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황새 한 마리였다.
다시 쓰는 취재일기 (1) -들어가며
‘여기서 내리면 되나?’
구글 지도를 켜고 내가 가는 길이 어딘지 살폈다. 창밖은 초록빛 포도밭과 뭉게구름이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했다. ‘띠링’ 구글 지도가 목적지에 도착했다며 알렸다. 부리나케 짐을 챙기고 버스에 내렸다.
프랑스 알자스 위나비르 방사센터 가는 길.
버스에 내리자마자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환영해요. 어서 와요.”
붉은 꽃들과 초록 잎사귀, 작은 분수 위로 물이 또르르 흘러나오는 쉼터, 나무 아래 동그란 식탁에 마을 주민들이 모여 앉았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마을 주민들이 와인 잔을 높이 들며 나를 환영해줬다.
“땡큐!(고마워요)”
목소리를 한 톤 높여 환영에 화답하고 눈웃음을 찡긋 날렸다. 인터뷰 약속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마을 주민들 옆에 앉아 와인 한 잔 할 여유가 없었다.
손에는 여전히 구글 지도가 켜진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아까 주민들 있던 곳이랑은 이제 좀 멀어졌겠지?’
뒤를 한 번 살펴봤다. 스마트폰 카메라 앱을 열어 빨갛고 동그란 버튼을 눌렀다.
“으하하하하하하”
영상 촬영이 시작되자 난 헤프게 웃었다.
-내가 여기에 왔다니! 잘했다. 장하다. 김예린
튼튼한 두 다리로 걸어 비행기, 기차, 버스를 타고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프랑스 알자스 위나비르 황새방사센터에 왔다.
프랑스까지 내가 왜 갔냐고? 시작은 황새 한 마리였다.
나와 황새와 첫 만남은 2014년 3월이었다. 화포천습지를 관리, 운영하는 곽승국 관장에게 전화가 왔다.
-김 기자, 지난 3월 18일에 일본 효고 현 도요오카 시에서 방생된 황새 한 마리가 김해 화포천습지에 왔어요.
-황새가 어떤 의미이죠?
(이때까지만 해도 난 환경 보전에 중요성은 알았지만, 화포천습지에 새 한 마리가 온 게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모르는 환·알·못, 환경을 알지 못하는 자.. 였다.)
김해 화포천을 찾은 황새 '봉순이'
황새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국제적으로 위기종으로 보호되고 있다. 1971년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이미 멸종해, 일본에서는 열심히 복원하고 방생하는 새다. 전 세계에 2천5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귀한 새이다. 그중 한 마리가 화포천습지를 찾았다는 건 이곳이 한 마디로 먹고살만한 곳이 됐기 때문이다.
황새는 하루 500g 정도 먹이를 먹는다. 미꾸라지 등 물고기가 주식이고 곤충, 쥐, 뱀이 부식(?)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황새가 나타난 화포천습지는 쓰레기 더미였다. 그랬던 화포천습지를 살려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 바로 고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진영읍 봉하마을로 귀향한 노 대통령 덕분에 김해시 친환경농업과는 화포천습지 살리기에 나섰다. 화포천습지 인근 한림면, 진영읍 등 주민들이 나서서 화포천습지를 청소하고, 봉하마을 일대는 70만 평의 대규모 친환경농업지대가 만들어졌다. 사람들의 쏟아지는 애정으로 자연은 서서히 변했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18종이 돌아왔고, 800여 종의 다양한 생물이 화포천습지를 터전으로 살기 시작했다. 여름이면 1천500마리의 늦반딧불이가 화포천습지의 밤을 별처럼 수놓았고, 겨울이면 몽골에서 독수리 200여 마리가 날아왔다.
말이 길어졌만, 멸종위기 동물 1급인 황새가 찾아온 건 죽었던 화포천습지가 멸종위기 동물이 살 수 있을 만큼 살아났다는 상징적인 의미였다.
일본 도요오카에서 김해까지 수 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황새를 관찰하던 도연스님이 ‘봉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봉순이’ 덕분에 일본과 교류도 활발해졌다. 일본 최대 언론인 요미우리 신문의 마쓰다 사토시 기자는 봉순이 소식에 비행기를 타고 김해까지 날아왔다. 당시 마쓰다 기자는 30도가 웃도는 더운 날에도 봉순이를 찾아 299만 5천 제곱미터 규모의 화포천습지를 돌아다녔다.
-김기자, 도요오카 시는 황새를 살리려고 어마 무시하게 노력했어요. 도요오카에서 방사한 황새가 러시아 등지에서 짝짓기 하도록 개체 수를 늘리는 것이 도요오카의 꿈이었죠. 봉순이가 김해를 찾은 건 도요오카의 꿈이 시작된 거예요.
도요오카 시는 1965년부터 40여 년 넘게 1천억 원의 들여 황새를 연구하고 인공부화 등을 진행했다. 주민들은 황새 보호 모임을 만들어 자체적인 활동도 열심히 했다. 마쓰다 기자가 떠나고 도요오카 시에서는 도요오카 시장과 부시장, 초등학교 학생들이 대한해협을 건너 김해를 찾았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는 걸 보고, 들으며 취재하던 나도 궁금해졌다.
‘황새와 공존하는 도시는 어떤 곳 일까. 떠나보낸 황새가 찾아온 공간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서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걸까. 황새는 김해에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때마침 한 방송에서 유럽의 황새와 김해를 찾은 봉순이를 주제로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다. 방송에는 제 집 지붕을 황새에게 내주고 함께 살아가는 프랑스, 독일 사람들의 인자한 얼굴이 나왔다. 사람을 겁내지 않고 비둘기처럼 거리를 거니는 유럽 황새의 모습이 잊히질 않았다.
-엄마, 나 내년에 저기 갔다 올게.
-응? 어떻게??
-방법이야 만들면 있겠지?! ㅋㅋ
'그래, 내년에 유럽 황새 만나러 가보자.’
황새 한 마리의 펄럭이는 날개 짓에 내 마음에도 바람이 일렁였다. 그리고 1년 뒤 난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황새 덕분에(?) 유럽행 비행기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