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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린 Mar 29. 2023

서른다섯, '그림'에게 배웁니다 2화

 문제! ‘이 나이’는 몇 살일까?


'참, 나도 어지간히 잿빛 속에 살았네.'

바지런히 몸을 움직여 청소를 시작했다. 봄맞이 대청소. 청소는 언제나 끝이 없으며 해도 티는 나지 않는다.

겨우 나만 알고 뿌듯해할 뿐, '그래도 어쩌겠어. 해야지' 적당히 나와 타협하고 열심히 걸레질하다 말고 상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상자 뚜껑을 열 때마다 ‘어떤 판도라의 상자지?’ 하며 눈이 반짝인다. 일기장이다. 초등학교 1학년 충효 일기부터 고등학교 3학년 다이어리까지, 어릴 적 ‘기록’에 집착했던 나의 부산물이다. 초록 종이에 쌓인 다이어리를 열었다. 고등학교 이야기다. 그때 나는 참 치열하게 살았다. 비평준화였던 이 촌 동네에서 공부 잘한다(?) 아니 교과목을 잘 외우고 문제를 잘 푸는 애들만 모인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 높은 자존심으로 콧대가 높았던 시절. 학창 시절 내내 난 지금의 행복을 미래로 미루며 살았다. 세상은 입시의 끝은 분홍빛 천국이라 내게 말했고, 엄마 역시 대학 가면 하고 싶은 걸 다 하라 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해왔던 방송부 활동을 고등학교에도 하고 싶었다. 무대에 서서 드럼 치는 친구 모습도 반짝였다. 1학년 학기 초 방송부, 밴드부 동아리 모집 원서를 손에 꼭 쥐고 동아리방 앞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왔다. 동아리 모집 원서는 구겨 쓰레기통으로 버렸다.


'방송부를, 밴드를 할 시간에 문제 하나를 더 풀자.'

나의 선택지는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지 않고 공부하기였다. 야자가 끝난 뒤에는 독서실, 주말이면 도서관에 오가며 참 재미없게 살았다. 스트레스는 쌓여갔고, 툭 치면 눈물 줄줄 흘리는 날들이 3년에 내내 계속됐다. 우울감이 깊어질 때는 잠 들기 전 상상에 빠졌다.

'침대가 이대로 지구 안 내핵으로 빨려 들어가면 좋겠다' 혹은 '자는 동안 칠흑 같은 바다 밑으로 천천히 침대가 가라앉았으면' 하는 따위의 생각이었다.

3년 동안 시험 기간 한 달 전부터 시험공부를 시작했고, 그렇게 예습과 복습 일정으로 다이어리는 꽉 찼다. 빨간 펜으로 지워지는 일정에 성취감과 뿌듯함을, 지워지지 않은 일정에 나를 자책하고 좌절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다고 결과가 좋았느냐? 0.1 점에 등수가 오가는 학교에서 전교 20등 안에 들어보는 과거의 영광(?) 따위 오지 않았고, 급기야 틀린 문제를 인정하기 싫은 나는 시험지 가채점 시간 점수를 조작하며, 나를 속였다. 점수에 죽고 점수에 살던 내게 행복은 언제나 대학 진학 뒤 있었다.


장밋빛 미래 따위 내게 오지 않았다. 수능도 망쳐, 원하는 대학도 못 가. 대학생이 되자마자 패배감에 푹 절어 있던 내가 유일하게 바꿀 수 있는 건 외모였다. 스무 살이 되자 양쪽 귀에 구멍을 3개씩 뚫었고, 파마, 염색 머리 스타일은 한 달에 한 번 바꿨다. 얼굴은 파운데이션으로 하얗게, 아이라인은 길고 시커멓게, 입술은 빨갛게 칠했다. 엄마는 갑작스러운 내 변화에 놀랐는지 이렇게 말했다. "너무 빨리 변하는 거 아니니? 엄마 적응이 안 돼." 내가 엄마에게 할 수 있는 대답은 오로지 하나였다. "엄마가 대학 가서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며!"


20대는 하고 싶은 걸 다 하려 애쓴 시절이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10년 계획’을 세웠다.  관광해설사 자격증, 토익 900점, 해외 봉사활동, 해외여행, 언론고시 준비 등등하고 싶은 걸 빼곡히 적었다. 서른이 되기 전까지 기회가 오면 잘 잡은 덕에 ‘10년 계획’ 절반 이상은 실행에 옮겼다.

서른다섯 어느 날, 도서관에서 그림책 특강 듣고 나오던 길. 승강기 문이 닫히는 순간,  다급함 외침이 들렸다.

"잠시만요. 같이 가요!“

같이 그림책 수업을 듣는 작가님이었다. 인사를 나눈 뒤 승강기가 지하 1층에 다다를 때까지 짧은 대화를 했다.

"작가님 그림책은 잘 만들어지고 있나요?"

그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아뇨, 글은 어찌어찌 쓰는 데, 그림은…. 아휴 이 나이에 그림을 배울 수도 없고."

"그림이 어렵죠. 저도 그러네요."

승강기는 지하 1층에 닿았고, 문이 열리자마자 작가님과 헤어졌다.

나는 그의 말에 공감했지만, 이마를 한 대 탁 맞은 기분이었다. '이 나이는 도대체 몇 살이지?' 저 나이에 나는 50대인 저이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지 않을까? 후회하지 말고 당장 시작하자.'

차에 시동을 걸기 전,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화실 수업 문의합니다.'


동아리방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나, 동아리 모집 원서를 구겨 쓰레기통에 버렸던 내가 떠올랐다. 멈춘 발걸음과 구겨진 원서와 바꾼 잿빛 3년 동안 축축이 젖었던 베개 촉감이 생생해졌다. 망설일 게 없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나이 탓'을 하며 멈춰 있기가 싫었다.

오늘의 행복을 이런저런 핑계로 미래에 저당 잡히는 일은 고등학교 3년으로 충분했다.

‘네, 화실 수업 안내해 드립니다.’ 문자 답장이 왔다.

서른다섯,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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