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방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출장 일정이 둥둥 떠다녔다. '그만 잠들었으면 좋겠다. 제발.'
‘황새 보러 유럽 갔다 올게’
엄마에게 호언장담을 한 뒤 방법을 찾았다.
‘지역신문발전협의회의 기획취재!’
매년 지역신문발전협의회에서는 좋은 기획안을 팍팍 밀어줬다. 밀어줬다는 건 가난한 신문사가 좋은 기획 기사를 낼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난 전문가인 곽승국 관장님의 조언을 열심히 귀담아들으며 눈을 반짝였다. 기획안을 기필코 통과시키고 말리라. 당장 내일 중간고사를 앞둔 학생처럼 열과 성을 다해 기획안을 적었다.
기획안은 운 좋게 당첨!
기획안이 뽑힌 날, 참 좋았다. 기획안 속 문자들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 어떤 고난과 역경이 기다리는지 알지 못한 중생, 김예린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어깨를 들썩들썩 내적 댄스를 췄다.
고등학생 때 세계사를 배우며 유럽을 동경했다. 대학생이 되면 꼭 홀로 유럽여행을 갈 거야, 하고 마음먹었던 나는 스물아홉 살, 이십 대의 끝자락에 꿈을 이뤘다. 물론 일이지만^^
영국 런던 습지센터 WWT, 프랑스 알자스 위나비르 방사센터, 독일 뤼스테트 유럽 황새마을이 목적지로 선정됐다.
통역가 없이, 가이드 없이 혈혈단신 홀로 떠나는 유럽이었다. 난 재미있는 일에만 부지런해지는 계획형 부지런쟁이다. 2017년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취재 일정을 잡았다. 준비는 3월부터 시작됐다. 떠나기 전까지 과정은 간단하지 않았다. 통역가 없이 떠나기 때문에 사전 취재를 탄탄히 해야 했다. 한국, 경남 그리고 김해. 이곳에서 영국 런던, 프랑스 알자스, 독일 뤼스테트에 연락이 닿기까지 가장 큰 힘이 된 건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취재처에 직접 메시지를 보내고 영문 기획안을 보냈다. 다행히 그들은 시골 기자의 취재 요청을 흔쾌히 받아줬고, 몇 번의 사전 질문지와 답변지가 오갔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해.’
사전 취재로 아무것도 없던 모래바닥 위에 일단 모래 성곽이라도 쌓을 수 있었다. 취재 가서 사진 찍고 추가 질문만 하면 된다.
‘아자, 난 할 수 있다.’
나 혼자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들면 최면으로 덮었다. 취재를 준비하며 구글링, 구글맵, 페이스북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구글과 페이스북 창립자에게 연신 ‘땡큐 땡큐’를 외쳤다.
출장을 떠나는 6월 25일. 지난밤 잠도 못 잔 상태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크를 경유해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서부터 머리와 입이 굳었다.
-영국 방문 목적이 뭐야?
-아..... (뭐라고 해야 하지)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영문 명함을 꺼냈다. 명함을 보여주며
-저기, 난 한국에서 온 기자인데, 런던 습지센터 WWT 취재가.
-거기가 어디야.
-(띵~)
내가 우물쭈물하자 답답했는지 입국심사를 보던 관리자는 그냥 날 통과시켜줬다. 히드로 공항 입국심사가 까다롭다고 소문이 나있다. ‘별 탈 없이 통과했으니 천만다행이다.’ 공항을 빠져나왔다.
한국에서 런던 지하철 오이스터 카드 사는 법,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킹스크로스 역까지 찾아가는 방법을 몇 번이고 찾아보고, 확인하고 상상했다. 오이스터 카드 구입기 앞에 서서 살짝 헤매긴 했지만 무사히 카드를 구입하고 지하철을 탔다.
런던의 지하철, 덜컹 거리는 지하철에서 마주한 건 단추가 잠기지 않은 셔츠에, 튀어나온 배를 뽐내며 잠들어있는 노숙자 할아버지였다. 반듯한 영국의 이미지 때문일까. 노숙자를 보는 순간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가 지하철을 내릴 때까지 자꾸만 눈길이 흘겨졌다.
오후 11시가 다 돼서 런던 킹스크로스 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을 벗어나 지상. 어둠을 밝히는 주황빛 도시. 런던의 차가운 밤공기를 양껏 들이마시고 있는데, 잘 차려입은 런던의 젊은이들이 무리 지어 거리를 오갔다.
‘정신 바짝 차리자’ 믿을 거라고는 스마트폰 속 구글 지도 밖에 없었다. 행여 스마트폰을 날치기라도 당할까 봐 가방에 스프링 줄 연결해 다니는 내 모습이 조금 우스웠다. 숙소는 길만 건너면 찾을 수 있는 곳이었지만 낯선 길에서 10분을 뱅글뱅글 돌고 나서야 숙소를 발견했다.
'아오, 여기 있었네. 바보 같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곧바로 들여온 영국식 영어에 깊은 한숨을 쉬어야 했다.
'이건 영어 듣기 백번 해도 못 알아먹는 말이다. 미국식 영어교육의 폐해야. 이렇게 발음과 억양이 다르다니!'
'지하로 내려가라고?'
대충 말귀를 알아먹고, 내 방으로 향했다.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좁은 계단을 낑낑 대며 지하에 있는 방에 도착했다.
'후와, 드디어 왔다'
문을 닫는 순간 드는 안도감부터 들었다.
'짐 정리? 씻어야 하나? 베드 버그 조심하라고 했는데. 짐을 풀어도 될까?'
안도감이 찾아온 뒤에 혼란스러웠다. 난 평생을 혼자 다른 나라에 남겨져본 적이 없었다. 뭐부터 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질 않았다. 멍-하니 있다가 샤워부터 했다.
자기 전 다음 날 일정을 꼼꼼히 살피고, 귀마개, 안대까지 자정이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달콤한 꿈나라의 시간도 잠시, 오전 3시. 창문 넘어 영어로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 목소리가 잠을 깨웠다.
'도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지? 이렇게 방음이 안됐나?!'
소음의 진원지는 호텔 입구에 앉아 토론하는 외국인들이었다.
한 시간을 참다못해 '제발 조용히 해달라'라고, 창문 넘어 외쳤지만. 그들은 오전 5시가 돼서야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