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Digging _ indie beauty brand
넘쳐나는 뷰티 브랜드들로 인한 피로감에 지쳐있던 시절 만난 브랜드
작년 삼성증권에서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2월 기준 대한미국의 화장품 산업 규모는 약 43조억 원이고, 대한민국 식약처에 등록된 '화장품 제조판매업자' 수는 1만 개를 훌쩍 넘는다. 수입 브랜드까지 더하면 어마어마한 뷰티 브랜드 홍수 시대를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장품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 ODM(제조자 개발 생산) 산업의 기술 발전, 소비재 치고는 낮은 최소 생산 수량 3,000개(제조사와 네고만 잘 되면 그 미만으로도 가능), 높은 마진율 등의 이유로 대기업, 중소기업, 개인 할 것 없니 너도나도 화장품 시장에 뛰어 들고 있다.
개성있는 인디 브랜드를 발굴하는 재미는 잃어버린 채 시장에 쏟아지는 영혼없는 브랜드들로 인한 피로감과 권태감에 지쳐있던 찰나, 좋은 브랜드를 발견했을 때 느껴지는 설레임과 즐거움을 일깨워 준 브랜드가 있다. 작년 2019년 6월 띵굴마켓에서 우연히 만난 브랜드, 내가 거의 숭배하다시피 하는 이솝(Aesop)이라는 브랜드의 샴푸를 버리고 갈아타게 만든 브랜드, 화장품 회사들의 보편적인 공식을 따르지 않는 이상한 브랜드 <인비아포테케>를 소개한다.
몇 년간 애정해오던 이솝(Aesop) 샴푸, 손/발 세정제로 전락하다
<인비아포테케>의 주력상품 검정색 숯샴푸는 그동안 천연샴푸이기 때문에 포기해야만 했던 것들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려준 놀라운 제품이다.
지금껏 사용했던 모든 천연샴푸들은 거의 거품이 나지 않고 샴푸 후 모발이 심각하게 뻣뻣해지는 단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천연샴푸가 아니면 두피가 바로 간지러워지는 지루성 두피염을 앓고 있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사용했는데, <인비아포테케> 샴푸는 놀랍도록 풍부한 거품과 린스를 하지 않아도 샴푸 후 모발이 부드러워지는 놀라운 효능을 자랑했다. 게다가 이솝향을 뛰어넘는 유니크하고 우디향이라니! 그 어디에서도 맡아본 적 없지만 상당히 매력적이고 고급스러운 향이었다. 아주 깨끗한 흙에 푸릇한 나뭇잎 한가득, 오렌지즙 딱 한 방울을 섞은 향이랄까.
이 샴푸를 사용한 날, 몇 년간 애정해오던 이솝 샴푸는 손과 발을 씻는 세정제로 전락해 버렸다.
창의성이 돋보였던 1%의 디테일
<인비아포테케> 샴푸에서 창의력이 돋보였던 부분은 천연 계면 활성제의 약한 세정력을 보완하기 위해 숯가루를 통채로 넣었다는 점과 아직 한국에서 '호'보다 '불호'가 더 많은 굉장히 우디한 흙향의 '연필나무향'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숯가루를 넣은 것은 탁원한 문제해결 능력과 도전정신이 비춰져 좋았고, 연필나무향을 사용한 것은 유행을 따라가지 않는 니치함이 마음에 들었다.
남들과 다른 제품을 만들려 하니 제조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일단 연필나무향은 워낙 화장품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향이라 원가 이슈는 물론 수급하기도 어려웠고, 천연 계면 활성제에 숯가루를 섞는 것은 모든 제조사가 기술적으로 불가능 하다고 했다. 현재의 제조사에서도 처음에는 불가능하다고 했으나, 지방에서 숯가루를 직접 구해 와 간곡하게 부탁하는 젊은 대표의 열정을 흥미롭게 본 제조사 대표가 한번 도전해 보겠노라 하였고, 몇십번의 테스트를 거처 일 년만에 완제품이 나왔으며, 제형 안정화까지도 3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초창기 제형은 숯가루가 분리되는 현상으로 전량 회수되는 큰 사건도 있었다고(..)
이렇게 힘든 과정을 통해 만든 제품이니 만큼, 현재까지도 동일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제조사는 유일하다고 한다. 비슷한 레서피의 포뮬라로 제품을 만들어 라벨만 다르게 붙여 제품을 출시하는 일이 매우 잦은 화장품 업계에서, 전세계 유일무이한 포뮬라를 보유한 제품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경쟁력이다.
'원가 설계는 개나줘'라는 태도의 전성분
이런 제품에는 분명 실리콘이 들어있기 마련이고, 향료가 없을리 없는데, 전성분을 아무리 보아도 실리콘/향료는 고사하고 그 어떤 화학 성분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보통의 화장품 회사에서는 제품의 원가를 최대한으로 낮추기 위해 적당한 타협이란걸 하기 마련인데, 이 브랜드 제품의 전성분에는 타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제수(물)는 보이지 않고, 100% 자연유래 성분, 60% 이상의 유기농 성분, 원가가 높기로 유명해 잘 사용하지 않는 에센셜 오일까지 들이 부었다. 마치 '원가 설계는 개나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많은 화장품 회사들이 제품을 만들 때 컨셉성분은 10%도 넣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대부분 정제수를 가장 높은 비율로 처방하며, 유기농 화장품이라 부르고 싶은 경우 한국의 기준에 맞춰 유기농 성분은 전체의 10%만 처방하곤 한다. 그런데 이 브랜드의 제품은 도대체 뭘 하자고 고집스럽게 100% 자연유래 성분, 60% 이상의 유기농 성분을 때려 넣은걸까.
'좋은 성분'에 대한 기준과 고집
<화해>라는 화장품 성분 확인 앱이 등장한 후로 대한민국에서 좋은 화장품의 기준은 EWG 등급이 된 지 오래다. <인비아포테케>는 이것은 전혀 의식하지 않고, 최초로 유기농법을 시작한 독일에서 만든 엄격한 기준의 독일 유기농 인증 BDIH 가이드를 따르고 전제품 이 인증을 획득한 상태다.
성분에 대한 가장 큰 기준을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1. 인공 합성 화학 성분이 아닌 자연유래 성분일 것
2. 가능한 한 유기농 성분일 것
<화해> 앱으로는 이것이 모두 보여지지 않아 참 아쉽지만, 소비자의 눈 가리고 아웅하는 값싼 전략은 취하지 않겠다는 브랜드의 소신이 드러나는 대목이라 호감과 신뢰가 더 상승하는 계기가 됐었다.
왜 유독 자연유래 성분과 유기농 성분에 집착하는가
이토록 원가율을 높이는 성분을 과하게 처방해 만드는 것은 브랜드를 이끄는 오너의 강력한 의지가 있지 않고는 매우 어렵고 무모한 일이다. 역시나 이런 기준과 철학은 브랜드를 만든 파운더의 의지이며, 그것은 이 브랜드를 만들게 된 계기와 연결된다.
이 브랜드는 창업자의 어머니를 위해 만들어진 브랜드이다. 2013년 갑작스럽게 암 판정을 받은 창업자의 어머니는 항암 치료를 받으며 일상 생활 속의 먹는 것/씻는 것/닿는 것들을 자극이 가장 적은 안전한 것들로 바꾸게 된다. 그 때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며 접하는 수많은 화학 성분들이 우리 몸에 조용히 쌓여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되었고,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천연 샴푸가 한국 시장에 없어 직접 만들기 시작한 것이 이 브랜드의 시작이다.
유기농의 목적은 환경 오염 최소화, 그리고 토양 환경 정상화
현대사회에서 유기농은 그 효능과 실효성에 대한 입장이 분분한 키워드 중 하나이기도 하다. 특히 화장품에 유기농 원료를 사용하면 피부에 더 이로운지는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우며, 그저 '기분'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비아포테케>가 유기농 성분을 고집하는 이유는 기능적인 실리보다는 가치적인 신념에 더 무게가 있다. 유기농법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재배하는 농법이며, 궁극적으로 환경에 오염 최소화와 지구의 토양 환경 정상화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인비아포테케가 유기농 성분을 고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창업자의 환경에 대한 남다른 관심
<인비아포테케>의 창업자는 환경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꽤 실천적인 삶을 사는 인물이다. 환경 다큐멘터리를 즐겨보며, 재활용 소재에 대한 깊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고,(실제 재활용도 굉장히 집착적으로 열심히 한다고 한다) 플라스틱 배출 최소화를 위해 주위 사람들에게 생수 대신 정수기 사용을 권장한다. 나도 작년부터 생수를 끊고 브리타 정수 물통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가 보내준 물 관련 다큐멘터리가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이처럼 환경에 대한 관심이 그대로 브랜드와 제품에 투영되어 지금의 브랜드가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뽀족하게 반영되겠지.
안전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브랜드 이름
<인비아포테케> 브랜드 이름은 최소 10번 이상은 듣고 다시 보고, 검색하고 나서야 완전하게 외우게 되었고, 주변에 이 브랜드를 소개할 때에도 모두가 브랜드 이름을 되묻고 자주 잊곤 했다. 창업자도 이 사실을 인정한다, 그도 5년 넘게 들어온 피드백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을 고려해 변경할 계획은 없어 보인다. 결국 브랜드란 유명해지고 나면, 아무리 길고 어려워도 소비자들이 자처해 외워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길고 입에 붙지 않는 단어는 어디에서 온걸까? 인비아포테케(INVIAPOTHEKE)는 invisible(영어)와 apotheke(독일어)를 합쳐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것, 그러니까 '성분'에 대한 기준을 엄격하고 까다롭게 지켜 안전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국내 브랜드 중 브랜드 이름에 독일어를 사용한 경우는 흔치 않은데 독일어를 사용한 이유는 아마 독일이 이 브랜드를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인 '유기농'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창업자가 개인적으로 독일에 대한 사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창업자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풀어 낸 편에서 더 다뤄보도록 하겠다.
화장품 업계의 일반적인 기준들을 따르지 않고 본인만의 세계관을 담아 만든 브랜드 <인비아포테케>의 가치를 부디 더 많은 소비자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이 브랜드가 더 잘되어서 환경에 도움을 주면서도 소비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재밌는 제품들이 많이 나와주기를, 동종 업계에 있는 다른 브랜드들도 뻔한 제품 또는 카피가 아닌 각자만의 또렷한 철학과 고집이 담긴 독창적인 제품들이 더 많이 나와주기를, 그래서 대한민국의 화장품 시장이 속 빈 깡통인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장이 이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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