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도전을 언제나 응원해...
얼마 전, 다홍이가 수학학원을 옮기고 싶다고 했다. 지금 아이는 원장님이 직접 강의하시는 소수 정예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원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3년 정도 다니다 보니, 원장님과 너무 친해지게 되어 학원생활이 그저 재미있기만 하다고 했다. 재미있게 학원에 가는 것 까지는 좋은데, 지나치다 보니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부작용을 겪는다고 했다. 결국 과제를 제대로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다홍이의 수학학원을 옮기고자 하는 이유였다.
게다가 학교에서 본 수학 수행평가에서 다른 친구들보다 현저히 낮은 점수를 받아 충격이었나 보다. 딸은 이미 받은 점수는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도 이런 수학 점수를 받으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이제 자신도 조금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과제도 더 열심히 하여 수학 공부에 시간 투자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좀 더 규모 있고, 철저한 관리를 하는 학원으로 보내 달라고 하기에 나는 또 열심을 내어 수학학원을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여러 군데 직접 전화 상담도 하며 학원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결국은 딸이 자신이 가고 싶은 학원을 찾았다고, 나에게는 'OO 수학학원'에 가고 싶으니 레벨테스트 날짜를 잡아 달라고 했다. 착한 엄마인 나는 그녀의 요청에 따라 수학학원에 전화를 걸어 입학시험 날짜를 잡았다.
시험날이 되었다. 학원에 혼자 버스를 타고 찾아간 딸은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시험을 다 보고, 나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생각이 나긴 나는데, 많이 까먹은 것 같아. 잘 못 푼 것도 있지만, 어쨌든 열심히 끝까지는 다 풀었어."
'생각이 나긴 하는데, 잘 못 푼 문제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딸의 수학 실력에 구멍이 숭숭 나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하긴, 그동안 집에서는 간신히 학원 숙제만 해가고, 그마저도 잘 못해서 학원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던 다홍이였다. 그녀의 지난달을 돌아보면, 레벨테스트 결과가 대충 예상이 되었다. 워낙 들어가기 어려운 학원이기에 다홍이가 입학을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2시간 후에 학원 상담실에서 전화가 왔다. '다홍이의 현재 수학 실력으로는 그 학원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고, 다음 기회에 다시 학원을 찾아달라'는 미안함과 단호함이 담긴 상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슴이 쿵쿵 뛰고, 귀까지 빨개지면서 당혹스러움을 감출 길이 없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학원에 다녀온 다홍이가 나를 보자마자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그 학원 진짜 커. 무슨 건물 층 전체가 수학학원이야. 나는 백화점인 줄 알았어. "
다홍이는 그 학원에 직접 가보더니, 지금 다니는 학원보다는 더 규모도 크고, 활발하고, 열정이 느껴지는 분위기가 꽤 괜찮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다홍이가 그 학원에 지금의 실력으로는 입학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야 했는데,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상담실에서 전화는 왔어? 뭐라고 그래?"
"응........ 아니.... 문제가 많이 어려웠어?"
"아니,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는데, 생각이 잘 안 나더라고. 그래도 끝까지 풀기는 했는데.....?"
"응. 학원 상담실장님이, 다홍이가 이번에는 그 학원에 들어가기 조금 어려울 것이라고 하시는데......... 엄마가 다른 학원을 알아볼까?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다홍이는 예상했다는 듯이, 그리고 실망했다는 듯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음... 나 그러면 1학년 1학기 문제집을 새로 사서, EBS 강의를 한 번 더 들으면서 1학기 내용 정리를 다시 할게. 그리고 5월 마지막 날에 한 번 더 시험을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내가 준비를 너무 안 하고 시험을 본 것 같아서 아쉬워요. 내가 실수를 제일 많이 한 부분이 '문자와 식'이니까..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봐도 될 것 같고."
나는 다홍이의 차분한 대처 방안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다홍이는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잘 구별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준비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생긴 결과라는 것도 쿨하게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EBS 강의를 다시 듣고 정리를 하겠다는 아이의 반응에 놀라다 못해 기쁘기까지 했다. 속상했던 마음이 있었는데, 아이의 당찬 태도에 안심이 되었다. 한 번 더 도전하겠다는 아이가 예뻐서 당장 신용카드를 지갑에서 꺼내 내밀었다.
"이걸로 책 사고, 맛있는 거 사 먹어!!!! 너 먹고 싶은 거로!!! 엄마랑 아빠는 너를 언제나 응원해!!!!! 다시 도전해 보겠다고 하니, 기쁘다 정말."
오늘 아이는 지하철역에 있는 교보문고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문제집을 사 왔다. 그리고 백화점 1층에 있는 커피 전문점에서 딸기 스무디를 사서 마시고, 지하층의 푸드코트에서 저녁까지 야무지게 사 먹고 돌아왔다. 난 '엄마 카드'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돌아온 다홍이가 참 귀엽고 고마웠다.
아이가 과연 저 두꺼운 EBS 문제집을 다 풀 수는 있을지, 열흘 후의 2차 레벨테스트에서는 학원 입학 허가를 받을지, 아닐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이런 자세와 태도를 가진 아이라면 앞으로 희망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다홍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발견하고, 힘들지만 노력하고, 어려움이 있을 때 속상하지만 견뎌내는 건강한 정신력을 가지기를 바란다. 수학 좀 못하면 어떤가, 실수하면 뭐 그게 대수인가? 어떤 분야의 일이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며 개선해 나가려는 마음과 실행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향상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레벨테스트 재수 준비를 하는 우리 다홍이처럼 나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할 줄 아는 체력과 정신력을 갈고 닦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