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다운 '여자'
삼십 년 커트머리 여고생은 교훈에 쓰인 두 단어 '여자'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앞의 여자가 더 낡은 것일까? 뒤의 여자가 더 낡은 것일까? 앞뒤의 '여자'는 어떻게 다르지? 쉬는 시간 졸린 눈을 비비며 잠을 청하던 친구에게 "이 학교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려는 거지? 여자다운 여자 너무 역겨워."라 말할 때 나는 비로소 내 인생이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미리 점쳤을지 모른다.
소녀는 엄마와 학교 선생님들의 모습에서 '여자'를 찾으려 했다. 때가 되면 갖은 밑반찬이며 김치로 식구들의 입맛을 돋우며 하루에도 서너 차례 집을 쓸고 닦는, 집안 식구들 빨래를 해대느라 손금이 다 사라질 지경이었다는 그녀를 닮고 싶었다. 때로는 그녀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오빠처럼 엄마의 고됨을 보지 않는 편을 선택했지만 마음이 어느새 혼자만 과도하게 일이 많은 엄마의 노동량을 덜어주고 싶은 애잔함으로 돌아 자신이라도 엄마손이 안가는 자식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쉽지 않았지만 엄마가 원하는대로 일찍 결혼해 아이들 낳고 기르며 집안일을 착실하게 잘하면 행복이라 스스로 세뇌하다가도 울컥 울화가 치미르곤 했다. 그 화를 삭히려 뛰었다.
남녀 동비율의 사회과학 대학 신문방송학과에서 여대생 말고 깨친 여자대학생은 드센 여성, 할 말은 하는 여성, 쌈닭 같으면서도 자기 할 일은 잘 챙겨서 하는 일 인분의 몫을 해내는 사람이고 싶었다. 남자를 만나 사랑하며 그의 이상형처럼 되길 바라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리고 그의 사랑을 받고 싶어 그녀의 엄마보다 더 가족에 헌신하는 그의 어머니처럼 연기했다. 자식 잘 키우고 남편 잘 봉양하고 두루두루 친지들에게 마음까지 넉넉하게 나누는 사람으로 그렇게 사랑받고 되돌려주는 게 행복이라 믿었다. 여든이 넘도록 남편밥을 걱정하며 사는 여인은 무쇠같던 청춘도 잃고 꼬부랑 허리로 남편봉양하는 삶이 때로는 저주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식들 앞에서 그 속내가 흠으로 들릴세라 '니아버지도 불쌍타'로 마감한다. 유사한 동정심에 나를 잃을까 뛰었다.
그녀가 만든 가정에서 그녀의 엄마처럼 아무렇지 않게 티 안 나고 시간 드는 가사노동을 열심히 하며 살면, 어느새 숙제 같은 두 아이들이 자라 '나만의 시간'이 생겨지리라 믿었다. 그게 깨진 건 그녀가 아이러니하게 그녀가 아이들을 키우며 보다 더 알고 싶어 본 책들과 오래도록 잘 읽고 싶어 시작한 운동생활에서였다. 그녀가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책들은 '욕구'에 대해 알고 '실천'하는 게 진정한 삶이라 말했다. 나로도 살고 싶어서 뛰었다. 눈물, 땀이 날 때 살아있다 느끼니 좋아 뛰었다.
착한 딸, 좋은 엄마, 얌전한 아내로는 어떻게 하라 주변 가족들은 쉴 새 없이 말했지만, 그녀가 뭘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지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식당에서 아이들이 일 인분을 먹어도 그녀는 여전히 아이들과 나누어 먹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보다는 아이들이 먹고 싶은 음식을 교대로 주문하거나 남편의 속사정을 생각하여 가성비 좋은 곳으로 가는 것과 일치했다. 그녀는 가계비 절약과 자녀양육을 위해서 지워져 아 하는 존재였고 아이들과 남편, 그리고 부모님들이 행복하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내가 뛴 거리를 스스로 자랑삼아 누적하려 뛰었다.
여자는 발톱이 빠질 때까지 뛰면서, 혼자 주로에 서며 혹은 가족들은 모르는 러너들의 세상에서 스스로를 단련시켜가며 자신이 뛰며 느끼는 심장의 생동감에서 삶의 환희를 경험한다. 마라톤이 인생같은게 아니라 인생같은 마라톤에서 드디어 '러너스하이'를 경험하는 사람으로 살게 되었다. 누구 엄마에요 보다 저는 러너에요 라고 말하는게 더 좋은 나는 글로 자꾸 기록하며 찰나같은 기쁨을 기억하고 싶다. 중년이 되어서야 자신이 무얼 잘하고 또 어떤 순간에 환희를 느끼는지 처음 깨닫는 듯 산다. 그래서 행복하다.
여자는 지금에서야 다시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여자'는 어떤 모습이었나? 내가 되고 싶은 '여성상'은 무얼 하고 뭘 할 때 행복한지 고민했다. 겁이 많던 십 대 아이로 돌아가면 내 몸 쓰는 것을 잘 배우고 싶다는 걸 떠올렸다. 그래서 나는 실천하기 위해 '길'위를 달린다. 보다 단단해진 나를 느끼기 위해 길에 선다. 내가 나를 바꾸는 게 가족,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쉬운 일임을 이제야 한다. 나는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누리는 가치를 다시 안다. 그리고 시간에 쫓겨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나갔던 길에서 돌아올 때 나로 충만해짐을 느낀다. 나로 행복해야 타인들에도 베풀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음을 깨친다. '엄마'였던 여자는 '나'다운 여자로 돌아온다. 여자는 그래서 뛴다.
#내 이름 찾기#나는 누구인가#달리는여자