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뜨겁거나 차가운 바람이 불 때면 교직에 인사이동이 있다. 학기 단위로 인사이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름, 겨울마다 퇴임식이 열리곤 한다. 누군가는 정년 퇴임을, 누군가는 명예 퇴임을 맞이한다. 지금 일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선배 선생님들의 퇴임식을 세 번 겪었다.
첫 번째는 1년 동안 같은 학년으로 근무한 선생님의 정년 퇴임식이었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 시기를 1년 겪고 난 겨울이었다. 그해는 학교에 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대체 수업을 제작하느라 협력할 일이 많고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도 잦았다. 나보다 30년은 많은 세월 동안 교직에 계셨던 선생님께서는 종종 교실에 들러 살아오신 이야기, 교사로서 직업에 임해 온 태도, 스타가 된 제자 이야기, 교실 운영 방법 등을 들려주셨다. 나 또한 선생님께 서울에서 살아가는 고단함, 진로에 대한 고민, 학생들을 지도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들을 나눴다. 고민의 내용들은 무거운 것들이었으나 선생님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넓은 마음 안에서 모든 것들이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해가 선생님의 교직 생활에서 마지막 해가 될 것임을 알았기에 선생님께 편지를 써서 보답해 드릴 생각으로 들려주신 이야기들을 하나씩 기록해 가기 시작했다. 편지에 잘 녹여내야지, 하고. 드디어, 몇 개월간 준비한 글을 읽어드릴 퇴임식 날이 되었다. 수십 번을 읽으며 미리 많은 눈물을 흘린 덕에 퇴임식에서는 울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어떤 문장 앞에서 눈물이 나고 말았다.
‘선생님은 모든 것을 이해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눈빛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몇 초간의 정적을 두고 가까스로 다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편지를 다 읽은 후 선생님께 편지를 드리는데 선생님과, 퇴임식에 함께한 다른 이들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편지 내용이 선생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몇 번이고 퇴고를 하였는데, 선생님이 지니신 소중한 가치들과 장점들이 잘 전달된 것 같았다. 존경하는 선생님의 마지막을 까마득한 후배로서 글을 통해 빛나게 해 드릴 수 있음에 마음이 벅찼다.
두 번째 퇴임식은 그로부터 6개월 뒤의 여름, 교장선생님의 정년 퇴임식이었다. 지난 송사가 참 좋았다며 교장선생님의 송사도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글은 얼마든지 쓸 수 있지만 교장선생님과는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기에 마음을 담은 글을 쓸 자신이 없었다. 그런 글은 읽어도 교장선생님의 마지막 순간을 빛나게 해 드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학교 폭력 담당 부장을 맡아 고군분투하고 있던 내게 고생한다며 따뜻한 말과 작은 선물들을 전해 주셨던 교장선생님이기에 무엇이라도 해 드리고 싶었다. 용기 내 말했다.
“제가 도저히 쓸 말이 없어서 송사는 못 하겠고, 대신 노래 부를 사람이 없으니 노래는 제가 할게요.”
연구부장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머, 부장님 노래 잘 부르시나요?”
“아니요. 저 완전 못 부르는데요….”
연구부장님이 눈을 더 동그랗게 떴다.
선배 두 분도 합세하여 무대를 꾸리기 시작했다. 악기를 투입하고 노래 가사도 개사하여 교장선생님의 앞날을 응원하는 노래를 불렀다. 선생님들과 다함께 신나게 박수치며 웃는 얼굴로 교장선생님의 마지막을 축하할 수 있었다.
1년 6개월 뒤, 또다시 찾아온 겨울, 또다른 선생님의 퇴임식이 있다고 했다. ‘맙소사. 또?’ 설마 했는데, 이번에도 송사를 맡아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나는 그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았다. 앞선 두 분은 좋아해서 뭐라도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적이 많은 이분의 퇴임식에서 송사를 했다가는 없던 적마저 생길 지경이었다. 고민이 되었다. 며칠 고민을 하고 결국 송사를 맡기로 했다. 그래도 3년 동안 같은 학교에 있으며 발견한 선생님의 장점이 있었고 함께 나눈 따뜻하고 아름다운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어떤 일을 오랫동안 해 온 이의 마지막을 허전하게 마무리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그렇게 3일 동안 송사를 썼다. 선생님을 싫어하는 이들도 들으면 공감이 될 내용, 선생님의 삶을 담을 수 있는 내용을 쓰기 위해 고심했다. 대망의 퇴임식! 송사를 들은 선생님께서 눈물을 흘리셨고 함께한 거의 모든 이들이 다가와 잘 들었다고, 최고의 송사였다는 말을 전해 주고 갔다. 거짓을 섞지 않으면서도 다 함께 공감하고 장점을 비추어줄 수 있는 글을 써 선물할 수 있어 감사했다.
언젠가부터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가치를 찾아 알려 주는 일이 기뻐서, 그 사람과 있었던 아름답고 따뜻한 순간들을 흘려보내기 싫어 글을 쓴다. 하지만 꽤 오랜 세월 동안, 교직을 그만두고 싶었던 수많은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견뎌내기 위해 글을 써 왔다. 제자의 죽음, 몇 개월간 이어진 학교폭력 사안, 안전사고, 안하무인의 학부모 등 여느 직업처럼 교직에도 힘든 일들이 많았고 나는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견뎌낼 수 없어 글을 썼다. 누군가에게 말로써 속을 터놓지 않는 내가 그 고통들을 견뎌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쓰는 일이었다.
지난 세월들이 나를 단련한 것일까. 이제 고통의 순간보다 타인에게서 발견한 가치를 담기 위해, 사람 사이에 보이는 아름답고 따뜻한 순간들을 수집하기 위해 더 많은 순간, 글을 쓴다.
10년 넘게 이어진 교직 생활, 고단했던 서울살이로 몸이 지쳐 지난 1년간 병휴직을 했다. 휴직 동안, 자연스레 지난 기록들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고통 속에 쓴 글들이 많았지만 수많은 이들과 주고 받은 따뜻한 글도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품었던 따뜻한 마음들이 글이 되어 그들의 일기장에, 편지에, 핸드폰 속에 남아 있었다. 아이들에게 인생 선생님, 학부모님들에게 최고의 선생님이라는 말을 들어도 자부심이 없던 내가, 지난 세월 동안 쓴 글들을 보며, 스스로의 노고를 먼저 인정해 주기로 했다. 가치를 알아봐 주기로 했다.
타인의 퇴임식이 아니라 언젠가 있을 나의 퇴임식을 그려본다. 나는 내게 어떤 말들을 전하며 교정을 떠나게 될까. 언제가 되든, 후회가 없었으면 한다. 마지막 퇴임식을 기다리며, 다시 시작될 올해 3월, 새로이 만날 아이들에게 전할 편지를 쓴다.
‘올해 만나게 된 여러분이 저마다 지니고 있을 빛나는 가치들이 기대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2025.2.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