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접한 이야기 속 주인공은 죽지 않았다. 끝까지 살아남아 행복에 이르렀다. 어른이 되어 본 미국드라마 <왕좌의 게임>은 달랐다. 주인공이라 예상했던 이가 죽었다. 이 인물 없이 진행될 것 같지 않은데, 이야기가 이어졌다. 심지어 더 재밌기도 했다. 시즌 8개, 총 73부작의 드라마를 누가 뒤에서 쫓아 오는 마냥 봤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했다 사라졌고 에피소드들은 저마다의 전개로 흥미로웠다.
가끔 나 자신을 영화나 소설 속 등장인물이라 상상해 본다. 스쳐간 일들을 떠올리며 '그 사건은 내 삶에 어떤 의미였나' 생각한다. 공간적 배경과 시간적 배경의 흐름도 되짚어 본다. '나는 지금 왜 여기에 있을까? 전체 생애 중 어디쯤 와 있을까? 어떤 결핍과 동력들이 나를 이곳에 이르게 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오랜 세월동안 내면을 침잠하며 발견해 낸 스스로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떠올린다. 이야기를 관통할 가치, 바로 '존중'
태어난 곳, 부모/조부모의 재력 크기, 사는 곳, 신체적 특징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이를 무시할 권리가 없음을 아는 것. 주변인을 소중히 대할 수는 없을지언정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선택의 기로에서 타인에게 도움이 못 될지언정 피해 주지 않는 것. 내가 존중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 떠올리는 것들이다.
교실에서 눈앞의 아이들을 본다. 내가 사라진 세상에서도 이어질 이야기들을 상상한다.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 조건으로 인해 무시받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누군가 내린 선택으로 피해받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러기위해서 아이들도 삶에서 만나는 이들을 존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야기 발단 단계에 내가 등장하려한다. 내가 먼저 아이들을 처한 환경에 상관없이 귀하게 대하고 조건없이 사랑하고자 노력한다. 존중을 받아본 아이가 자라나 존중할 줄 아는 어른이 될 거라 믿는다. 존중의 가치를 실천하고 가르치는 일. 그 과정은 내 이야기의 일부가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한 한 해의 이야기가 끝나는 날, 맺음말을 건넨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네요. 여러분이 자라나 어른이 되면 지금처럼 칭찬 받을 일이 잘 없고, 누군가로부터 상처 받을 일이 많을 수도 있어요. 선생님 나이는 00예요. 여러분이 선생님 나이가 됐을 때, '어린 나를 조건없이 사랑하고 존중해 준, 내 나이와 같은 한 어른이 있었었지'하며 이 시절을 떠올리고 다시 힘을 내 살아갈 수 있다면 선생님은 올 한 해가 정말 값질 것 같아요."
교사 역할을 맡은 내가 아이들 삶에 등장한다. 나도 그들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내가 사라질 세상에서도 존중의 가치는 이어진다.
2025.3.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