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6학년

by 쏭쏭

학교를 옮겼고, 9년 만에 6학년을 다시 맡았다. 13번의 교직 인생에서 2번째로 맞이하는 6학년이다. 첫 번째 6학년을 맡은 해는 내게 좌절과 인간에 대한 환멸을 안겨준 해였다.


법 없이도 살 것 같았던 우리 반 남자아이가 1학기 말쯤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됐고 덜덜 떨리는 몸을 겨우 부여잡고 교무실로 가서 그 소식을 전했을 때 관리자라는 사람은 "학교에서 죽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말을 했다.


학교폭력실태조사에서 작은 것 하나 나와도 자신의 승진에 누가 될까 학교폭력은폐의혹을 받지 않기 위해 되려 관리자들이 학교폭력위원회를 열던 시절, 우리 반 누군가가 '몇 명의 아이들이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다'라는 것을 썼고 관리자들은 학폭위를 열었다. 아이들 간 갈등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으나 상담을 통해 조율해 나가던 상황에서 당사자도 아닌 목격자의 추측성 발언으로 갑자기 우리 반 아이들 9명이 연루된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렸다. 관리자를 제외한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학폭위가 밤까지 열리던 그 시절, 학폭위 시작 전, 아이들이 내게 웃으며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했다. 나는 학폭위가 끝날 때까지 퇴근 하지 않았다. 저녁 늦게 서야 학폭위가 끝났다.


학폭 담당 교사가 회의가 끝나고 희의록을 내게도 공람해 주었다. 회의록을 읽고 마음이 무너졌다. 아이들은 학폭위까지 오게 된 이유를 담임교사에게 돌렸고, 학부모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친구에게 했던 잘못, 자녀의 잘못에 대한 인정은 빠지고 교사에 대한 마녀사냥이 이루어졌다. 그래야 그들이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회의록 속 나는 학급을 관리하지 않은 교사, 학폭위가 열리기까지 사태를 방치한 교사였다. 관리자는 그런 발언을 하는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위로를 건넸다.


'내가 도대체 무얼 잘못한 거지?'


아이들의 갈등 상황을 잘 조율하고자 상담을 이어나가고, 퇴근 후에도 연락을 해대는 학부모를 응대하고, 학폭위에 참석하게 된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을까 말을 건네고...


문제는 학폭위가 열렸다는 것이었다. 그걸 내가 열었던가?


여전히 아이들은 내 앞에서 웃었다. 희의록을 봤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졸업식, 학부모는 내게 웃으며 아이와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내 생에 가장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사진을 찍었다.


신규 교사였던 나는 20대의 마지막 해를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아이, 그리고 부모님까지 훌륭하신 그 가정에 일어난 슬픔에 대한 의문,

삶이 이리도 순식간에 맺어질 수 있음에 대한 무력감,

자신의 승진을 위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차리지 않은, 신규 교사를 전혀 보호해 주지 않은 교직의 관리자들에 대한 혐오,

앞에서는 웃는 얼굴을 하고 뒤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환멸로

채웠다.


그 후 6학년은 다시 맡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사정상, 다시 6학년을 맡게 되었다. 나도 어느덧 30대 후반이 되었고 그 사이 나도 많은 것을 겪고 성장했을 테니 이 아이들과는 다른 해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들었다. 또, 이제 인간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졌기에 웬만해서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옮긴 학교에서 새로 맡은 업무, 학부모 공개수업, 학부모 총회, 학기 초 래포 형성 및 학급 세우기 활동 등으로 3월이 너무나 바빴지만 첫 번째 6학년을 맡았을 때보다 올해 아이들과의 궁합이 더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학생들이 많아 정서적으로나 학습적으로 교사로서 더 도움을 줄 수 있어 보람 3월이 되고 있다.


올해는 이 아이들과 어떤 6학년 생활을 이어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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