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별

단편 소설 ㅣ 강아름

by 강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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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흑 흐느끼는 소리에 일어나보니, 엄마가 먼저 일어나 드라마를 보고 있다. 또 주인공의 엄마나 아빠가 죽었나 보다. 테이블 위에 있는 갑 티슈 3장을 뽑아서 주며, 옆에 있는 전자시계를 보니 벌써 10시이다. 오후 내내 집이 조용해야 공부에 집중할 수 있으므로, 적어도 10시엔 청소를 시작해야 한다. 엄마와 나는 집에만 있지만, 아빠는 주로 밖에서 시간을 보낸다. 새벽같이 나가서 돌아다니다 저녁 6시 정각만 되면 귀신같이 와서 직접 요리를 해준 후 같이 먹는다. 아빠가 나가 있는 동안 엄마와 나에겐 지켜야 할 단 한 가지 규칙이 있다. 매일 집을 원래 상태로 깔끔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내가 오기 전부터 있었던 절대 규칙이라, 청소는 엄마 혼자서도 잘하지만, 나도 딱히 할 게 없어 설거지나 분리수거 정도는 도와주곤 한다.


「엄마, 벌써 10시야.」


엄마가 무한동력처럼 흐르던 눈물을 티슈로 막아내다가, 10시라는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란다. 죽은 시체가 살아나듯 번쩍 일어나더니 충전 중인 청소기를 뽑아 든다. 나도 침대에서 나와 부엌으로 가서 어제 먹은 저녁을 닦아 낸다. 오랜만에 먹은 삼겹살의 허연 기름이 그릇 곳곳에 발려있어 난도가 꽤 높은 날이다. 먼저 새 수세미를 3개 꺼낸다. 수세미의 거친 부분에 퐁퐁을 짜서 1차로 닦아내고, 어느 정도 기름이 씻기면 부드러운 부분에 퐁퐁을 짜서 2차로 닦아낸다. 뽀득뽀득하는 소리가 들리면 물로 씻어내고, 그릇을 식기 건조대에 올린다. 그리고, 수세미를 버린다. 기름 묻은 수세미로 다른 그릇을 닦으면, 아무리 수세미를 빨아도 찝찝한 미끈거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세미는 그릇 수에 맞게 필요하다. 수세미가 부족하면 그릇을 버릴 수밖에 없다. 그만큼 삼겹살을 먹은 다음 날의 설거지란 위험한 것이다.


베란다로 가서 분리수거 통을 들고나온다. 매일 하다 보니, 할 게 별로 없다. 쓰레기봉투까지 들고 나가려고 하다 거실을 보니 엄마가 땀을 흘리며 청소기를 돌리고 있다. 잠시 쓰레기들을 내려놓고 거실에 있는 에어컨을 틀어 주었다. 가까이서 보니 목덜미부터 등까지 축축하게 젖어 있다. 리모컨을 내려놓고 화장실로 갔다. 수건 하나를 꺼내서 거실로 돌아오니, 엄마가 윗옷을 벗고 있다. 끈적하게 젖은 옷을 벗으려고 소매 안으로 팔을 넣고 들어 올리는 순간,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으로 흘러들어온 뜨거운 햇빛이 엄마를 비춘다. 엄마의 얼굴선과 목덜미, 봉긋한 가슴이 뚜렷해진다. 홀린 듯이 엄마에게 다가갔다.


「가만히 있어봐. 도와줄게.」


젖은 옷을 벗으려 낑낑거리는 엄마의 팔을 잡고 말했다. 옷의 아랫부분을 잡아 올리면서 내 손이 엄마의 겨드랑이를 스친다. 아무 말 없이 수건으로 엄마의 땀을 닦는다. 목덜미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날갯죽지로 내려오며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수건 위에 얹어진 손가락 하나하나로 온 신경이 이동했다. 등을 다 닦고 돌라고 손짓하니, 엄마가 저항 없이 돌아앉는다. 쇄골에 고인 땀을 살며시 쓰다듬다가 브래지어도 하지 않은 가슴 위로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마침내 나의 손이 부풀어 오른 엄마의 젖무덤을 지나 젖꼭지에 다다른 순간, 엄마의 신음에 놀라 손을 뗐다. 그제야 나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는 생각에 후다닥 일어났다. 마치 범죄 현장을 떠나듯, 뻔뻔하고 소란스럽게 쓰레기를 들고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공부에 집중이 안 된다. 거실 창에 붙어있는 사진이 눈앞에 계속 아른거린다. 창문 밖 철제난간에 목이 매달린 남자와 여자가 잔뜩 밀착된 채 서로의 입술을 빨아들이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그는 적어도 30대 후반은 되어 보였지만, 마치 엄마의 젖을 빠는 아기처럼 타오르는 욕정에 젖어 한껏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사진의 아래쪽에는 날짜라고 생각되는 숫자가 표기되어 있는데, 이 집의 수많은 사진 가운데 숫자가 적힌 사진은 이 사진이 유일하다. <94 12 24>, 크리스마스이브라는 특징 외에는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이날이 촬영한 날짜라면, 아빠가 거의 내 나이쯤이거나 나보다 어렸을 때 찍은 사진일 것이다. 사진으로 보아도 정신이 나갈 것 같은데, 그 어린 나이에 두 눈으로 그들을 직접 목격한 아빠는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그걸 사진으로 남기고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두 남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아빠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는 것도 같다. 이런저런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오늘 오후 공부는 완전히 망쳐버렸다.


「하, 죽고 싶다.」


생각하기 싫다. 그냥 주어진 일상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고 싶다. 그러나, 다 나 때문이다. 다 나 때문이다. 오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오른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강렬하게 키스하는 두 남녀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이 집에 있는 수많은 사진 가운데 가장 뇌쇄적인 사진이니까. 이 집에 사진이 많은 이유는, 아빠가 온종일 밖에서 여기저기로 쏘다니며 사진을 찍고 현상해서 집으로 가져오기 때문이다. 아빠 말로는 자기가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를 여러 차례 열었고 사람들도 많이 왔다는데, 믿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빠의 사진엔 두 가지 끔찍한 공통점이 있어서 사람들이 좋아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빠의 사진 속에 등장한 사람은 항상 죽어가고 있고, 제각기 미쳐있다. 안방 침대 위에는 시체처럼 풀린 동공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사람이 있다. 팔은 허공에 휘젓는 중에 찍혀 흔들린 것 같다. 마비가 온 것처럼 제멋대로 구부러진 손가락은 마치 동아줄이라도 내려온 것처럼 간절하게 텅 빈 하늘을 쥐고 있다. 방문에는 깨진 머리 사이로 뇌가 조금 흘러나온 여자를 허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있다. 남자의 손에 묻은 피가 여자의 가슴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망치도 피를 흘리고 있다. 거실 창가에 있는 두 남녀가 아름다워 보일 지경이다. 이외에도 각종 테이블과 벽에 사진이 놓여있는데, 하나같이 음침하고 불쾌하다.


그래서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그러니까 한 10살쯤 되었을 땐, 집안 곳곳에 놓인 사진 때문에 악몽을 거의 매일 꿨다. 전개가 항상 비슷했기 때문에,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왠지 모를 익숙한 공간. 갑자기 튀어나온 팔 하나가 내 발목을 잡아서 깜짝 놀라고, 다리를 흔들어 떨치고 보면, 사진 속에 있던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무언가를 간절히 말하고 있었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두세 달 정도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다 보니,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이젠 두려움보단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꼭 듣고 싶었다. 그 후로 종종 악몽을 꿨지만, 귀를 기울여도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진동이 귓속으로 들어와 고막에 닿는 느낌이 들긴 했으므로 무언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나는 더욱더 그들의 말뜻을 알아내는 데 집착했다. 반복되는 꿈에는, 그것이 악몽일지라도, <나를 천국의 문으로 데려다 줄 신의 계시>가 숨어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유튜브 쇼츠에서 청각장애인이 입 모양을 읽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내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독순술이라는 기술이었다. 이거다 싶어, 수많은 유튜브 영상을 음 소거 상태로 보며 입 모양을 분석했다. 오후에 해야 할 공부는 미뤄둔 채, 매일 최소 5시간씩 연습을 하다 보니, 웬만한 예능을 음 소거 상태로 즐길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독순술을 마스터했다고 생각한 뒤로 악몽을 꾸기만을 기다렸지만, 나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진 속 사람들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엔 입 모양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에 대한 실망감에 허탈하여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이후 실패를 분석하면서,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왜 악몽을 꾸던 초반부터 독순술을 연습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내가 조금 더 열심히 해서 독순술을 일찍 마스터했다면 어땠을까…>, 분석하면 할수록 나의 선택에 대한 안타까움은 나 자체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내가 그렇지 뭐, 이번엔 정말 좋은 기회였는데 또 날려버렸어, 난 잘하는 게 없어, 죽고 싶다…>, 나는 나를 학대하기 시작했고, 마치 다스 베이더가 포스로 내 가슴을 쥐어짜는 것 같은 갑갑함을 느꼈다. 가슴의 압박감은 기도를 타고 올라와 머리를 쥐어짰고, 조금씩 주변이 깜깜해졌다. 다스 베이더는 어둠 속에서 나의 공포, 분노, 증오, 슬픔을 원천으로 갈수록 강해졌다. 난 어둠에 잠식당했고, 점점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다. 죽고 싶었지만, 정말 죽을 것 같은 순간이 되니 너무 살고 싶어졌다. 사진 속 사람들, 악몽 속에 등장했던 그들의 눈빛을 떠올렸다. 그들의 두 눈에는 두려움과 동시에 희망이 서려 있었다. 처음으로 그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고통스러웠다. 내가 그들을 죽인 것만 같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 순간, 어둠이 걷히고 조금씩 거실의 형태가 나타났다. 숨을 고르고, 고개를 들었다. 거실 창에 붙은 사진의 등 뒤로 달빛이 내비쳤다.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다. 노오란 보름달이 유난히 밝았다. 모든 별빛과 도시의 불빛이 고개조차 감히 들지 못했다. 상상 속에서나 볼 수 있던 ‘슈퍼문’이었다. 황홀감을 느끼고 있는데, 불현듯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가 없는 세상은 너를 끊임없이 배신하고 괴롭게 할 거야. 그러니까 아빠가 정해준 삶을 살면 돼. 이 집은 너의 꿈이야. 이제는 어떤 것도 무서워할 필요 없어.」


정말 바깥세상은 고통뿐일까. 난 아무 걱정 없이 이 꿈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혼란스러웠다. 나의 하찮은 뇌로는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내 뒤에 놓인 과거는 참담한 버려짐의 연속이었고, 앞에 펼쳐져 있는 유일한 미래는 너무나 완벽하게 통제된 일상뿐이었다. 다른 선택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난 다시는 이 집에서 감히 도전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 자체를 하지 않았다. 오전엔 청소하고, 오후엔 공부하며, 맛있는 저녁 시간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오늘도 벌써 저녁 6시가 다가온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