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발달의 기준?!

완벽한 엄마보다 건강한 엄마

by 김하예라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다섯 살 아들의 느린 발달이 나의 양육태도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을 것이며, 아들을 위한 좀 더 적극적인 치료를 받으라는 조언을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아들이 언어치료를 꾸준히 받아서 말도 곧잘 하고, 심지어 요즘 한글도 잘 읽는다고, 아직 쓰는 것은 어렵지만 그래도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손가락 힘이 그렇게 약해서 어떻게 하냐면서 학습지 선생님이라도 붙여서 쓰기 연습을 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나는 아들의 단점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들의 장점에 감탄하려고 노력하다고 하자, '발달의 기준'은 전문가들이 그냥 세워둔 것이 아니라면서, 또래 아이들에 비해 느린 점이 있는 것이 있다면 인정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단호하게 아이를 돌보라고 했다. 나처럼 마냥 긍정적인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주말 내내 나의 양육방식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반성해야 할 부분과 아이의 발달의 책임을 내가 어떻게 지면 되는 건지 생각해 보았다. 비록 나는 완벽한 엄마는 아닐지라도, 건강한 엄마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는 마냥 긍정적이지 않았다. 수없이 절망했고, 수없이 울었다. 밤새도록 고민했고, 글로 쓰고 생각하며 무너지는 마음을 다스렸다. 솔직히 말해서 이 세상에서 나만큼 내 아들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애쓰는 사람이 또 있을까. 나는 아이의 눈을 뜨고 나서부터 잠들기 전까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단어를 읽고, 무슨 반찬을 좋아하고, 간식은 무엇을 먹었으며, 잠잘 때 숨소리는 어떠한지, 아토피로 긁은 상처에 딱지가 앉았는지 아닌지, 심지어 똥의 색깔과 모양까지 세세히 숙지하고 있다. 일 년 전, 육 개월 전, 삼 개월 전, 한 달 전과 비교하여 내 아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누구보다 예민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렇게 모든 에너지와 눈물과 사랑을 다해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에게 조언이라면서 그녀가 했던 말들은 그 어떤 도움도 위로도 되지 않았다. 상대에 대해서 잘 모를 때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더 좋을뻔했다.

지인의 말처럼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정확한 잣대를 들이대며, 너는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이것이 부족하고, 저것도 부족하니 하나하나 공부시키고 가르치고 배우게 한다고 치자. 과연 그 아이는 행복할까? 엄마가 아이에게 부족한 점을 하나도 넘어가지 못하고, 선생님을 붙여서 일일이 가르쳐 준다고 아이가 기뻐하며 고마워할까? 글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도 감정을 가지고 있기에, 엄마가 자신을 어떠한 눈빛으로 바라보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부족한 자신을 바라보며 슬퍼하고, 불만족스럽게 바라보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발달 속도가 느리냐 빠르냐 보다, 아이가 가정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귀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받으며 사랑받으며 자랐느냐가 훨씬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아이는 이미 자신이 다니는 기관(유치원, 어린이집, 혹은 학교)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아이는 그때마다 속상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때로는 인내하면서 엄마가 자신을 데리러 오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두 팔 벌려 환하게 웃으며, 우리 아들 최고라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엄마에게 한달음에 달려갈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엄마, 오늘 피곤했어요.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엄마가 데리러 와줘서 고마워요. 반가워요. 잘했다고 칭찬해 주세요.'

나는 그런 아들을 꽉 껴안아 주고,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주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아이를 지켜봐 주고 사랑해 줄 것이다. 놀고 싶은 장난감으로 놀게 할 것이고, 흥미를 보이는 책을 읽게 할 것이고, 킥보드를 타고 싶다면 타게 할 것이다. 아들이 오늘은 피곤하니까 엄마에게 킥보드 좀 밀어달라고 요구하면 군말 없이 있는 힘껏 밀어줄 것이다. 도대체 네 나이가 몇 살인데 킥보드 하나 스스로 못 타는 것이냐면서, 그렇게 씩씩하게 크지 못해 나중에 뭐가 될 것이냐는 잔소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조금만 더 크면 엄마에게 킥보드를 밀어 달라는 요구 따위는 하지도 않고, 자전거 타고 휙휙 엄마 앞으로 지나갈 것이다. 엄마에게 킥보드 밀어달라고 징징거릴 때가 오히려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야말로 스쳐 지나가는 한때라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의 성장 속도를 가지고 있다. 잘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다. 앞에서 지인이 나에게 언급한 그 '괜히 세워놓은 것이 아닌 발달 기준'이라는 것은 이미 여러 가지 종류의 기준이 있으며 시기마다 업데이트되고 있다. 아이들마다 적절한 시기에 배워야 하는 것이 있다는 '적기 교육'의 '적기'에 대한 수많은 주장과 논문이 나오고, 책이 나오고 있다. 열 명의 아이가 있다면 그 열 명이 모두 각기 다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그들만의 적절한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려고 한다.

장미와 백합의 아름다움을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하듯, 옆집 아이와 내 아이를 비교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으므로 나는 오늘도 내 아이의 모습에 기뻐하고, 감탄할 예정이다. 하고 싶다는 것 실컷 하게 하고, 하기 싫다는데 굳이 하라고 끌어다 놓지 않을 것이다. 그저 주중에는 어린이집 갔다 오고, 토요일에는 놀러 다니고, 일요일에는 교회 유아부 다녀오면 아이는 할 일 다한 것이다. 그러니 엄마는 아이의 최선을 다한 멋진 수고에 물개 손뼉 쳐주고, 응원해 주고, 따스하게 꽉 끌어안아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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