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영유아는 때에 맞추어(2세, 4세, 5세) 구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아이들의 규칙적인 치과 검진으로 충치를 예방할 수 있고, 제때 치료도 받을 수 있는 참 좋은 시스템이다. 비용도 무료이다. 그러나 나는 예민한 아들, 동동이의 구강 검진을 받으러 갈 용기가 쉽사리 나지 않았다. 낯선 곳을 싫어하는 동동이가 처음 치과에 가서 침대에 누워 입을 벌리고 검진을 무사히 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일단 충치가 생겼다면 최대한 빨리 치료를 해주어야 한다는 상식과 이를 닦아줄 때마다 뭔가 까만 충치가 보이는 것 같은 부정확한 나의 진단 사이에서 한없이 갈등했다.
치열한 갈등 끝에 어린이 치과를 예약했고,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남편과 함께 갔다. 남편의 손을 잡고 진료실에 들어간 동동이는 조금 울기는 했지만, 노련한 의사 선생님의 빠른 진단으로 금방 진료실을 나왔다 오른쪽 아랫니 하나 충치가 있고, 왼쪽 아랫니 하나가 충치가 생길 가능성이 보인다고 치료가 필요하다는 결과였다. 밤에 분유를 먹다가 잠드는 일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우식 된 치아가 많을 것 같았는데 그 정도 성적이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며칠 지나, 이 정도의 울음이라면 나 혼자 도 감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겁도 없이 화요일 오후 4시로 충치 치료를 예약했다. 그리고 씩씩하게, 겁도 없이, 나 홀로 아이를 치과에 데리고 갔다.
병원에서는 먼저 엑스레이로 치아를 촬영하고 정확한 결과에 따라 치료 계획을 세운다고 했다. 가운을 입은 내가 동동이를 안고 촬영실에 들어갔다. 상황은 그때부터 안 좋아졌다. 의자에 앉아서부터 울음을 터뜨린 동동이는 몸부림치며 나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아무리 꽉 잡고 있어도 내가 입고 있던 가운이 미끄러워서인지 아이가 여러 번 의자 아래로 빠져나갔다. 촬영을 해야 하는데, 도무지 할 수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한 번만 더 시도를 해보고, 이렇게 '비협조적'이면 집에 가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별 도움이 안 되는지, 촬영실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래서 결국 안내 데스크에서 전화를 주로 받는 간호사, 치과 치료를 돕는 간호사, 그리고 의사 선생님 이렇게 치과의 모든 인력이 동원되어 간호사 한 명은 아이를 붙잡고, 의사 선생님이 촬영 버튼을 누르라고 소리쳐서 사인을 주시면 바깥에서 다른 간호사가 버튼을 눌렀다. 20분 만에 간신히 촬영에 성공할 수 있었다.
동동이의 울음소리와 의사 선생님의 긴박한 목소리 덕분에 다른 어린이들은 이미 너무나 얌전하게 긴장된 모습으로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병원 안에 꾸며진 놀이방에서 여유 있게 놀지 않았다. 어느 엄마는 자신의 딸이 동동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너무 겁을 내니 잠시 바깥에 데리고 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동동이는 병원 안의 분위기를 공포스럽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참, 동동이 촬영 시간 동안 병원 전화벨은 여러 번 울렸지만 아무도 받지 못했다..... 나라도 받을까 생각하다가 말았다...
나는 치과에서도 죄인 된 심정이었다. '진료 25년 만에 이런 아이는 처음이에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퉁명스러운 말씀 앞에 속상하기도 했고, 병원 영업에 지장을 준 것 같아서 죄송했다. 검사만 받는 것도 이 정도인데 다음 충치치료 때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앞섰다. '동동이 충치는 총 2개고요, 각각 치료하고 씌우고, 불소도포까지 해서 3회씩, 총 6회 치료받으면 됩니다.'라고 간호사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다. 6회라니... 즉 여섯 번을 이런 난리를 겪어야 한다는 것인가? 정말 자신이 없었다. 남편과 함께 갈 수 있는 토요일 진료 예약을 하고 싶었지만, 동동이 치료에는 세 명의 인력이 동원될 예정이라, 토요일에는 한 명이 그나마 출근을 안 하기 때문에 안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평일 진료로 날짜를 잡고 터덜터덜 병원을 나왔다.
치료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 택시를 탔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시는, 딱 봐도 친정아버지뻘 되는 기사님이셨다. 나와 아이의 지친 표정인 것을 보시더니 '아이고, 아이 엄마가 힘들겠네. 내가 택시를 좀 더 문에 가까이 댈 걸 그랬지요?' 하시는 것이었다. 치과에서 나오는 지친 모자의 상황을 보아하니, 병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충 다 알 것 같다는 뉘앙스의 따뜻한 음성이었다. 나는 간신히 '네..'라고 대답만 했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은 25년 만에 처음 본다는 이 예민하고 비협조적인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그렇게까지 우리 아들이 이상하지는 않은데, 겁이 많이 났나 보네..'라고 생각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너무 많이 운 아들은 토요일에 진료를 예약해 줄 수 없다고 단칼에 거절하시니 또 서운했다. 그러면서도 '그래.. 그럴 수 있지....' 하며 담담히 받아들이고, 치과치료 계획이라도 세울 수 있음에 감사하며 애써 마음을 단단히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할아버지 기사님의 따뜻한 위로가 담긴 몇 마디에 그만 꽉 닫고 있던 마음의 빗장이 후드드 풀리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렇게 조용한 택시 안에서 울다 지쳐 잠든 동동이를 안고 나도 조금 울면서 집으로 왔다. 운전을 잘해주셔서 편안한 승차감을 누리며 집에 도착할 즈음 내 마음에도 안정이 찾아왔다. 택시 기사님께 참 감사했다.
이미 모든진이 빠져 버린 그날 저녁은 밥을 할 수 없어서 남편이 근처 맛집에서 족발과 메밀비빔면을 포장해왔다. 온 가족과 잘 익어서 부드럽고 간이 맞는 족발을 새우젓에 찍어서, 마늘과 청양고추 넣고, 깻잎 넣고, 정성껏 상추쌈을 하여서 서로의 입에 넣어주면서 적극적으로 저녁을 먹고 났더니 조금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역시 힘들 때는 뭐라도 잘 먹어야 한다. 이제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여섯 번의 치료를 잘 데리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치과 치료를 받으며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동동이와 그의 엄마가 될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나는 엄마니까 아이의 평생 쓸 치아를 잘 관리해야 하니까 생각하면서 정말 매일매일을 기도하며 다음 주 치과치료를 기다렸다.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주변의 아는 친구, 교회 친구, 교회 다니는 선배 언니에게 '우리 동동이 치과치료받아야 하는데, 마음속으로 기도 좀 해주세요.' 하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 우리 아들은 치과치료도 더욱 유난하게 받는 아이이다. 그렇지만 결국 아이는 치과치료를 잘 건져냈다. 갈 때마다 울음소리가 작아졌다. 역시 다른 아이들을 저절로 경건한 자세로 만드는 커다란 울음소리이긴 했지만 처음보다는 그다음이, 그다음보다는 그 그다음이 훨씬 안정적이고 약한 울음소리를 냈다. 그렇게 조금씩 동동이도 자라고, 나도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을 잘 견뎌내는 엄마가 되어갔다. 치과치료가 아프다는 것을 안 동동이는 요즘 양치질에 얼마나 열심인지 모른다. 참 감사한 일이다. 무엇이든 처음은 긴장되고, 떨리고, 불안하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한 번 더 시도하고, 한 번 더 참아내면 그다음에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일을 마무리하는 대견한 내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동동이도 나도 그렇게 서로를 대견해하며 자라 갈 것이다. 열심히 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