 선생님 사투리 재밌어요. 전주 콩나물국밥 드셔 보셨어요? 여기 근처에 연예인들 많이 오는 유명한 콩나물 국밥집이 있어요. 이번 주말에 소개해 드릴께요. 저희랑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오! 그래? 고맙다. 함 가보자.”
아이들과 향한 콩나물 국밥집은 연예인 사인이 벽마다 붙어있었다. 연예인들이 휘갈겨 넣은 사인을 보며 콩나물국밥 맛에 기대감이 더 커졌다. 뚝배기에 콩나물국밥이 보글보글 끓으며 식탁 위에 올랐다.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계란 반숙이 담겨 딸려왔다.
“이게 뭐꼬?”
“쌤. 그거 숟가락으로 떠서 국밥에 넣어서 드셔도 되고요. 아니면 국밥을 밥그릇에 덜어서 비벼 드셔도 돼요.”
생소했지만 콩나물국밥 전문가인 아이들이 시키는 대로 따라 했다. 국밥 한 숟갈에 아삭하게 씹히는 콩나물과 노른자의 고소함이 느껴졌다. 깊고 시원한 멸치 육수, 반찬으로 나온 젓갈과 깍두기까지 환상의 궁합이었다.
“우와, 맛있다!! 너거 덕분에 잘 먹었다. 고맙다.”
“네 선생님, 잘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마산 내려가서도 저희들 꼭 기억해 주세요.”
2003년 교사 생활 나의 첫 근무지 전주. 아이들은 갱상도 사투리 쓰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늘 나를 따라 다녔다. 낯선 사투리를 따라 하며 아이들은 깔깔거렸고, 아이들 웃음에 나도 함께 웃었다.
“한 달 동안 선생님 수업 들어줘서 고마웠어요. 이제 선생님은 마산으로 갑니다. 혹시 마산으로 오게 되면 꼭 연락해주세요. 선생님이 맛있는 거 사줄게요.”
아이들은 나를 위한 선물이라며,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나는 소매 끝으로 연신 눈을 닦아냈다. 아이들은 담담히 노래를 끝마쳤고, 눈물을 훌쩍였다. 20대 갱상도 총각선생님을 따라다니며 웃음을 줬던 아이들은 이제 30대 후반이 됐다. ‘비빔밥’, ‘콩나물국밥’으로 기억되던 전주는 내게 ‘따뜻함’과 ‘정겨움’으로 각인됐다. 아이들이 주었던 마지막 선물을 다시 들으며, 30대가 된 제자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나지막이 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