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마음의 언어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지구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 있을까? 어딘지 모르게 닮은 사람이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 특정 분야에서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은 있어도 100% 똑같은 사람은 없다. 왜 어떤 사람은 재미 삼아 짜릿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반면, 다른 사람은 집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취미 생활을 선호할까? 인간이 이렇게 저마다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를 서로 다르게 만들까? 강의에서 이 질문을 던지면 수강생들은 유전, 환경, 성격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히 말하면 사람마다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기질이 있는데, 그 기질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기질의 개인차에 대한 질문은 수 세기 동안 심리학자, 철학자, 교육자, 과학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비슷한 듯 다른 성격에 대한 질문이 항상 따라온다. 기질과 성격에 대한 의미를 잠시 짚고 넘어가자. 기질은 사전적 의미로 기력과 체질을 아울러 이르는 말 또는 자극에 대한 민감성이나 특정한 유형의 정서적 반응을 보여 주는 개인의 성격적 소질이다. 쉽게 말해 타고난 성질, 즉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으로 생물학적 기반에서 비롯된다. 천성天性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삶에서 마주하는 여러 상황에 대한 조절 능력과 정서적 반응의 유전적 개인차로 설명될 수 있으며, 이는 사회적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기질은 정서와 연관되어 있다.
성격의 사전적 의미는 환경에 대하여 특정한 행동 형태를 나타내고, 그것을 유지하고 발전시킨 개인의 독특한 심리적 체계다. 각 개인이 가진 남과 다른 자기만의 행동 양식으로 선천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영향에 의하여 형성된다. 성격 상태의 개인 내 변화는 내부 및 환경 자극에 대한 반응의 변화로 발생하기 때문에 환경 및 내부 자극에 기초한 변화뿐만 아니라 시간에 따른 성격 상태의 평균이 다르다. 기질이 정서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라면, 성격은 환경과 연관되어 있다.
〈기질로 보는 심리학〉 수강생이었던 미선 씨는 첫 시간에 기질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질문을 했다.
“저희 엄마가 저한테 ‘넌 천성이 글러 먹었다’는 말을 자주 하시는데요. 기질이 천성이고 그게 타고나는 거라면, 저는 타고나기를 잘못 타고났다는 말이에요?”
순간 여기저기에서 안타까움 섞인 깊은 탄식이 들려왔다.
“어떻게 엄마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너무 속상했겠다.”
“상처 많이 받았겠네.”
다양한 얘기들이 오갈 때 미선 씨에게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말을 들었는지 물어봤다. 미선 씨는 그동안 너무 자주, 많이 듣던 말이라서 엄마들이 흔하게 하는 잔소리쯤으로 여기고 흘려들었다. 그러다 강의에서 기질에 대한 정확한 뜻을 처음 듣게 되었다. 많이 놀라고 혼란스러워 보였던 그날의 미선 씨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미선 씨는 유독 엄마와 많이 부딪혔다. 다른 가족들과는 그냥 넘어가는 일도 엄마와는 그렇지 않았다. 명절을 맞아 장을 봐야 해서 각자 일정을 마치고, 저녁에 엄마와 마트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출발했지만, 연휴를 앞두고 이동하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지하철은 만원이었다. 미선 씨는 한 대를 보내고 다음 열차를 탔다. 약속 시간에 10분 정도 늦었고, ‘또 잔소리 듣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랴부랴 뛰어갔지만 엄마 표정이 좋지 않았다. 상황을 설명하기도 전에 엄마의 잔소리 레퍼토리(미선 씨의 표현)가 시작되었다.
“뭐 하다 오느라 이렇게 늦어! 하여튼 느리고 게을러. 내가 뭘 믿고 너랑 장을 보겠다고 약속했는지 모르겠다. 암튼 넌 안 돼. 천성이 글러 먹었어. 어휴, 속 터져.”
“일부러 늦은 게 아니라 일찍 나왔는데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서 한 대를 보냈어. 다음 열차 타고 왔더니 조금 늦었네. 최대한 빨리 뛰어왔는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엄마.”
미선 씨가 엄마에게 천성이 글러 먹었다는 말을 듣는 건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순간이었다. 디자인 전공인 미선 씨는 일의 특성상 바쁜 일이 몰리면 밤을 새워 작업하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아빠와 오빠는 밤샘 작업하느라 피곤해서 그러니 놔두라고 말렸지만, 엄마는 항상 같은 말로 화를 내면서
깨웠다.
“네가 이러니까 안 되는 거야. 사람이 아침이 됐으면 빨리 일어나서 씻고 밥을 먹어야지. 다른 식구들은 다 일어나서 밥 먹고 출근할 준비하는데 넌 뭐야. 암튼 게을러터졌어. 천성이 글러 먹었어. 빨리 일어나!”
미선 씨는 엄마의 잔소리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거의 매일 들었다. 너무 자주 들어서인지 언제부턴가 그러려니 했다. 그러지 않으면 매일 싸워야 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앞서 언급했듯 똑같은 사람은 없다. 부모와 자녀도 다르고,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도 다르다. 가족 역시 모두 타인이다. 기질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상황에서도 서로 다른 행동과 대처를 보이게 된다. 가장 가깝다는 가족끼리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고 갈등을 빚는 이유가 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선 씨와 엄마는 기질부터 생활 패턴까지 모두 달랐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출근하고 일찍 귀가하는 삶을 살아온 엄마의 생활방식이 미선 씨에게는 잘 맞지 않았다. 엄마의 기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때마다 부정적인 말을 들었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잔소리를 하고 미선 씨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미선 씨가 또 한 번 질문을 했다.
“그런데요. 같은 상황에서도 저희 아빠나 오빠는 저한테 그런 말을 안 하거든요? 엄마만 그런 말을 해요. 그럼 엄마의 기질이 나쁜 거예요? 아님 제 기질이 나쁜 거예요?”
각각의 기질은 특징이 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을 좋고 나쁨으로 평가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미국심리학회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 30인에 속한 제롬 케이건Jerome Kagan은 기질 유형에 대한 발달 연구에서 기질을 ‘고반응적 기질’과 ‘저반응적 기질’ 두 가지로 분류했다.
고반응적 기질은 같은 자극이라도 반응이 높고, 흔히 예민하고 민감한 사람으로 표현한다. 저반응적 기질은 같은 자극에 대해 상대적으로 느리고 낮은 반응을 보인다. 미선 씨와 엄마의 사례를 보면 서로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다. 다름이 문제가 아니라 반응에 따른 대응 방식 때문에 부딪히고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타고난 기질에는 어느 것이 좋고 나쁜 것이 없다.
미국의 심리학자 케스탄 블랜딘Kesstan Blandin 박사는 기질과 유형론에 대한 연구에서 기질이 생물학적 특성에서 비롯되고 경험에 대한 습관적인 반응인 반면, 성격은 구성된다고 말했다. 기질과 성격의 차이는 생물학 사이의 선이다. 기질에 대한 생물학적 기반은 유지되더라도 문화에 따라 의미와 가치가 다를 수는 있다. 우리나라의 부모님이나 선생님 혹은 양육자는 어른의 말에 순종하는 얌전한 아이를 좋아하는 반면, 미국의 부모님은 아이가 얌전하고 조용하면 사회에 나가서 인정받지 못하고 리더가 되지 못할까 봐 걱정한다. 기질에 좋고 나쁨은 없지만, 문화적으로 선호하는 부분은 있다.
미선 씨의 엄마 역시 타고난 기질과 우리나라 문화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자신의 기준에서 자꾸만 벗어나는 미선 씨를 가만히 지켜만 보기엔 답답한 마음에 이런저런 말을 했을 것이다. 이제는 ‘천성이 글러 먹었다’는 말보다 ‘우리가 기질이 다르고 대처하는 방식도 다르구나’ 이렇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책 <관계와 삶을 바꾸는 기질 심리학(조연주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