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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라 Oct 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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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에 그려놓은 꽃 그림이 있다. 어느 정도는 나만의 특징이 표현된 작품이라 여겨져 개인적으로 밉지 않았으나 그 그림은 볼 때마다 서늘하고 추워 보였다. 배경에 무엇이든 따뜻한 색깔의 옷을 입혀야만 되겠다 싶으면서도 선뜻 꺼내어 붓질을 하게 되지 않았다. 지나간 것을 다시 붙잡고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은 심리도 있었지만 어설프게 붓을 들었다가 그림이 완전히 망가져 쓸모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차일피일 보완을 미루게 되고, 또 다른 완성도 떨어진 그림을 계속 생산하고 있는 형국이 지속되었다. 초보 연습생에 불과한 내가 어떤 작품을 한들 완성도 높은 그림이 나오랴, 마는 그것을 모른 체하면서 릴레이 독서 하듯 다작에만 몰입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내가 모를 리 없다. 시간과 노력을 쏟은 만큼 좋은 그림이 나오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태도이기도 하다. 그 진실을 알면서도 나는 자꾸 쉽게 가려고 한다. 왠지 꾀부리는 연습생, 학습자 같다.  찜찜하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하루를 성찰하는 글쓰기를 해 보고자 시작한 것이 올해 초부터였다. 그렇게 출발한 성찰은 벌써 꽤 여러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때, 그때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반성하고 회상하고 기록하니 무엇인가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착각과 함께 뿌듯한 심리적 포만감도 더해져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게 해 준다. 심각한 나르시시스트가 아닌 한 자존감이 높은 것은 자아를 수호하고 멘털을 바르게 잡아 주는 데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도 그림과 마찬가지로 초고에서는 적절한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고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수없이 고민해서 기초공사를 한다. 단어가 궁핍해도, 문장이 매끄럽게 풀리지 않아도 일단 적어보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쓰다 보면 무엇이든 만들어진다. 처음부터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되었든, 전혀 의도하지 않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실마리가 풀리지 않아도 쉽게 놓아 버리지 않고 마무리까지 하는 끈기, 지루한 작업을 실망하지 않고 반복하는 우직한 근성이 더욱 가치 있다. 그렇게 만들어 놓은 한 편의 글을 시차를 두고 읽고 또 읽으면 처음엔 떠오르지 않던 단어도 어디선가 튀어나오고, 더 훌륭한 문장도 탄생될 수 있으며, 흠결도, 결핍도 눈에 들어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게 된다. 그러면서 어제의 글은 업그레이드되어 새롭게 태어난다. 반복 읽기는 마치 마법과도 같이 아이디어를 주고 글을 고치게 하여 점점 더 멋 진 글의 나라로 인도한다. 그것은 그래서 매직, 이다.


과거에 알던 지인을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는데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수려한 인물이 되어 매력을 발산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서로 만나지 않고 지내던 긴 세월 동안 그 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얼마나 노력하며 자신을 가꾸어 왔는지 감동할 때가 있다. 젊은 날의 부단한  노력이 사람을 얼마나 다르게, 존경스럽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고 자극받아 선한 영향을 받게 된다. 자신을 스스로 훈련하여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것은 개인의 가치관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몇 년 후, 노년기로 접어드는 나이가 되고 보니 생애에서의 꾸준한 노력은 어디를 가나 보석처럼 반짝이므로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자랑이 된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욕구는 매우 필요하고 중요하다. “이 나이에 그건 배워서 뭐 해?”가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공부하고 배우면서 희열을 만끽해야 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다해야 할 의무라고 할 수 있겠다.


업그레이드의 가치에 대해 적어 보고자 했는데, 횡설수설 두서가 없어 부끄럽다.


그림도 글쓰기도 현재에 안주하다 보면 발전이 없다. '모정의 탑'처럼 정성의 작은 돌을 하나하나 쌓아가다 보면 어느새 걸출한 탑으로 변신해 있는 놀라운 작품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취향과 기호가 무엇인지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재능을 찾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고, 인생에 숨어있는 짜릿한 기쁨과 즐거움을 찾아내어 평생 만끽하는 축복된 삶을 선물 받을 수 있다.


지구는 넓고, 재미있는 일은 해바라기 씨앗처럼 많다.

젊을 때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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