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믿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서, 지하철역에서 어머니께서
무사하신 거라고 믿었다.
머리를 감으려고 들어갔던 화장실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어머니 표현에 의하면, 악한 영들이 어머니를 들어다 바닥에 내팽개쳐서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는 말씀도, 나는 믿었다.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적어도 작년 12월, 어머니를 뵙고 돌아오던 날까지는.
3일간 어머니를 돌보기 위하여 서울행 KTX 열차를 탔다. 허리를 심하게 다치셔서
혼자는 일어서지도, 눕지도 못하시는 어머님과 2박 3일을 함께 하였다.
건강이라면, 세상에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나의 어머니가,
어느새 90 가까이 되시고, 이제 너무나 약한 몸이 되고야 만 것이다.
집에 가면 항상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불고기와 전, 그리고 갈비 등등을
해 주셨던 어머니, 그리고 그의 손때가 묻어났던 부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그저 조용한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막내아들이 왔는데도, 부엌에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안방문을 여니, 어머니께서 눈을 뜨신다.
"이제, 왔네... 늦었어..."
"3시에 온다고 했는데..."
이제는 막내아들에게 그 어떤 음식도 하지 못하시는 어머니..
어머니의 손끝이 담긴 음식을 이제는 맛보지 못한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2박 3일 동안, 어머니를 위한 음식을 마련하고, 일으키고 누워드리면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어머니의 민낯을 보았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신 어머니의 냄새, 이젠 온통 주름진 손등과 뱃살
어머니의 야위어진 몸....
나는 그때, 그동안 나에게 했던 말들이
어쩌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또다시 반복해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어머니께서는 섬망을 앓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지난주에 1월 초부터 요양원을 가신 어머니를 뵈었다.
요양원 침대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계셨다.
사회복지사 한 분이 어머니께서 섬망 현상이 자주 있으시다고 했다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젊었을 때 고았던 모습의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거의 사라지고....
"엄마!"
나는, 그날 본 어머니의 모습이, 차라리 섬망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현실이 아니라고 말이다.
요양원을 나오면서, 문득,
아주 오래전, 애틀란타에서 호스피스 원목으로 훈련받던 시간이
떠올랐다.
이제 곧 세상과 작별해야만 하는 이들과 함께 했던 기억들이
방금 전 보았던 초췌해진 어머니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매우 모호한 감정들이 내 안에서 움찔거렸다.
나는, 그들의 침대 맡에서, 그들처럼
그 어느 호스피스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미래의 나의 모습을 떠올렸었다.
어제 어머니는 나에게 전화하셔서 부탁하셨다.
"아파트 키 잘 챙기고, 아버지 문 열어드려"
그 아버지께서는 이미 6년 전에 하나님의 품으로 가셨다.
"네, 알았어요. 잘 챙길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의 섬망을 아주 오랫동안 사실이라고 믿어왔던 나는,
마침내, 어머니의 섬망들과 마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