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아침, 아들을 다시 떠나보내다!

by 장보철

그날 아침, 비가 을씨년스럽게 내렸다. 나는 내심 KTX 역에 아들을 내려다 주고 출발할 때까지

함께 있으려 했다. 그러나, 아들 녀석은 한사코 손을 내저으면서, 나보고 빨리 먼저 가라고 한다.


"그래도, 출발할 때까지는 있을 거야!"

"아니에요. 아버지. 빨리 가세요!"


나는 너무 아쉬웠지만 할 수 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트렁크 2개를 들고

올라가는 아들의 뒷모습은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잘 견디고, 잘해야 한다."

이렇게 아들은 미국으로 다시 훌쩍 떠났다. 그게 작년 8월 말이었다.


그 해, 5월,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였다. 원래 예상대로라면 그때쯤이면 미국 초등학교 교사로 자리를 얻은 상태에서 한국을 방문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교생실습 4개월을 하면서, 슈퍼바이저와 탈이 난 모양이다. 결국 졸업은 할만한 성적이지만, 정식 교사 자리는 잡을 수 없었다.


졸업식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5월 중순, 다행히도 아들의 모습은 밝았다. 나도 아내도, 우리들은 아들이 여기 있는 3개월 동안 직장을 잡고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어디든 안 되겠니. 정 안되면 하프 타임이라도 잡으면서 계속 알아봐야지."

"네, 어떻게든 될 거예요."


시간은 생각보다도 더 빨리 지나갔다. 그동안 아들은, 매일같이 잡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넣고, 줌인터뷰를 하고, 1, 2차 인터뷰하고..... 그런데, 안타깝게도 8월 말까지도 확실하게 손에 넣은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반면에, 한국에 더 머무를 수 없었던, 아들은 미국으로 다시 가야만 했다.


이전에는 아직 학생이기에 방학이 끝나, 새 학기가 시작되었으니 다시 가는 게 자연스러웠지만, 이번에는 전혀 달랐다. 미국으로 들어가서 딱히 있을 곳도, 해야 할 일도 없었다. 그저 있다면 계속 직장을 알아보는 것뿐.

역에서 아들의 약해진 모습을 보면서, 잘 살고 있던 가족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14년 전의 일들이 또다시 나를 힘들게 한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이 서툰 아들. 이미 미국 생활 15년, 한국으로는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던 아내,

이들을 데리고 나는 한국의 신학교에서 하나님의 소명받은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싶다는 마지막 비전 하나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자기가 졸업한 곳으로 다시 돌아간 아들은, 그곳에서 알았던 학교와 교회 선배 아파트 거실에 얹혀살았다. 나와 페이스톡할 때에는 애써 웃으면서 싱글싱글했지만, 아마도 많이 힘들었으리라. 9, 10, 11월 시간은 참으로 야속하게도 빠르게 지나갔다. 통화할 때마다 지치고 힘들어가는 아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또다시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버지, 이제 여기 한 군데 남았네요."

"힘내라, 아들아!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자!"

"네. 이곳도 안 되면. 여기 생활 정리하고 한국 들어갈게요."


나는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아들의 미래가 어떻게 되는 건지. 한국서도 미국서도 헤매는 건 아닌 지. 미아가 되면 어쩌나. 눈물 나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남은 학교는 텍사스주의 기독교 사립대학의 재정 담당 coordinator 자리였다. 그때까지 알아본 자리 중에서는 제일 대우가 좋은 곳이었다. 연봉이나 benefit이나 가장 바라던 곳이었다. 1, 2차까지 합격한 아들은 그 학교를 방문하여 마지막 3차 프레젠테이션과 인터뷰를 마쳤다.


"아들아, 수고했다!"

"네, 잘하고 왔어요."


그런데, 아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잘하고 왔지만, 설마 그곳이 될까? 하는 자조감이 있는 듯싶었다. 그곳까지 안되면... 정말 어떻게 되는 것일까... 불안감일 것이다. 너무 피곤하게 들리는 아들의 목소리.

11월 중순, 토요일 오후 2시쯤 되었나. 아내와 점심을 먹은 뒤, 블루샥에 들러 커피를 마시려던 참이었다. 느닷없이 아들에게서 페톡이 왔다. 웬일이지? 이 시간에?


"아버지, 저 거기 최종 합격했어요!"

"...... "


그 대학 직원이 직접 전화해서 합격 안내를 하고, 연봉 (우리 예상보다 더 높은), 이사 비용까지 안내하고, 다시 전화 줄 거라는.....


아들은 11월 말, 한국으로 돌아와, 4년 만에 함께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보냈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멋진 소식과 아들과 함께한 시간들. 참으로 아름답고 감사한 일이었다.


그 아들을 다시 지난주에 미국으로 보냈다. 이번에 우리는 서로 웃을 수 있었다. 서로 포옹하며 기쁨으로 보낼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더 이상 아들로부터, "아빠, 빨리 그냥 가!"라는 말을 듣지 않아서, 아들의 눈물을 보지 않은 것만 해도 너무 세상은 아름다웠다.


이제, 아들을 보려면 우리가 미국으로 가야 한다. 비행기 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아들과 함께 보냈던 이곳에서의 이 전의 시간들이 너무 그리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기꺼이 보내야 한다.


2월 2일부터 직장인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아들이 자랑스럽다. 그가 가는 인생의 긴 여정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굳게 붙드는 그런 담대함이 이어지기를 축복하고 간절히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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