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키지 못한 유산/김태희

영글어가는 여름

by 김예린

대학시절, 첫 여름방학 내내 제주도에서 보냈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 육지로 온 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제주살이를 한 시간이었다.


“해가 뜨기 전에 출항해서, 바다 한가운데 일출 보는 게 얼마나 예쁜데. 너 본 적 없지?”


새벽 4시. 외삼촌이 말한 일출을 보기 위해 구명조끼를 입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바다밖에 없는 바다 한 가운데서 아침 해를 맞이했다. 아무것도 없는 이 넓은 바다 저 끝에서 잔잔하게 밀려오는 잔파도가 해를 밀어내자, 해가 천천히 떠올랐다. 옛날에 지구는 사각형이라는 터무니없는 설도 그럴법 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나는 새벽마다 해돋이를 보며 바다낚시를 나갔다.

새벽에는 벵에돔과 옥돔을, 밤에는 한치 줄낚시를 자유로운 이 바다 생활을 한 달쯤 했을 때였다.


장마철에 접어들어 출항을 못 해 간만에 늦잠을 자고, 그 전에 잡아서 손질해 넣어둔 한치를 꺼내 채를 썰었다. 고추장과 된장을 풀어 제주도식 물회를 만들던 중, 조미료 놓였던 장에 정체불명의 꿀단지 같은 병이 있었다. 6살쯤이었나, 희미한 기억 저 편으로 외할아버지가 반주로 드시던 술이라는걸 떠올리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우리 외할머니(이하 ‘할망’)는 맞벌이 부부였던 자식들을 대신해 손녀인 나를 애지중지 키워주셨다. 아침마다 내 손을 잡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다니며 약초를 알려주셨다. 봄마다 고사리와 더덕잎을 따고, 물 때를 보고 보말을 주워다가 항상 흙과 바다 내음이 싱그러운 상을 차려주셨다.

내가 초등학생이 되며 육지로 나가고부터, 우리 할망과 떨어지게 됐다.


그리고 3년 정도 흘렀을 때, 할망은 나를 보러 육지에 왔다가 제주도로 내려갔다. 그해 봄에 가족을 모두 불러모아 저녁 식사를 하신 뒤, 잠깐 쉬겠다고 누우시곤 오랜 잠에 드셨다.

나는 그 때 학교 문제로 할망의 마지막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런 할망의 마지막 유품, 아니 유산이 10년이 지나서야 이렇게 내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렸다. 한참을 울었다. 희미한 기억 저편에 있는 조각 하나. 볕이 잘 드는 거실에 앉아 사부작사부작 술을 빚던 우리 할망. 그 콤콤한 냄새가 코를 스쳐 갔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막걸리의 부유물은 오랜 잠에 든 할망의 손길이 없었던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지런히 가라앉아있었다.

마치 마지막 할망의 손길이 담긴 이 술 단지를 내게 주고 싶어서 그동안 가족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일지도 몰랐다.


한참을 울었을까. 우중충한 구름이 걷히고 화창해진 날씨. 햇볕이 창을 통해 따뜻하게 등을 토닥일 때, 저걸 꼭 먹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눈물을 꾸역꾸역 참고 할아방이 반주할 때 쓰시던 술잔을 꺼내고 술 단지를 열었다. 그리고 작은 국자로 이 술 윗 부분을 떠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마당의 귤 나무에 핀 꽃처럼 달짝지근한 향이 코를 데웠다. 한참 코로 술을 느끼다가 한 모금을 입에 넣어 오물오물 씹었다. 할아방이 저녁 반주를 빼놓지 않고 즐겼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달콤하고, 쌉싸름하면서, 입에 걸리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술. 그리고 할망이 해준 보말죽, 몸국, 옥돔미역국까지 희미한 기억의 조각들이 점점 선명해졌다.


내게 유일한 향수병이었던 우리 할망이 남긴 마지막 유산. 세상에는 참 많은 유산이 있는데 잘 보존하지 않으면 쉬 없어진다. ‘유산’이라는 값어치가 사라진다. 만약 지금 할망이 곁에 계셨다면, 어떻게든 그 술을 이어받고 싶다. 그것처럼 내겐 볕 좋은 날, 사부작사부작 빚어내던 할망의 그 술이 더 이상 지킬 수 없는 유산이 되었다.


최근 지인에게 의령에 일곱 번 깎아낸 쌀로 술을 빚는 명인이 술 빚는 법을 전해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쌀을 깎아내면 깎아낼수록 술을 빚기 어렵지만 그만큼 간에 해롭지 않아 고급술로 여겨진다. 우리 할망 술 맛을 재현하지는 못해도 할망에게 물려받은 손맛은 소중히 갈고 닦고 있으니 맛있는 술을 빚을 수 있지 않을까?


내년 우리 할망 제사에는 옥돔미역국와 함께 내가 직접 빚은 술을 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