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의 매일 같이 집 근처 홈플러스에 간다. 무언가를 사려고 가기 보다,
걷기 운동을 하러 간다.
홈플러스만큼 걷기 운동하기 좋은 곳은 없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그래서 저녁에 30분 정도 홈플러스를 방문한다.
하루에 가장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걷다보면, 언제나 나에게 지나간 향수를, 그리고 지금의 나를 보게하는
물건이 하나 있다.
바로 '레쓰비 마일드 캔커피'이다.
6개의 작은 캔커피가 한 묶음으로 되어 있는 레쓰비 마일드.
걷기에 집중하면 다른 상품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지만
유난히, 이 녀석은 나의 지나간 이야기들을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그 곁을 지나가면, 자동적으로 나는 중얼거린다.
"레쓰비 마일드 캔커피"
레쓰비와 나는 애증의 관계이다. 가난한 미국 유학 시절,
레쓰비를 마시면서 나는 나 자신을 위로해 주곤했다.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를 열면서 더 이상 마실 레쓰비가 없을 때,
나는 깊은 절망감과 같은 기분을 맛보았다.
그러다, 어느날, 포기하다가 깊숙한 코너에 숨어있는
하나의 레쓰비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 . . . . .
나는, 그 당시, 겨우 갓 2불 넘었던 '레쓰비 마일드 캔커피' 조차도
마음껏 사지 못했다. 늘 와이프의 허락이 떨어져야만
카트에 담을 수 있었다. 그것도 빅세일 해서 2불 이하로
내려갈 때에만 주어진 축복이었다.
장을 보러 H-Mart를 가면, 이 자그마한 캔커피만 사면
나는 모든 걸 다 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 하나 더 있다. 흑돼지 삼겹살.
그렇게, 나의 미국 유학 생활의 실상은 언제나,
'레쓰비 마일드 캔커피'와 함께 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한국에 오자마자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아니, 바로 그 순간이란,
스타벅스에서 제법 비싼 커피를 스스럼없이 지불하고
먹을 수 있게 된 즈음에,
나는 이마트나 홈플러스에서 더 이상
'레쓰비 마일드 캔커피'를 카트에 담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왜 일까?" 나는 왜 아주 오래된 삶의 동반자였던 '레쓰비'를
이리도 쉽게 잊어버릴 수 있게 되었을까
나는 그 답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한국에 오니, 대형마트 입구 근처에 '레쓰비'보다
더 고급스럽게 보이는 캔커피들이
마구잡이로, 빅세일로 엉키고 섥혀있는 것을 본 것이다.
미국에서는 도저히 상상하지 못하는 광경이다.
너무나 급속도로 발달한 한국의 커피문화.
부임한 학교에서도, 특강 차 방문한 여러 교회에서도
담임목사님들이 손수, 컵의 온도를 맞추기까지 하며,
온갖 커피의 미학을 입에 올리면서 아주 정성스럽게 내린 커피를
마시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니, 이제 '레쓰비'는 나에게 천덕꾸리기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느 새, '레쓰비'에게 '레쓰고!'라고 외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저녁에도 어김없이 홈플러스에 운동하러 갔다.
그리고 당연히 '레쓰비 마일드 캔커피'에게
가벼운 인사를 하는 의식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사지는 않았다.
그러나, 레쓰비를 볼 때마다, 지나간 나의 이야기들을
기억한다.
어쩌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수님께서 이런 것은 안 드시겠지만'하고
레쓰비를 건네면,
나는 웃음을 지으며, 기꺼이 받아 마신다.
나는 이제 일부러 '레쓰비 마일드 캔커피'를 사서 마시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와 함께 했던 기억들은 아직도, 아니, 영원히
내 안에 살아 숨쉬고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 지,
내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 지,
레쓰비는 늘 일깨워준다. 그래서 이름이 Let's Be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