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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EAful Dec 23. 2021

13. 더 나쁜 것

빨간머리 앤 홍차 인문학 13

다음 주 : Sunday-school picnic.


집으로 돌아오기로 한 약속 시간도 30분이나 늦었는데 앤은 매튜 아저씨와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들어왔다. 만약 마릴라가 이제 그만 들어오라고 부르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더 길어졌을 것이다. 앤은 반성하는 기색도 없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There’s going to be a Sunday-school picnic next week—in Mr. Harmon Andrews’ field, right near the Lake of Shining Waters.”


퍼프소매들 틈에서 지루했던 주일학교였는데 소풍을 간다고 하니 앤의 마음은 온통 ‘next week’로 가득하다. 게다가 아이스크림이라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이스크림의 맛을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전에 걱정이 몰려왔다. 혼자 퍼프소매 옷을 입고 가지 않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모두 가지고 온다는 피크닉 바구니를 갖고 가지 못하면 너무 창피할 것 같았다. 


“I’ll bake you a basket.”


앤의 걱정은 아주 잠시였다. 마릴라 아주머니의 든든하고 달콤한 한 마디에 앤의 걱정은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아내렸다.



아이스크림


어린 시절, 선풍기 바람 앞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전광석화처럼 흘러내렸다. 아이스크림이 줄어드는 것도 아쉽고 녹아내리는 것도 아쉬운 이중고에 시달렸지만 행복감은 두 배 이상이었다. 앤은 아이스크림을 받아 든 적도 없으니 얼마나 궁금할까?


앤이 기대하고 있는 아이스크림은 약 2,500년 전에 고대 페르시아에서 등장했다. 초기의 아이스크림은 잘게 간 얼음에 토핑과 과일로 맛을 내어 달게 즐기는 것이었다.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기원전 356년~기원전 323년)은 눈과 꿀과 과즙으로 맛을 낸 얼음을 즐겼다.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것은 그리스와 로마 제국으로 이어졌다. 로마의 황제 네로 클라우디우스(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 37~68년)는 노예들이 산에서 가져온 눈에 과일과 주스를 첨가하여 먹었다. 로마의 멸망 이후에는 유럽이 암흑기를 벗어난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년)가 쿠빌라이 칸의 궁정에서 경험한 아이스크림 만드는 법을 이탈리아로 가져왔다. 아이스크림보다는 셔벗(sherbet)에 가까운 방법이다. 역사가들은 이 조리법이 16세기경에 아이스크림으로 발전했다고도 하고, 마르코 폴로가 전했다는 것은 전혀 신빙성 없는 이야기라고도 한다.


이탈리아의 조리법은 1553년에 메디치 가의 캐서린(Catherine de Medici, 1519~1589년)이 앙리 2세(Henry II, 1519~1559년)와 결혼하면서 프랑스에 전해진다. 1세기가 지난 1660년대가 되어서야 일반인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1686년에 개점한 파리 최초의 카페 프로코페(Café Il Procope)는 우유, 크림, 버터, 달걀을 혼합한 레시피를 선보였다. 영국은 17세기에 찰스 1세(Charles I, 1600~1649년)의 식탁에 크림 아이스(Cream Ice)가 정기적으로 올랐다. 찰스 1세는 아이스크림 비법을 다른 사람에게 비밀로 하기 위해 요리사에게 500파운드의 연봉을 제안했다고 한다. 찰스 2세(Charles II, 1630~1685년)는 1671년에 윈저 성에서 열린 성 조지 축일(St. George's Day) 연회에서 아이스크림을 제공했는데, 왕의 식탁에 앉은 손님들에게만 한 접시의 아이스크림을 맛보도록 했다.



신대륙으로 건너간 아이스크림은 그곳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1년 동안 아이스크림 구매 비용으로 약 200달러를 썼다고 하며, 181년에 백악관에서 열린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1809~1817년 재임) 대통령의 연회에서 돌리 매디슨(Dolley Madison)은 훌륭한 딸기 아이스크림을 대접했다. 엘리트들이 즐기는 희귀하고 이국적인 디저트였던 아이스크림은 미국에서 대중화의 길이 열린다. 1851년에 볼티모어의 우유 판매상인 제이콥 푸셀(Jacob Fussell)에 의해 대량생산의 길이 열리면서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한다.



기대와 실망 : I think


앤의 시간은 소풍 이야기, 소풍 생각, 소풍 꿈으로 가득 찼다. 오직 다음 주 수요일을 위해 살고 있는 것 같은 앤은 혹시라도 소풍을 가는 게 자신만의 상상일까 봐 겁이 났다고 마릴라에게 털어놨다. 마릴라는 온 마음을 다 쏟는 앤에게 앞으로 살면서 실망할 일이 많을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I think it would be worse to expect nothing than to be disappointed.”


마릴라의 걱정과는 달리 앤에게 실망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기대는 그 자체로 너무나 즐거운 일이며,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더 나쁜 일이었다. 간혹 ‘기대가 너무 컸나 봐’라고 실망의 이유를 댈 때가 있다. 앤이라면 비록 실망했더라도 ‘기대가 컸던 만큼 즐거움도 많았어’라고 말할 것 같다. 과연 앤에게 아이스크림의 경험은 기대와 실망 중 무엇의 비중이 크게 될까?



원문 참조 : www.gutenber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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