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배우라니...

by 김하예라

그동안 나의 딸, 다홍이의 꿈은 리듬체조 선수, 발레리나, 유튜브 크리에이터, 걸 그룹, 음향 기사, 프로듀서로 매해 바뀌어왔다. 손연재 언니와 같은 리듬체조 선수가 되고 싶다며 청소년 수련관에서 리듬체조를 열심히 배웠고, 발레리나일 때는 발레학원에 몇 년간 다녔다.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꿈일 때에는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클레이 놀이하는 모습, 장난감 가지고 노는 모습, 친구와 함께 놀이하는 모습을 담아 영상을 올렸다. 걸그룹 멤버가 되고 싶을 때에는 학교 친구 다섯이서 댄스 동아리를 만들어서 걸그룹의 춤을 제법 비슷하게 따라 추고, 학교 행사나 지자체 행사에 출연을 하기도 했다. 음향 기사와 프로듀서가 되고 싶어서 중학교 방송반에 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갔다. 딸은 그렇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정확하게 알았고, 그것을 나에게 시켜달라(돈을 내 달라)고 했다. 나는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녀가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은 열심히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었다. 그것이 나의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녀의 꿈이 또 바뀌더니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무려.... 배우였다.....

지난 여름방학이 지나고 얼마 지나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내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할 말이 있다는 의미였다.

"다홍아, 왜? 무슨 할 말 있어?"

"음... 엄마나 아빠 내일 오후에 언제쯤 전화를 받을 수 있어?"

"왜? 담임선생님이 엄마한테 전화하시겠데?"

"아니... 엔터테인먼트 회사 매니저님이 전화하신데..."

이건 또 무슨 말인지.

"그.. 연예 기획사 말하는 거야? 그런데 거기서 왜???"

당황스러웠다. 나는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남편을 불러 함께 이야기를 들었다.

"나 배우가 되려고. 어느 날 인스타 DM으로 어느 기획사에서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어. 그래서 내가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별로 크지 않아서 나를 서포트 해주기 어려울 것 같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냥 좀 더 큰 기획사에 온라인으로 지원을 했지. 3월에 찍은 증명사진 파일 놀리고, 지원서 썼어. 1차 합격했다고 해서 그래서 지난주 토요일에 카메라와 연기로 2차 오디션을 보고 왔는데 합격을 했어. 그래서 매니저님이 엄마랑 통화를 해야 한대."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아이의 말에 나와 남편은 어리둥절하여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인스타 DM 캐스팅부터 2차 오디션까지, 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또 그 내면의 불안한 열 살짜리 어린아이가 고개를 들면서 '이건 또 무슨 일이지?'하며 놀라느라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보다 이성을 좀 더 빨리 찾은 남편이 일단 합격한 것은 축하한다면서 어떻게 된 것인지 좀 더 자세하게 알려달라고 했다.

다홍이는 사실 올해부터는 배우가 되기로 꿈을 정했다고 한다. 전에는 아이돌 한다고 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아이돌은 연습생을 생활을 오래 해야 하고, 데뷔하기도 굉장히 어렵다고 했다. 자신은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싶고, 공부도 해야 하는데, 아이돌이 되기 위해서는 댄스와 노래에 시간을 많이 쏟아야 하고, 데뷔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도 굉장히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광고 촬영이나 단역부터 차근차근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알아보니 주말에 촬영이 있는 것으로 선택하면 되니까 평일에는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는 데에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면서 우리를 안심까지 시켰다. 자신은 얼마 전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를 연기한 박은빈 배우처럼 연기를 잘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 딸이 저렇게 딱 부러지는 변호사가 되면 참 좋겠다 생각했는데.. 역시나 동상이몽이었다...) 그러면서 혹시 자신이 유명한 배우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공부를 꾸준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단역 배우 생활이라도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이고, 다른 직업을 찾는 데에도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고 했다.

중학교 1학년짜리 딸아이의 사뭇 진지한 표정과 논리적인 말에 우리는 다시 한번 조용해졌다. 얼마나 많이 알아보고, 생각하고, 고민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다. 자신의 꿈에 대해서, 당사자만큼 오래 생각하고 고민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엄마도 아빠도 어떻게 보면 그저 제3자일 뿐. 자신의 꿈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주체는 바로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알고 있는 딸의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겁도 없이 카메라 테스트와 연기 오디션까지 혼자 다녀왔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내가 지적한 말이라곤 다 좋은데 앞으로는 그렇게 혼자서 오디션 가는 거 아니고, 꼭 보호자와 함께 가야 해라고 하는 것뿐이었다. 결국 다홍이 아빠와 연예 기획사 매니저가 만나서 설명을 듣고, 2년간 소속되어 활동하기로 하고 계약서를 쓰고 왔다. 그리고 지난달에는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자신의 담당 매니저 언니가 안내해 주고 있으며, 엄마, 아빠에 동동이까지 다 같이 스튜디오에 따라나서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혼자 가겠다고 했다. 지도 앱과 버스카드 한 장만 있으면 된다면서 다홍이는 우겨서 의상까지 챙겨들고 혼자 압구정동에 있는 스튜디오에 다녀왔다. 정말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혼자서 하고 있는 딸을 보면서 그저 나는 놀랄 뿐이었다. 촬영장에는 정말 절대로 혼자서 가면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이미 혼자서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고, 크고 작은 성공을 맞본 다홍이가 나에게 촬영장을 알려주기나 할지 모르겠다. 하여간 나와 남편은 그녀의 보호자, 법정대리인으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긴 해야 할 텐데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나는 솔직히 모르겠다. 아이가 정말 배우로서 끼가 있는지, 배역을 딸 수 있을는지, 안전한 것인지, 내가 어떻게 이 아이를 지켜줘야 할지 자신이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기도'라는 무기와 '하나님'이라는 든든한 백이 있기에 기도하면서 딸의 꿈을 지지해 주고자 한다. 또한 나보다 더욱 다홍이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려고 한다.

자, 딸의 앞길은 딸이 알아서 가면 되고, 나는 열흘 앞으로 다가온 브런치 북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고, 성실하게 100일 글쓰기를 하면 될 것 같다. 교수님과 상의하여 학술지에 게재할 논문을 조금씩 써 나가면 될 것 같다. 그래. 나는 '쓰는 사람'이니까. 설거지를 하고 있던 나에게 배우 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하던 날, 아이가 나에게 했던 이 말을 기억하면서 나는 나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야겠다.

"그때 오디션 보면서 부모님 직업 적는 칸이 있어서 내가 엄마는 '작가'라고 썼어. 그랬더니 옆에 있던 매니저 언니가 엄마 직업 정말 멋지다고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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