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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Dec 17. 2016

[Book] 사축(社畜)으로 산다는 것.

<아, 보람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20160525 히노에이타로作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의 작가 히노 에이타로는 블로그를 통해 노동 환경에 대한 글을 게재하고 있는 일본인입니다. 본문에는 "우리나라(일본)는.... 외국 어느 나라와는 달리.... " 처럼, 일본의 특수한 상황으로 한정지어 이야기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그냥 한국의 어느 직장인이 썼다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만큼, 구절 구절마다 2016년 한국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88만원 세대. 문송합니다. 삼포세대. 오포세대.

"88만원 세대"조차 이미 수 년 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비교적 취업의 문이 좁은 문과 학생들이 자조적으로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를 외치고 있을 만큼 어려운 세상입니다. 기본적인 생활의 안정이 어렵다보니, 지난 세대에게는 인생의 당연한 단계로 여겨졌던 연애, 결혼, 출산, 내집마련, 인간관계 같은 것들조차 포기했다는 뜻의 "삼포세대" "오포세대" 같은 신조어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출처: 회의하는 회사원https://www.facebook.com/whoesawon


대학생들이 취업이 어려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한 편, 직장인들은 "이 지겨운 회사, 못해먹겠다"고 난리입니다. 본 책의 표지를 포함해 중간중간 삽입된 익살스러운 삽화를 그린 '그림왕 양치기'를 포함해서, '회의하는 회사원' 처럼 직장인들의 애환을 자조적, 풍자적으로 표현한 창작물들이 크게 유행하고 있지요.


이는 수요-공급의 논리에 비추어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일자리(수요)보다 구직자(공급)가 더 많다보니, 취업에 성공한 직장인들은 일이 힘들거나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하더라도 어쨋든 매일 아침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며 꾸역꾸역 출근을 합니다. 반대로 아직 일자리를 얻지 못한 구직자들은 서로 자신을 좀 사가라며, 일자리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고 본인의 적성과 흥미를 꺾고 꾸역꾸역 '떨이' '마감세일'을 하게 됩니다. 양 쪽 모두에게 슬픈 일입니다.


세상에, 직장인의 마음을 이렇게 기가막히게 담아낸 제목이라니!

저 역시 이름을 들으면 알 법한 대기업에 몸담고 있는 일개미입니다.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라는 유머러스한 제목과 표지에 사로잡혀 책을 보자마자 사들고 나왔습니다. "세상에, 직장인의 마음을 이렇게 기가막히게 한 문장으로 담아내다니! 큰 감동이나 깊이가 없어도 좋다! 무조건 사야겠다!"


아주 깊이있는 논의가 들어있지는 않지만, 2016년 직장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나름의 논리와 분석을 통해 정리를 해 놓은 책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들이지만, 막상 내 눈앞에 닥쳐 있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들을 꼬집어 말해줍니다. '그래 맞아, 그래 이러면 안되지' 하고 맞장구를 치다 보면 단숨에 책을 읽어내려갈 수 있습니다.


회사가 야근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도둑질이나 다름없다.
단호하게 말하는데, 회사가 야근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도둑질이나 다름없다. (중략) 지급해야 마땅할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떼어먹는 것은 타인의 노동력을 훔치는 행위다. (중략)

서비스 야근과 과로사·과로자살 사건 등 직장에서는 노동 범죄가 마음껏 행해진다. 절도나 살인에 해당하는 노동 범죄이지만 그에 합당한 벌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다들 자동차 속도위반 정도로 생각하나보다. 일본의 경우 치안이 세계적으로 뛰어나다고 하지만, 노동 범죄에 한해서는 무법지대에 가깝다.

-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 수당이나 주세요> p.36


앞서 언급했듯이 작가는 대부분의 상황을 일본에 한정지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 범죄에 한해서는 무법지대에 가깝다."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노동'이나 '노동자'라는 단어만 들어도 왠지 극단적인 '운동권' 이라던지 '불법파업' 이라던지 '투쟁'이라던지 하는 부정적 이미지의 단어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만큼,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것이 옳은 것이고 무언가를 따지고 요구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프레임이 우리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축(社畜) : 회사와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회사원
1)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노예형 사축

'노예형 사축'은 이름 그대로 회사로부터 마치 '노예'처럼 일할 것을 강요당하는 사축이다. 이들이 노예처럼 일하는 까닭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주택마련대출을 받았거나 부양할 가족이 있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애당초 노동자의 권리를 모르는 경우다.
2) '나는 회사와 함께 성장하겠어' 하치코형 사축
    *하치코 : 세상을 떠난 주인을 계속 기다렸다는 일본의 충견

하치코형 사축은 충성심이 지나친 나머지 회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 (중략) 하치코형 사축은 그러지 못하고 회사와 함께 침몰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치코형 사축은 일개 직원에 불과하지만 '경영자 마인드'를 갖고 행동한다. 종업원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당연하게도 회사에 이익이 될 행동을 선택한다.
3)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야 해' 기생충형 사축

'기생충형 사축'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필사적으로 회사에 들러붙으려는 유형이다. 이들은 철저히 회사에 의존하려고 한다. 이런 유형이 일을 잘하느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회사 입장에서는 별로 달갑지 않은 존재인 경우가 많다. (중략) 만약 일이 생겼을 때 회사에 '들러붙는' 선택지밖에 없다면 절망적이다.
4) '상사에게 잘 보이는게 최고' 주머니형 사축

'주머니형 사축'이란 상사나 선배의 비위를 맞추며 회사 안에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려고 전력을 다하는 유형이다. (중략) 상사나 선배가 늘 차고 다니는 주머니처럼 굴며 틈만 나면 약삭빠르게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능력은 어떤 의미에서 세상살이에 능숙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제가 되는 조직이나 파벌이 소멸해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회사가 사라지면 직함 역시 그 가치를 잃는다.
5) '다들 저렇게 바쁜데 너 혼자 퇴근하겠다고' 좀비형 사축

'좀비형 사축'이란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사축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유형이다.(중략) 자신이 서비스 야근을 한다면 타인에게도 함께 야근할 것을 강요한다. 정시에 퇴근하려는 동료가 있으면 "다들 저렇게 바쁜데 너 혼자 퇴근하겠다고? 양심에 안 찔려?"라고 설교한다.  (중략) 좀비형 사축에 지배된 조직은 비참하다. 그런 조직에서 잘해나가려면 똑같은 사축이 되거나 아예 도망치는 방법말고는 없다.


내가 사축이 되려고 힘들게 취업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작가는 '사축(社畜)', 즉 회사의 가축이라는 기가 막힌 신조어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그 유형을 다섯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슬프게도, 저 역시 책을 읽으면섯 각 유형마다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숨이 턱 막혔습니다. 누구나 나 자신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법이니까요. 아직은 그렇지 않더라도 이렇게 '사축들의 공간'에 5년, 10년, 20년 머물다보면 저도 물들어 버릴 것 같아서 두려움이 밀려듭니다.


어쩌겠어,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 참아야지 별 수 있니.

가끔 이런 '사축'의 생활에 지쳐 불만을 토로하거나, 회사나 상사의 지시에 의문을 품으면, 저보다 직장 생활을 조금 더 한 선배들의 조언은 한결같습니다. "어쩌겠어,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 참아야지 별 수 있니." 사회생활이 대체 뭐길래. 작가의 말처럼, 불합리하고 설명할 수 없고 옳지 않은 많은 것들이 '사회 생활'이라는 미명 아래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사회인으로서의 상식'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는 경우는 대부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합리한 관습을 억지로 밀어붙이려는 때다.
'사회인으로서의 상식'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는 경우는 대부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합리한 관습을 억지로 밀어붙이려는 때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있는 그대로 설명하면 그만이다.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 수당이나 주세요> p.40


가끔 이 커다란 조직 안에서 나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하찮아서도 아니고, 단순히 업무 강도가 높거나 급여가 적어서도 아닙니다. 저에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옳고 그름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나 자신에 대해 반성하고 부끄러워하며, 나름의 윤리적 기준에 부합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는 저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수만명의 직원을 '사축' 이상으로 대하지 않는 조직에서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이기는 것 같습니다. 오직 내 상사가 뭘 원하는지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회사의 지침이나 임직원에 대한 대우에 대해, 옳고 그름을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불온한' 사람이 됩니다. 사축에 의한, 사축의 재생산입니다.


사축이 되는가 아니면 그만두는가. 선택지는 두 가지 뿐이다.
조직 전체가 사축적 가치관에 지배되면 안타깝게도 개인이 저항하기는 무리다. 조직을 지배하는 분위기를 한 사람의 힘으로 없애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개인이 할 수 있는, 회사를 도망쳐 나와 동조 압박이 없는 곳으로 가거나 동조 압박에 굴복해 그 가치관을 받아들이거나, 둘 중 하나다.

'사축이 되는가 아니면 그만두는가.'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그 결과 회사에는 '동조 압박'에 굴복한 사축만 남는다. 조직을 점령한 사축의 피가 점점 진해진다면, 그 회사에 계속 남아 있기 위해서는 나 또한 사축이 될 수밖에 없다. (중략)

-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 수당이나 주세요> p.127


입사해서 3년간, 저는 스무명도 안 되는 조직에서 일하면서 4명의 선배가 이 조직을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인적인 이유는 각기 달랐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비전 부재"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만큼의 힘듦을 감내할 만큼의 비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직 멋모르는 꼬꼬마 신입사원 시절에는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내가 아직 몰라서 그런건가' 라는 자기반성을 하거나 또는 '사회 생활이란 원래 이런 것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이 조직의 생리와 이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하나 하나 눈에 들어오며 저는 점점 더 참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명예욕도 많구요, 유명하고 돈도 잘 버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단, 올바른 방법으로요.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하는데에 털끝만큼이라도 기여하며 살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원대한 꿈을 가진 사람입니다.


일과 뜨겁게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저는 '먹고사니즘'이라는 핑계를 앞세워 제가 직면한 지독한 비합리성, 비인간성을 그냥 받아들일 생각이 없습니다. 이 어려운 시대에 배부른 소리, 철없는 소리라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아직 어떤 결단을 내린 것은 아니지만, 저는 제 꿈처럼 올바른 방법으로 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아서 일과 뜨겁게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하고 준비할 것입니다.


사축이 되어 오로지 성실하게 일만 하면 행복해지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앞으로 회사원은 회사와 자신의 인생을 분리하고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 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준비하고 공부해야 한다. 회사를 그만두라는 잔소리가 아니다. 한 번쯤 회사와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소리다. 지금이야말로 '탈사축'이 필요하다.

-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 수당이나 주세요> p.68


*표지 이미지 출처 :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09/20151109000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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