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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원 Apr 27. 2017

나는 왜 <열정적 위로 우아한 탐닉>을 썼나?  

존경하고 사랑하는 <신해철 형님>을 그리며...

오랜 기다림 끝에 책이 나왔습니다. 오후에 출판사에서 책이 나왔다고 연락을 받았는데, 솔직히 저도 아직 실물은 못 받아봤습니다. 처음 자료조사를 시작한 게 2012년이니까 꼬박 4년 걸렸네요... 4년간 작업한 책이 주말쯤 서점에 풀린다고 하니, 기분이 참 묘하네요. 아마 내일쯤 책을 받아보면 더욱 그렇겠죠? 


제가 책을 쓴다는 게 알려진 뒤, 주변 사람들한테 제일 많이 들었던 질문은 바로 이겁니다. 


"네가 왜 그런 책을 쓰니?" 사실 이런 질문을 받을 만도 합니다. 제가 방송 일을 20년 했는데, 솔직히 

주로 사회부 경찰 출입기자로 일했습니다. 말단 경찰서 출입부터 경찰청(바이스), 서울지방경찰청(캡)까지 출입하고 사건 데스크도 2년 가까이했으니 말입니다. 사회부가 아니면, 주로 긴 호흡의 제작물을 만들었습니다. 시사매거진 2580을 세 번 갔고, 특이하게 다큐멘터리 제작부서에도 2년이나 있었죠. 인사 이력으로만 보면 꽤 특이한 경우일 겁니다. 정치부, 경제부, 국제부, 남들이 선호하는 이런 부서 단 한 번도 못 가봤고, 특히 음악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얄궂은 운명 때문인지 문화부도 못 가봤습니다. 이런 제가 "술"과 "음악"에 관한 책을 썼다고 하니, 많이들 물어보시더군요..


이런 질문을 하도 받다 보니, 아예 서문을 <제가 왜 이 책을 써야만 했는지?>를 담아서 썼습니다. 사실 '썼는지'가 아니라 '써야만 했는지'에 가깝습니다. 서문이 좀 깁니다. 그래도 꼭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서문을 읽어보시면, 제가 왜 진짜 이 책을 썼는지 이해하실 겁니다. 



들어가며


  돌이켜보면 모든 게 그날 일 때문이었다. 2004년 11월. 당시 나는 MBC 시사매거진 2580 기자였다. 『대마초는 마약이다?』(2004년 11월 21일 방송)라는 다소 파격적인 아이템을 준비하고 있었다. 10년도 훨씬 지난 일이지만 생생히 기억한다. 인터뷰 섭외하려고 전화를 걸었을 때 수화기 너머로 들린 그의 목소리를.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왜 매니저를 통하지 않고 제 개인 휴대전화로 전화했습니까?”

  “제가 건네받은 번호가 이것뿐이었습니다.”

  “근데 전화는 왜 한 겁니까?”

  “이번에 ‘대마초는 마약이다?’라는 주제로 방송을 준비 중입니다.”

  “그래서요?”

  “대마초 때문에 고초를 겪으셨잖아요. 그런데 대마초가 진짜 마약인지 요새 논란이 되고 있는데, 한 말씀 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요. 그러니까 인터뷰 요청을 드리는 겁니다.”

  (언성을 높이며) “근데 왜 하필 저에요? 다른 분들 많잖아요. 대중들도 이제 다 잊었는데, 그 옛날 일을 다시 끄집어내면…”  


섭외 전화를 했을 때 상대 반응이 이 정도면, 얼른 “미안하다”고 하고 끊는 게 맞다. 그런데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오기가 발동했다. 

  

  “제가 이 아이템 준비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요. 하나같이 그러더군요. 이 사안에 대해 신해철 씨만큼 논리 정연한 분은 없다고. 다들 신해철 씨가 속 시원하게 방송에서 한마디 해주기를 바라는데,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죠. 인터뷰 안 해주시면 이 아이템 안 하렵니다. 그냥 접죠 뭐.”


  배수의 진을 친 게 효과가 있었나 보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말했다.


  “그럼 인터뷰를 할 건지, 말 건지 만나서 얘기 들어보고 정합시다. 밤 11시까지 작업실로 찾아오세요. 당신이 나를 설득시키면 인터뷰를 할 것이고, 만나서도 설득 못 시키면 인터뷰는 없습니다. 알겠죠?”  


  작업실은 서초동 서래마을에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 문을 두드렸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심호흡을 하는데 그가 나왔다. 그는 작은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우리는 빨간색 말보로 담배 두 갑이 놓인 책상을 앞에 두고 

곧장 얘기를 시작했다.


 그는 시종 느긋해 보였다.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쉴 새 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줬다. 1964년 뉴욕에서 

비틀즈The Beatles가 밥 딜런Bob Dylan을 만나 함께 대마초를 피운 이야기로 시작해서 1970년대 국내 연예계를 휩쓴 대마초 파동 비화까지. 그는 대마초뿐 아니라 이 지구 상 모든 아티스트의 에피소드를 다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기자 생활을 하며 수없이 많은 이들을 만나봤지만, 그토록 다변이면서 동시에 달변인 사람은 처음이었다. 한편으론 내가 음악을 좋아한 게 다행이었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몽땅 LP와 CD를 사 모으는데 썼고, 월간 『핫 뮤직』도 정기 구독했던 터라,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맞장구 칠 정도의 잡지식은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우리는 ‘서로 왜 만났는지’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좁은 방에서 얼굴을 맞대고 낄낄대고 있었다. 마치 기타리스트들이 기타 솔로 배틀을 하듯, 누가 질 새라 신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중간에 화장실 두 번 간 것 말고는 시종 ‘말의 성찬’이었다.  


 그러는 사이 주제는 ‘대마초’에서 ‘술’로 바뀌었다. 희대의 술꾼인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과 이글스Eagles 멤버들의 음주 기행, 오아시스Oasis 형제의 술버릇을 얘기하며 박장대소했다. 사내들끼리의 수다가 이토록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대화가 끝난 건 동이 튼 뒤였다. 날이 밝았으니 바로 회사로 가야했다. 카메라 인터뷰를 언제 할 것인지 날짜를 잡은 뒤 작업실 문 앞에서 그와 인사를 나눴다. 이때 그가 이런 말을 툭 던졌다.


  “우리 둘이서 한 얘기, 책으로 내면 재미있지 않을까? 언제 시간 되면 이런 거 한번 책으로 써 봐.”  


 원래 말로 하기는 쉬워도 글로 쓰는 건 어려운 법이다. 그 제안을 나는 그냥 한 귀로 흘리고 말았다. 음악 평론가도 아닌데 감히 그런 책을 쓸 용기도 없었거니와 부서까지 사회부로 옮기게 되면서 바쁘기도 했다. 패기만만한 후배 기자들을 이끌고 ‘바이스캡’(경찰청을 출입하는 사건팀 부팀장)에 이어 ‘시경캡’(서울경찰청을 출입하는 사건팀장)까지 맡아 눈코 뜰 새 없이 살았다. 까맣게 잊고 있던 그날의 특별했던 기억이 다시 소환되기까지는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다.   


2010년이었다. 드디어 사회부를 탈출(?)해 창사 50주년 특별 다큐멘터리 팀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때 나는 『술꾼의 품격』 저자인 언론계 선배 임범과 함께 『술에 대하여』라는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다큐멘터리 주제로 왜 하필 술을 골랐는지는 뻔했다. 내가 다른 기자나 PD들보다 유일하게 많이 아는 분야가 술이었기 때문이다. 위스키와 와인, 칵테일에 푹 빠져, 주류 전문 교육 기관을 수료했으며 국가 공인 기술 자격증 (조주기능사)까지 딴 나로서는 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게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만든 다큐멘터리 『술에 대하여』는 2011년 6월에 방송됐고, 석 달 뒤엔 극장판으로 제작돼 신촌에서 단관 개봉이 이뤄졌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계기로 나는 술과 예술을 접목하는 또 다른 작업을 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솔직히 책 한 권 내는 게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그때는 몰랐다. 그냥 쓰면 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충분한 쌀이 있어야 청주를 만들고, 충분한 보리가 있어야 위스키를 만든다. 그런데 책 한 권을 쓸 만큼 글감이 충분하지 않았다. 팝-록 뮤지션의 술 이야기를 주제로 다룬 서적이나 논문이 있을까 싶었지만,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찾기 힘들었다. 술자리에서 들은 얘기나 음악 잡지에서 본 에피소드, 포털 사이트를 검색해 찾아낸 파편적인 정보만으로는 도저히 견적이 나오질 않았다. 결국, 2012년 한 해는 꼬박 자료 조사를 하는 데 써야했다. 1년 내내 해외 잡지와 신문을 뒤졌고, 아마존에서 여러 아티스트의 영문 자서전과 평전을 구입해 읽었더니, 비로소 윤곽이 잡혔다. 


  2013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글을 썼다. 회사 일이 끝나면 집에 와서 마치 일기를 쓰듯 한 줄 한 줄 적어나갔다. 자료 조사를 충실히 한 덕분에 원고 작업은 순탄했다. 1년 만에 절반 이상이 완성됐다. 넉넉히 1년만 더 고생하면 다 끝날 것 같았다. 그때까지는 정말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일이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늘 그렇듯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졌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기억하는 바로 그 날,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세월호 대참사. 지금도 생각하면 비통한 눈물이 떨어지는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사회부 사건 담당 데스크였으며 동시에 MBC 기자협회장이었다. ‘기레기’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보도 참사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나 역시 죄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몇 달 동안 세월호 참사에서 단 한 발짝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당연히 원고 작업도 중단했다. 생때같은 아이들이 저렇게 절명했는데, 기자라는 사람이 한가롭게 이런 글을 써도 되나 하는 자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난 원래가 그렇다. 무언가를 파고들거나 집중할 때는 열심히 하지만, 포기도 빠른 편이다. 반쯤 쓰다 만 원고가 노트북 하드 디스크에 처박혀 있었지만, 이걸 꺼내서 계속 쓸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출판사가 정해진 것도 아닌데, 내가 글을 안 쓴다고 해서 누구한테 손해를 끼칠 일도 없었다. 그런데 그 해가 다 가기도 전, 또 한 번 끔찍한 일이 벌어졌고, 결국 나는 세월호 침몰과 함께 노트북에서 잠자고 있던 글을 꺼내야만 했다.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6개월이 흐른 2014년 10월 27일. 마왕 신해철이 우리 곁을 떠났다. 억울한 죽음이었다. 마음 한 곳이 시리고 먹먹했다. 마치 내 인생의 중요한 한 가지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다음날, 나는 여느 때처럼 차를 몰고 출근했다. 성산대교를 약간 못 미쳤을 무렵, 라디오를 켰더니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난 포기하지 않아요.” 


 그럭저럭 잘 참고 있었는데,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눈물이며 콧물까지 한꺼번에 쏟아졌다. 더 이상 운전대를 잡기조차 힘들었다. 겨우 갓길에 차를 세웠다. 고개를 푹 숙이고 한참을 엉엉 울었다. 문득 10년 전 서래 마을 작업실이 떠올랐다.  

  “책 한번 써봐.”

라고 말하며 씩 웃던 그의 마지막 표정도 아른거렸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 인생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짧아. 그래도 해철이 형은 우리에게 이렇게 좋은 음악을 남기고 갔잖아.”


  이 책을 완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이것 때문이었다. 하늘나라로 떠난 그를 두고 스스로 맺은 다짐. 이제 그와의 약속을 뒤늦게나마 지킬 수 있게 됐다.


 그가 떠난 지 2년이 넘었다. 그 사이 세상엔 많은 일이 일어났다. 슬프고 억울하고 화가 나는 일도 있었지만, 아름답고 즐겁고 행복한 일도 제법 많았다. 착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리라. 이 책의 주제인 ‘음악과 술을 만드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내가 글을 쓰는 동안, 검정치마 조휴일은 「Hollywood」와 「Everything」을 발표했으며, 야광토끼 임유진은 『Stay Gold』라는 멋진 정규 앨범을 내놨다. 빌리카터 김고양은 홍대 이곳저곳에서 ‘아무리 소리쳐도 들리지 않는다’며 더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전범선과 양반들은 심장이 쿵쿵 울릴 만큼 크게 북을 치며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경북 문경에 터를 잡은 이종기 교수는 ‘고운달’이라는 한국형 명품 증류주를 탄생시켰다. 또 홍대의 바 팩토리의 켠(박시영)은 평생 친구인 체스카(한규선)와 함께 탈리스커Talisker를 활용한 명품 칵테일 ‘진저 스모키’를 개발했고, 강남 르 챔버의 바텐더인 엄도환은 동료인 임재진, 박성민과 함께 초대형 인삼주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진셍 마티니’를 만들어 내놓았다. 이들이 이렇게 열심히 사는 동안, 나도 ‘비교적’ 열심히 책을 썼다. 결과물이야 독자 여러분이 판단할 문제이나, 그 과정의 순수함과 열정만큼은 부끄럽지 않다. 


 책이 나오는 날, 내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날 나는 위스키 한 병과 이 책을 들고 그를 만나러 갈 것이다. 첫 번째 독자가 될 그에게 이 책을 제대로 읽는 법을 슬쩍 알려주려고 한다.

 

  “해철이 형, 이 책을 읽을 때는 말이죠. 

   지금처럼 이렇게 한잔 하세요. 

   한잔 하면서 읽으면 훨씬 재밌어요. 아셨죠?

                      

  

 "이 책을 고 신해철 씨에게 바칩니다." 

                                        -저자 조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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