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이런 식으로 환영해주는거야?'
다시 쓰는 취재일기(3) -런던습지센터
열띤 토론객들로 잠이 달아났다. 한 시간 동안 뜬 눈으로 천장만 바라보며 멍-하니 있다 이불을 박차고 부스스한 머리를 긁었다.
‘런던 습지 어떻게 가더라..’
오전 9시, 카메라 가방을 메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지난밤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던 낯선 공간에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버스에 올랐다.
런던 외곽에 있는 런던습지센터에 가려면 시내 중심가에 있는 본드 스트리트 역에서 해미 스미스 역까지 25분, 버스를 타고 템즈강을 가로질러 10분을 더 가야 한다.
템즈강의 뿌연 강물을 보다가 런던 습지센터에 도착했다. 구글맵에서 위성사진으로만 보던 곳이다.
그곳에 발을 디딘 가슴 벅찬 순간! 우거진 풀숲에서 튀어나온 검은 새 한 마리가 총총 오솔길을 가로 건너더니 중간에서 찍, 하고 똥을 싸고 다시 풀숲으로 쏙 하고 들어간다.
-푸하하하, 이런 식으로 날 반겨주는 거야?
생각지도 못한 환영식(?)에 길바닥에서 배를 잡고 웃었다.
런던습지센터는 세계 최대 습지보전 시민단체인 'WWT(The Wild fowl&Wetland Trust)'가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잉글랜드에서 운영하는 영국 9개 습지 중 하나다. 별칭은 ‘런던의 오아시스’, 이곳은 습지, 호수, 연못 등 총 0.43㎢ 크기를 자랑한다.
런던습지센터 표지판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가면 멀리서 보면 오두막집처럼 생긴 건물이 보인다. 방문객센터다. 센터는 온통 초록으로 둘러싸였다. 싱그러움에 눈이 부셔 반쯤 감은 눈으로 센터로 향한다. 쏟아지는 초록빛에 취해 기분은 말랑말랑해졌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회색빛 콘크리트 저수지였다. ‘템스워터’라는 상수원 회사가 상수원을 공급하기 위해 운영했던 곳이다. 1993년 저수지 기능이 사라지자 이곳을 어떻게 활용할지 논의가 이뤄졌다.
‘이곳을 습지공원으로 만듭시다.’
WWT의 제안에 템스워터와 주택개발회사가 나서 지역의 일부를 고급주택단지로 개발했다. 개발로 벌어드린 돈은 약 1100만 파운드, 우리나라 돈 약 165억 원. 여기에 영국 국민들의 후원금 500만 파운드, 약 75억 원을 모금했다. 런던습지센터 조성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뛰어들었다. 1995년부터 5년 간 자원봉사자들은 이곳에 수생식물 30만 수, 나무 3만 그루를 땅을 파고 직접 심었다. 사람들 손이 보태지고 보태지며 갈대밭, 호수, 연못, 늪 등 인공습지가 만들어지고 런던습지센터가 2000년 5월 문을 열었다.
방문객센터 문을 열자 유모차를 타고 온 아기에서부터 아장아장 걷는 어린이, 백발의 노인까지 사람들로 복작댔다. 계단 세 개를 착착 올라가야 볼 수 있는 쌍 망원경, 습지를 오갔던 철새 수를 기록한 상황판, 런던습지센터 역사가 적힌 소개판 등이 설치돼 있었다.
-저기, 리처드 브룩 씨 만나러 왔는데요.
런던습지센터의 페이스북 공식 계정으로 한 달 전 리처드 브룩을 섭외했다. 런던습지센터에서 생물다양성을 담당하는 리처드 브룩은 센터 내 한 공간으로 나를 안내했다.
-와, 천국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겠어요.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새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다니다 미끄러지며 연못 위에 앉았다. 새들은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먹이 사냥을 즐겼다. 새들의 세계를 유리창 너머 가만히 훔쳐봤다. 그곳에는 내 숨소리와 새들의 지저귐만 가득했다.
-오늘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렇죠. 런던습지센터는 방문객에게 자연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하는 걸 목표로 해요. 연못 발 담그기, 야생동물 관찰하기, 서식지 조사하기 수달 먹이주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죠. 계절과 시간에 따라 볼거리가 정말 다양해요. 맹금류 소리 듣기, 박쥐 관찰하기, 야간 사파리 여행도 인기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죠. 습지센터 한 번 걸어보고 오세요.
그의 말대로 습지를 빙 둘러 조성된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새의 지저귐, 바람에 일렁이는 꽃과 나무의 몸짓 소리. 자연의 화음은 완벽했다. 산책로는 연못 지역, 더벌트 하이드(은신처), 세계 습지지역, 피콕 타워(공작새 탑), 야생생물 은신처, 갈색제비둥지 등으로 이뤄져 있다.
연못 지역에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작은 연못에 뜰채를 집어넣길 반복했다. ‘이번에는 어떤 곤충이 나올까’ 반짝거리는 아이들 호기심을 채워주듯 아이들이 건져 올린 뜰채에는 물방개, 장구아비가 몸부림쳤다. 아이들 눈은 바빠졌다. 연못 앞에 마련된 책자를 살피며 자신의 잡은 곤충의 생김새와 특징을 꼼꼼히 살폈다.
‘새들도 귀가 있습니다. 조용히 해주세요.’
연못 지역에서 나와 남쪽 길을 따라가자 초록색 나무집 ‘더벌트 하이드’가 나왔다. 삐걱거리는 나무 대문을 밀고 들어가자 방문객이 숨죽인 채 호수로 모여든 새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 옆에 조용히 앉아 방문객들이 시선이 향한 곳으로 쳐다봤다.
물닭 한 마리가 둥지를 짓기 위해 갈대 줄기 하나를 입에 물고 뭍으로 향했다.
놀라웠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새들의 일상을 직접 관찰할 수 있다니’ 마음의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갈까 봐 입을 굳게 다물며 물닭을 지켜봤다.
남쪽 길 끝은 3층 높이의 공작새 탑이 있었다. 나무 계단을 타고 3층에 이르자 노부부가 직접 가져온 따뜻한 차를 마시며 호수를 유영하는 백조의 몸짓을 지켜보고 있었다. 방문객을, 새들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인간과 동물은 각자의 영역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누렸다.
-우와, 이걸 눈으로 볼 수 있다고?
탄성이 절로 나왔던 곳은 공작새 탑 옆 ‘갈색제비둥지’였다. 흙을 쌓아 동굴처럼 만든 곳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갈색 제비가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을 실시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런던습지센터는 리처드 브룩 씨의 말대로 방문객인 내게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줬다.
리처드 브룩 씨는 자연보호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자연을 오감으로 느껴야 한다 내게 말했다. 생물들의 서식지를 방해하지 않은 선에서 방문객들은 귀로 새소리를 듣고, 눈으로 새를 관찰하며, 온몸으로 바람을 마음껏 맞는다. 방문객들이 런던습지센터에서 쌓은 경험과 추억들은 이들이 잠재적인 자원봉사자로 만드는 자양분이 된다.
런던 사람들에게 런던습지센터는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자연을 오롯이 느끼고 싶은 곳, 다시 발걸음 하고 싶은 곳, 조용한 휴식공간이 돼 주고 있었다.
런던습지센터가 조성된 것도 사람들의 자발적인 마음과 기부금 덕분이었다. 이 기조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WWT가 운영하는 9개 습지는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 런던습지센터도 마찬가지다. 습지 한쪽에 조성된 수백여 채의 고급주택단지 임대수입과 개인·가족·종신회원의 회비, 센터 입장료, 시민의 기부금으로 유지된다. 센터 직원들은 대부분 무보수 자원봉사자들이다. 퇴직자, 학생, 직장인 등 다양한 연령과 직업을 가진 런던 시민 200명이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런던습지센터를 위해 봉사한다.
-습지가 오염물질을 걸러주고, 자연재해를 막으며 많은 생명체에게 서식지가 된다는 사실은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어요. 어릴 적부터 자연과 친숙해져야 자연의 소중함을 알고 환경을 보호하게 되지요.
오감으로 자연을 느끼는 것,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공간만 있어도 사람들은 자연의 소중함을 절로 깨달았다. '야생동물과 사람에게서 습지를 보존하는 것' WWT의 구호는 혼자 떠드는 외침이 아닌 함께 실천하는 행동이었다.
-부럽다. 부러워. 우리 동네 화포천습지가 이런 공간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움을 가득 담은 눈으로 런던습지센터를 다시 한번 쳐다보고 숙소로 발길을 옮겼다. 방문객센터에서 구매한 홍학 인형을 옆구리에 끼며 ‘오늘을 잊지 말자’고 중얼거렸다.
런던습지센터 입구
방문객 센터로 향하는 길
방문객 센터는 온통 초록빛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런던습지센터 생물다양성 담당 리처드브룩씨가 런던습지센터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귀여운 아이가 연못에 뜰채를 집어 넣으며 곤충을 잡고 있다.
어린아이가 아빠와 함께 곤충을 잡고 있다.
초록색 나무집 '더벌트 하이든'에서 방문객이 새들을 관찰하고 있다.
더벌트 하이든에서 바라본 습지센터의 풍경
공작새 탑에서 방문객들이 편안하게 새들을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공작새 탑에서 바라본 평화로운 습지센터의 풍경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방문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공작새 탑 앞에 백조 두 마리가 물 위에서 노닐고 있다.
갈색제비 둥지를 실시간 영상으로 볼 수 있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다양한 제비 종류에 대해 설명돼 있다.
아이들에게 습지센터 곳곳이 즐거운 놀이터다.
습지센터는 일부러 물웅덩이를 만들어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