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저의 첫 브런치북인 <인공지능, 기독교로 읽기>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마도, 어떤 분에게는 제 글이 터무니없이 들리기도 할 것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바 있지만, 모든 사람들은 자기 만의 관점과 주관을 가지고 있고, 그것에 기초해서 말하고 글을 쓰기 때문에, 제 글에 공감하지 않는 분들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반면에, 이 브런치의 첫 글에서 이미 말씀드렸듯이, 저의 글쓰기의 목적은 제 글을 읽는 분을 설득시킨다거나, 동의를 구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또 다른 굴레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자유롭게, 그러나 최대한 건강하고 건전한 이성과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저의 생각을 나누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AI 시대가 던지는 가장 강력한 도전, 즉,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도전에 대해서 깊이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번 말하고 싶습니다.
AI가 선도해 가는 이 시대가 기독교적인 인간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서 그리 밝은 전망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한 비기독교적인 인간관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창조주입니다. 인간은 물론이고 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드신 분입니다. 기독교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을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창조’는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는 가장 근본적인 특성이며, ‘창조’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라는 속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어둠과 혼돈에서 빛과 질서를 만드셨으며,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하늘과 땅과 동식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죠. 또한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릴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AI를 통하여 그러한 하나님께 도전장을 내민 셈입니다. 너무도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자신들이 스스로 할 수 없고 정복할 수 없는 ‘창조’라는 신의 영역에 현대의 과학과 테크놀로지를 가지고 덤벼든 거지요.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인공지능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셔서 천사보다 약간 못하지만 놀라운 능력을 주신 것처럼, 인간은 자신의 지능을 닮은 AI를 만든 것이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의 지능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형상을 닮은 그럴싸한 로봇 인간이 탄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기독교가 AI를 마냥 환영해서는 안 되는 분명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인간의 창조 과정에서 극명하게 다른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능력을 초월하지 못하지만, 인간이 만든 AI는 인간을 훨씬 능가할 거라는 사실입니다.
AI 초기 주창자와 개발자들이 전혀 계산하지 못한 거죠. AI 개발을 멈출 수 없어 보이는 지금에 와서야 서서히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미 판도라의 상자 뚜껑은 열리기 시작했으니 닫기는 어려울 듯싶습니다.
AI와 기독교에 대해서 제가 찾은 답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도가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AI가 시도하는 은밀한 반기독교적인 메시지를 볼 수 있는 영적이고 신앙적인 눈을 가지는데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로마서 1장 2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